회식 장소는, 정육식당이었다. 평가사 네 명과 농장주 세 명, 도매업자 세 명과 십장 영감님과 도영재라는 스무 살 도부 청년이 모였다. 한국인 도부들은 대부분 발골 기술자로 넘어가기 위한 과정에 있는 정규 직원들이었고, 외국인 도부들은 이곳저곳을 떠도는 일용직이라고 했다. 나는 성희 선배와 영재 씨와 함께 끄트머리 구석 자리에 앉았는데 눈매가 도널드 트럼프를 닮은 도매업자가 능글맞은 표정으로 자꾸만 남녀남녀 섞어 앉자고 말해서 난감했다. 그때 성희 선배가 ‘그냥 각자 편한 대로 앉으시죠?’라고 말하며 나를 그냥 주저앉혀 버렸고 굉장히 표표한 표정으로 말을 곤두세워 좌중이 압도되었다. 몇몇이 자, 자 앉읍시다 하며 앉기 시작했고 도매업자도 구시렁거리더니 따라 앉았다. 일단의 정리는 되었으나 얼어붙은 분위기에 나는 살갗이 따끔거렸다. 참 안팎으로 추운 업계다, 이곳은.
풍채 좋은 농장주가 선선한 웃음을 지으며 고기를 주문했고 사수 선배가 대강 맞장구를 쳐주면서 분위기가 풀렸다. 오늘 잡은 소라며 고깃값을 부담한 농장주가 자랑스레 말을 하는 동안 소고기가 각각의 테이블에 부위별로 예쁘게 담겨 놓였다. 나는 고기를 보자마자 계류장에서부터 테이블에 놓이기까지의 발로가 일거에 떠오르는 바람에 고기에 눈을 둘 수가 없으면서도 막상 불판 위에 올려져 지글지글 굽는 소리에, 지방이 익는 냄새에, 다양한 경로로 미감을 자극받으니 자꾸만 입에 침이 고이고 먹음직스러워 희한한 감정 조합이었다. 양가적 감정의 경계가 흐릿해지다가 이윽고 화해했을 때, 나는 안심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었다.
술이 여러 순배를 돌고 다들 얼큰히 취해갔다. 영재 씨는 자기는 이름이 영재인데 공부는 못한다며 별안간 와하하 웃었다. 스무 살의 유머 센스라기엔 약간 문제가 있어 보였으나 말을 아꼈다. 나는 이러한 감상을 성희 선배와 공유하고 싶어 선배를 쳐다보았는데 그 순간 영재 씨의 문제 있는 익살을 경청하던 성희 선배가 영재 씨 너무 재밌다며 와하하 웃기 시작했고 나는 내게 문제가 있는 건가 곰곰이 생각해야 했다.
“저기! 허선 씨!”
아까 그 능글맞은 도매업자가 불콰한 얼굴로 나를 찾았다. 그가 냅킨에 사인펜으로 뭐라고 적더니 번쩍 들었다.
“자, 허선 씨. 이게 뭔 글자게요?”
火. 불 화자가 적혀있었다.
“불, 화자 아닌가요?”
그치? 이게 불 화자지? 이게 바로 불화자여! 도매업자가 냅킨을 들더니 가슴께에 대고 불화자, 불화자 하며 낄낄거렸다. 나는 영문을 모르고 있다가 불화자… 불화자… 이윽고 알아채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창피하고 분한 마음에 옹골진 생등심 한 덩어리를 골라 야무지게 움켜쥐고 도매업자의 뺨싸대기를 철썩 소리가 나도록 날려 칠까 생각도 했지만, 아직은 내가 너무 출근 4일 차였으므로 귓불이 빨개진 채 고개만 그냥 수그리고 말았다. 그런 걸 해내려면 출근 4,000일 차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성희 선배가 도매업자를 노려보며 몇 마디를 던졌으나 이미 술이 잔뜩 오른 좌중들은 총기를 잃고 웃고 떠들고 마시는 데 도취하여 만류가 불가했다. 어수선한 가운데 성희 선배가 내게만 들리도록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요. 사수 선배가 말했다. 오늘 고생 많았어. 먼저 들어가. 내일 봐요.
나는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도축장에 들러 순돌이의 물과 밥을 챙겨주고 어둑해질 때까지 놀다가 들어갔다. 몸에서 고기 냄새가 진동한다는 걸 깜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순돌이가 연신 킁킁거리며 냄새의 출처를 찾아내고자 갖은 용을 쓰는 걸 보고 사뭇 미안했다. 고기 좀 챙겨 올 걸. 집으로 돌아가던 중 문득, 설마 순돌이를 먹기 위해 키우는 건가라는 생각이 드는 걸 누르느라 애를 먹었다.
