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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찬 Mar 04. 2023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란 것은.

김.광.석.

(故를 붙이지 않으련다. 내 마음엔 항상 살아있으니)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가라앉는다.

가라앉다 못해 눈물까지 아른거린다.

기분이 좋다가도, 함박웃음을 짓다가도 그리된다.


'그녀가 처음 울던 날'로 만남을,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로 이별한 '스토리'는 
오래전 가슴을 후벼판 인생 곡들이다.



어찌 이런 곡들이 세상에 나왔을까 싶다.

언제 들어도 어느 순간에 들어도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마력.

고단한 인생 속에서 한참을 잊었던 멜로디를 들으니 잠시 울컥.

또 그렇게 '옛사랑' 생각에 잠시 전율과 멈칫을 반복.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헤어진 연인을 생각하듯, 김광석을 생각해본다.

발매되는 족족 구매했던 테이프와 CD들. DVD들.

켜켜이 쌓인 먼지들을 입김으로 후~ 불어내면 묻혔던 추억들도 알알이 피어날까.

돌아갈 수 없어 더욱 그리워지는 시절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타임머신'을 만든다 해도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더 애절하게 만드는 멘트 하나가 이 노래를 오늘 더 돋보이게 만들었나 보다.





그녀의 웃는 모습은 진짜 목련꽃 같았다.
그녀와 헤어진 날 자취방 노트에 실제 썼다 지웠다.



새파란 청춘을 함께 했던 영혼의 노래들을 오랜만에 만난 옛 동료와 코인노래방에서 부르자니, 가슴이 시리고 술도 확 깨버렸다.




목련꽃 같았던 그녀는 어디쯤 잘살고 있겠지.

몇 해 전 KBS 2FM <이금희 사랑하기 좋은 날> 중 '만약에 우리'에 보내 소개됐던 내 이야기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군대를 제대하고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할 때였습니다.

저는 지하매장, 그녀는 안내데스크. 브라운톤의 유니폼과 모자는 햇살과 어우러져 항상 밝은 미소를 머금던 그녀의 웃는 모습은 활짝 핀 목련꽃 같았지요. 그 웃음은 20년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걸 보면 분명 꽃이었습니다. 그렇게 첫눈에 반한다는 이야기를 믿게 만든 그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근무하던 동생이 소개팅을 제의했고, 소개팅녀는 안내데스크 직원 중 한 명이었으나 그녀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대학교 복학 전 외롭던 시절이라 소개팅을 거절할 이유가 없어 나가기로 했고 그날이 왔습니다.


근데 소개팅 당일, 소개팅녀는 집에 일이 생겨 부득이하게 다른 사람을 내보냈는데, 그 대타가 바로 그녀였습니다. 저는 카페에 들어서기 전까지 그녀가 올 것이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고, 카페에 들어서는 그녀를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 했습니다. 사전에 주선자가 어떤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거든요.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그녀. 저를 단번에 알아차린 그녀. 

현실과 가상이 만나 섞이면 이런 영상이 만들어질 수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멀리서만 보던 치아를 환히 드러내던 그 웃음을 눈앞에서 보고 있으려니까요.


우리의 연애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해 초겨울 영등포역에 내린 첫눈은 아직도 제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풍경입니다. 그녀와의 만남은 매일 이어졌고, 성심을 다해 사랑했습니다. 진정 하루하루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와의 사랑은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만남을 이어가길 6개월. 백화점에서 그녀를 흠모하던 어느 남자직원의 이간질이 사실화되어 그녀가 제게 남긴 삐삐의 음성메시지 하나로 우린 헤어졌습니다. 집 앞에 찾아가기도, 백화점에 찾아가기도 했으나 만나주지 않았고 차갑게 식어버려 그녀의 목련꽃 같은 웃음을 더 볼 수 없었습니다. 제 말을 믿지 않는 그녀가 원망스러웠고, 그 직원을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저는 곧 복학하게 됐고, 바쁜 학교생활로 그녀는 조금씩 잊혔고 학교를 졸업하게 됐습니다. 당시 사회에 인터넷 열풍이 일면서 한메일(다음커뮤니케이션)을 전 국민이 모두 소유하게 됐던 때가 있었죠.

어느 날, 나는 '전 국민이 이메일을 등록했다면, 그녀도 혹시 등록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으로 그녀의 이름을 검색해봤습니다. (지금은 개인정보보호로 있을 수 없는 서비스가 됐지만, 당시에는 가능했음)


딱 11명 나오더군요. 모두에게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저는 000이라고 합니다. 00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영등포 000백화점에서 근무했던 000씨가 맞는다면, 제 이메일을 받고 친히 답장을 주셨으면 합니다. 너무 그리운 마음에 찾아보게 됐습니다. 부디..."


저는 그저 딱 한 번만 봤으면 좋겠단 생각으로 그녀를 찾았습니다. 별다른 마음은 없었습니다. 김성호 '회상'의 노랫말처럼 '찢어진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그녀였으니까요.


답장은 딱 1장 도착했습니다.


"제가 그 당사자는 아니지만, 부디 그 여자분을 꼭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사회적으로 안정도 찾아 여자친구도 사귀고 결혼도 생각하며 지내던 어느 날 아침, TV 뉴스 프로그램에서 거리의 패션인들에 대해 보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태원이었는데요. 무심코 보던 중, 어느 의류 매장에 기자가 들어가 인터뷰를 하는데, 그녀가... 그녀가... 분명 그녀였어요. 

인터뷰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막에 이름과 나이, 스타일리스트라는 직함까지 그녀가 맞았습니다. 


아~! 이런 일이! 아침 정보 프로그램을 볼 시간도 없고 거의 볼 수 없는데, 어찌 휴무인 그날 보게 됐을까.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반가운만큼 아쉬움도 컸어요. 찾기에는 늦었으니.

역시나 그날 TV 속에서도 목련꽃 같은 웃음을 보여주던 그녀.

새벽이 밝아오는 자취방에 소주 들이부었던 그 날, 성에 낀 창문을 생각나게 만든 그녀.







지금은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가장인 제게 이런 사랑이 있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놀랍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다. 

매년 봄, 목련꽃을 보면 그녀가 생각나긴 하지만 인연은 그 옛날 겨울에 끝나 버린 것을, 계속 부여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제 곧 또 목련꽃망울이 피어오르겠지.

후훗.

질리지 않는 이 노래처럼 목련은 또 나를 보며 웃겠지.



https://youtu.be/Fy9SW-cf-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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