*
출근한 지 두 달이 조금 더 되어갔을 때쯤, 나는 도축장 사람들의 이름이라든가 성격, 도축장의 프로세스, 육색표와 연골의 경화도를 측정하는 방법 같은 것에 얼마간 익숙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타앙’ 소리라든가, 기절한 돼지가 레일에 걸려 들어오던 중 분명 녀석이 정신이 든 걸 본 것 같은데 그와 관계없이 목이 쑤셔지고 머리가 뜯기고 뜨거운 물에 풍덩 담긴 뒤 가죽이 벗겨지는 것을 지척에서 관찰하며 비위를 덧들이는 일과, 내려가는 속도보다 빠르게 쌓이는 바람에 하수구 근처에서 노상 보글거리며 역류하는 피거품을 마주하는 것과, 레일에 제대로 걸리지 못한 소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쿵 하고 떨어져 그 밑에 있던 나르바닷이 크게 다쳐버린 일이라든가, 영재 씨가 도부를 그만두었다든가 하는 일에는 아무래도 익숙해지기가 어려웠는데, 내심을 말하자면 익숙해지는 게 두려웠다.
불행에 순위를 매긴다는 발상이 조금 생급스럽고 유치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 사람들에게 자, 불행한 순서대로 줄을 서 보세요. 앞에서부터 돈을 나눠 드리겠습니다, 라고 한다면.
내가 더 불행했어, 아니 나는 이런 일도 겪었거든? 하며 다들 앞줄에 서려 아우성일 테지만, 좀 비켜주실래요? 저도 꽤 앞줄인 것 같은데, 라는 내 말에 이견을 달 사람이 많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나도 꽤나 통속적으로 불행한 편이었으니까. 나는 기생, 그러니까 기초생할수급자였고 나라에서 주는 십몇만 원이 없으면 밥을 굶는 처지였으니까. 옷? 화장품? 미식? 여행? 남자친구? 스타벅스 캐러멜마키아또? 그런 문화적 세련을 챙겨보는 일 따위는 떠올려 본 적도 없이 나의 이십 대 초반은, 불꽃처럼 짧고 봄꽃처럼 아쉬운 나의 그 시절은 그렇게 다 끝나버렸으니까. 나의 아버지는 전과자에 노가다 꾼이고 엄마는 벌써 7년 가까이 해충방제업체를 다니며 피프로닐 같은 이름도 무시무시한 약제들을 뒤집어쓰며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일하고도 우리 가족 중 누구도 빌리지 않은 빚은 아직 오천만 원이 넘게 남았으니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도축장에는 나보다 앞줄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고 따라서 이 상상은 조금 낯뜨거웠다.
“누나! 누나! 나 이것 좀.”
그즈음 나는 영재 씨와 친하게 지냈다. 고답적인 유머 감각 외에는 딱히 문제가 없는 건실한 청년이라 마음에 들었다. 부모님은 없고 할머니와 살고 있으며 지금은 발골 기술을 배우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퇴근한 이후에도 쉬지 않고 공부를 하는지 누나, 제가 어제 이걸 봤는데요. 근간지방이랑 근내지방은 어떻게 구분하나요? 내가 도축장으로 출근하는 날마다 책을 들고 오며 이런저런 질문을 할 때가 많았다. 기특한 마음에 나도 성심껏 알려줬다. 그토록 기특한 영재 씨였건만 그는 이제 더 이상 도축장에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좋은 일도, 좋지 못한 일도 언제나 그렇듯 사건은 기척없이 발발한다. 절대로 사라질 것 같지 않은 딱딱한 어둠으로 가득 찬 도축장이 스위치를 가볍게 탁, 하고 켜는 순간 일거에 환해지며 전모를 드러내는 것처럼, 죽은 나무토막처럼 굴러다니던 체인톱이 번뜩 키잉하는 소리를 내며 송아지쯤은 단박에 반으로 가를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처럼, 한국과 국제통화기금의 영수領袖가 서명을 하는 순간 아메프가 팡 하고 터지며 나의 아버지와 또 다른 누군가의 아버지들이 일순에 직장과 재산을 잃거나 감옥에 가게 되는 것처럼.
성실함이 문제였다. 새벽부터 내내 거친 일을 하고, 집에 돌아가면 얼마 되지 않는 휴식을 쥐어짜 성실히 공부를 해 온 영재 씨는 피로했다. 그즈음 영재 씨는 십장 영감의 파트너가 되어 소를 반으로 가르는 작업을 배우고 있었는데 그 일은 영감이 톱에 시동을 걸며 소를 썰기 시작하고 반대편에 서 있던 영재 씨가 하품을 하며 소를 밀어 넣던 순간 일어났다.
“어어! 야! 영재야! 악!”
반쯤 눈을 감고 비척거리며 소를 밀어 넣던 영재 씨는 소를 밀어 넣는 완급을 놓치는 바람에 손가락까지 톱에 밀어 넣고 말았다. 영재 씨가 악, 하는 단말마적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가더니 손을 치켜든 채 뒹굴었고 나는 비명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으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나뿐 아니라 모두가 알지 못했다.
“야! 영재 손 짤렸어. 손가락 찾아! 빨리!”
그때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게 되었다. 영감이 목에 두르고 있던 오염이 상당히 의심되는 기름떡이 자욱한 수건으로 영재 씨의 손을 꽉 눌렀다. 도부와 평가사들이 달려왔고 영감은 빨리 손가락부터 찾으라며 소리를 높였다. 바닥에는 아직도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체인톱이 위태롭게 굴러다녔고 영감이 내지르는 소리는 체인톱을 비롯한 다양한 기계 소음들에 의해 허공에 용해되었다. 손가락 하나는 찾았는데 하나는 못 찾겠어요. 어디 하수구에 빠진 것 같아요. 누군가 막막하게 소리쳤다.
영재 씨는 오른손 약지와 소지가 절단되었다. 문병을 갔을 때 영재 씨는 “결국 약지는 못 찾았어요. 차라리 새끼손가락을 잃어버리는 게 나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이어서 “고민을 많이 해 봤는데요, 아무래도 오른손잡이인 제가 오른쪽 손가락 없이 발골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요.”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그런 영재 씨를 보며 눈물을 훔쳤는데 그것은 영재 씨가 고작 스무 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것으로 그가 손가락을 잃은 사건이 어쩌면 영재 씨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예감과 영재 씨가 그 점을 전혀 예상하고 있지 못하다는 안타까움에 더불어 고작 스물다섯인 나 또한 마찬가지로 어떤 종류가 되었든 모진 수난이 필생의 길목 어딘가에 또다시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프로버빌리티를 불현듯 깨달아 버린 데서 비롯한 눈물이었다. 나도, 영재 씨도 아직 너무 적게 살았다.
영재 씨가 입원해 있는 동안 도축장 입구 현판의 숫자가 바뀌었다. ‘무사고 1일째’로. 그와 별개로 나를 비롯한 도축장에 귀속된 모든 이들은 꾸준하고 성실하게, 피동적인 출근을 했다.
*
석 달 치 월급을 모아 아버지에게 임플란트를 해줬다. 아버지의 볼이 움푹 파인 것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으나 감옥에서 어금니를 두 개나 상실한 탓이었다. 아버지의 볼이 차오르던 날,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소고기를 씹었다. 그동안 아버지는 밥을 먹을 때 음식을 입안에서 요리조리 굴려 먹었고 그 모습은 약간 모자란 사람처럼 보여 내내 마음이 쓰였었다. 아버지는 그날 아주 오랜만에 질근질근 씹어 먹었다. 때를 맞추어 엄마에게 흰색 문방구 봉투에 용돈을 담아 건네는 고전적인 이벤트를 했다. 봉투를 건넬 때는 한껏 명랑해 보이도록 얼굴에 힘을 잔뜩 주었다. 엄마가 마구 웃으며 내 입에 넣어 줄 쌈을 쌌다. 나는 엄마를 따라 웃으며 약간 울었다. 그때 입가에 한줄기 스며든 눈물 맛은 내가 아는 맛과 다르게 조금 달았다. 후후. 돈이 좋긴 좋다. 엄마가 웃는다. 아버지가 씹는다. 나 역시 흐뭇하다. 효녀가 된 기분이다. 돈은 역시, 고단을 버틸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 아주아주 이상적인 지주다. 엄마와 아버지를 만난 다음 날의 출근길은 조금 가뿐했다.
석 달 만에 지나치게 많은 사변들이 대량 주입되는 바람에 혼란스럽기도, 두렵기도, 그래서 가끔 도망치고 싶기도 했지만, 엄마의 미소와 아버지의 볼을 보면서 나는 아무래도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는 서글픈 가늠을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겪은 일들은 형태만 달리하여 세상 모든 이들에게 공통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전국을 떠돌며 댐을 수리하다 감옥에 가서 어금니를 잃은 아버지도, 매일같이 도심 속 오물 밭을 거닐며 구충을 하고 있는 엄마도, 얼마 전 개를 해부하는 실습을 하다가 구토를 했다는 이야기를 과장되게 말하는 미주도, 농장주와 도매업자와 도부들과 농식품부 공무원과 아내와 자식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느라 눈알이 스무 개쯤 되어 버린 것 같다고 말하는 사수 선배도, 지난 몇 년간 갖은 유형의 만성적 성희롱과 장절히 싸워 온 성희 선배도, 30년간 도부로 일하며 온몸으로 겪은 서천 도축장의 유구한 역사를, 바짝 말라 버석한 겨울 낙엽처럼 쌓아두고 자신도 시시각각 버석하게 말라가고 있는 십장 영감도, 소에 깔려 크게 다쳤음에도 일주일도 못 되어 다리를 끌며 도축장에 나타난 나르바닷도, 손가락과 더불어 발골기술자라는 꿈을 잃은 영재 씨도, 이제나저제나 누군가 자기를 불러주고 만져주었으면, 오직 그런 생각으로 번번이 돌고 도는 해와 달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사라져버린-부디, 잡아 먹힌 것은 아니길. 순돌이의 무사와 안녕을 빈다- 순돌이도, 도축장 앞에서 실존의 위기를 감지하고 눈물이라도 흘려보며 연명을 사정하는 소들도, 나도, 그리고 당신도. 각각의 인생과 견생과 우생에서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하여 각각의 엄혹한 고난에 맞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므로.
어쩐지 나 혼자만 고통스러운 것 같다는 불평을 더 이상은 할 수 없다는 평명한 진실을 깨닫고 싶지 않아 미루고 미뤄왔던 어리광을, 당치않은 응석을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사안에 대하여 미주와 긴 논의를 나누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다. 이제는 내가 미주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 적어도 매운 껌보다 훨씬 아릿한 인생의 애절함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미주에게 잠언 할 수 있다. 미주가 더 클 때까지, 벌고 쓰는 일의 오탁과 비의를 약간이나마 깨닫게 될 때까지, 나는 이 논의를 서랍장 아래 칸에 가지런히 넣어두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꺼내 보지 않으면 좋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선견이 어렴풋하다.
나는 내일도 도축장에 간다. 가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빚을 갚아야 하니까. 사방 1미터도 안되는 공간에서 꼼짝 않고 자라며 미쳐간 소와 돼지들의 원한 서린 마블링을 헤집고 어떤 녀석의 원한이 가장 혹독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예쁘게 스며들었는지를 측정하여 등급 도장을 찍고, 새기고, 날염하는 일로써 인생을 꾸려야만 하는 것이다. 현재로서 내가 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은 이 일밖에는 없으니까. 낙장은 불입하는 게 어른들의 규칙이니까. 나는 축산물 유통센터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정체를 날조한 도축장에 가야만 한다. 그토록 동물을 사랑했던 내가 어쩌다가 동물들이 살해되는 현장의 첨단에서 일하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도축장 바깥에서 타앙- 하는 소리가 함부로 들릴 때마다 누군가가 공연히 미치도록 원망스러웠지만,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또 미칠 것 같지만, 어쩌면 이러한 상념은 그저 누구든 눈앞에서 생명의 소멸을 목도한 사람이라면 어쩐지 그런 마음을 떠올려야 할 것만 같은 맹가적 측은지심 내지는 악어의 눈물과 유사한 위선의 현현으로 아직 덜 자란 감상일지도 모르는 것이고, 미칠 것 같든 위선이 현현했든 맹자가 무어라 했든 빨리빨리 돈을 벌어 나는 이 지긋지긋한 적빈으로부터의 탈출을 도모해야 하기에, 산만한 모든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내일도, 얼어붙은 육림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미주에게는 소나 돼지들이 아프지 않고 클 수 있도록 농장이 청결한지, 예방접종 같은 걸 잘하고 있는지 관리 감독하며 자아를 실현 중이라고만 말했다. 이번에 한 거짓말은 미주에게 들키지 않았다. 또르르 띵동- 문득 전화벨이 울렸다. 왠지 모르게 벨소리가 나이브하고 로맨틱한 것이,
‘11010’
미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