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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찬 Apr 18. 2023

지겹게 반복하지만, 버스는 혼자 타는 게 아닙니다.





▶하차벨을 언제 눌러야 하는 지 진정 모르는 것인지.


하차벨을 제대로 누르지 않는, 아니 못 누르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버스에 승차하면 대체로 '멍~ 때리기'에 돌입한다. 창 밖의 풍경을 보며 우수에 젖는다거나, 지금 할 일에 대해 연신 스마트폰에 매진하며 정신이 팔려있다. 정신은 있는데 없다. 정신이 없어서 없는 것인가. 주로 '멍 때리기'로 자신의 하차지점을 놓친다.


대다수는 신변잡기적인 것에 빠져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집중의 대상이 자신이 내려야할 하차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에 있다.


버스 문을 닫고 출발하려는데, 벨을 누르며 내린다고 소리친다. 운전자 뒤통수에 대고(지하철과 달리 운전자가 같은 객실 내에 있으므로) 내린다고 소리쳐도 일단 출발한 버스는 세울 수 없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같은 공간에 있으니 세워줄 법도 한 거 아니냐고 따진다. 운전석을 격리하면 달라지려나. 이는 정류장에서 10m를 벗어나지 않았더라도 입석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렇다. 다른 승객들 때문이다.



지겹게 반복하지만, 버스는 혼자 타는 것이 아니다.




하차벨을 언제 눌러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다. 진정 언제 누르는 지 모른다는 것인지.


정확하게는 '안내 방송' 나온 직후가 가장 이상적이라 할 만 하다. 대체적으로 정류장 도착 300~400m 지점에서 안내 방송이 나오므로 '집중 타이밍'은 그 때라 할 것이다.


정류장에 멈춰 있는데 누른다거나, 도착하고 문이 닫힌 후에 누르는 등의 행위는 해당 승객이 어느 지점에 하차하는 지에 대해 기사는 알 수가 없다. 일일이 물어봐야 하나.


'왜 물어보지 않느냐'는 승객도 있었다.


그 지점은  신에게 얼만큼 욕을 하는 지 당신은 알 지 못합니다.'라는 글귀가 떠오르는 지점이다.


https://brunch.co.kr/@seoulbus/71




▶어, 버스 탔어!


운행 하다 보면 만나는 정겨운 말 중 하나다. 사명감과 책임 의식을 고취시키는 말이다. 연인과 혹은 친구와 헤어지고 폰을 귀에 대고 하는 말이다. 헤어지기 싫은 애뜻한 마음을 담아 환한 미소로 그렇게 말한다.


'어, 버스 탔어!'


주로 남자의 입에서 나왔던 과거와 달리, 최근 몇 년 새 여성의 입에서 주로 이런 말을 듣곤 한다. 남자가 바라다주는 관례(?)와 다르게 여성이 바라다주고 버스에 오르는 건 아닌지.


이 말을 들으면 왠지 그를 목적지까지 '더 안전하게' 모셔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뭐 개인 비서도 아니지만, 대략 그런 기분이 든다. 나만 그런가.


누군가의 사랑이고 희망일 수 있는 그를  '여객운수사업법'에 명시된 그대로 보다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이동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든다.




▶버린이를 위한 버신의 가르침


버스 승하차 예절에 대해 잘 모르겠거나, 버스에 소지하고 승차할 수 없는 물건들이 뭔지 모르겠다면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라.


아직도 1회용 커피를 들고 타고, 꽃다발과 강아지, 다량의 캐리어를 끌고 승차하는 이들에게 좀 알려주고 싶다.


왜 안 되는 지.

왜 안 될까?

왜 들고 타면 안 될까?


답은 간단하다.

버스는 혼자 타는 것이 아니니까.


아직도 버스를 자가용쯤으로, 택시쯤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https://brunch.co.kr/@seoulbus/32




▶1명 탄 승용차, 50명 탄 버스에 양보합시다.


양보와 배려심.

이게 그렇게 어려울까 싶다.


혼자 타고 감에도 절대 양보하지 않아 50여명의 승객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승용차를 하루에 몇 번은 만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운전자가 더 많을 수 있다.(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나 출퇴근 시간, 누구나 바쁜 와중에 양보 없이 탈출할 수 없는 그 혼잡한 도로에서 버스 승객을 위한 배려는 잠시 접어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혼자 타고 가며, 제로백이 버스와 비교도 안 되는 그런 승용차를 타고 가면서 버스에 절대 양보하지 않아 접촉사고까지 일으키는 것을 보면, 참...


인성을 운운하기도 좀 그렇다. 누구나 사정이 있겠지. 단 몇 초라 생각할진대. 자가용 운전자나 버스 운전자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마주칠 것이다. 서로 양보하라고.


그런데... 그게 좀 다르다. 1:50이다.


하염없이 정차해 있는 버스는 양보없이 차로를 변경할 수 없다. 정류장에 불법 주차된 차량들 때문인데, 버스에 욕을 한다.


덩치 큰 버스가 막 끼어들어온다고.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말만 잘 해도 살인은 면할 듯.


보복운전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을 보면, 어이없거나 이해하거나, 둘 중 하나다.


우리 민족은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에 참 인색하다.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수 많은 사람을 만났던 과거에 비춰봐도 그렇다. '땡큐'라는 말이 무의식 중에도 입에 붙어 있는 물건너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항상 '화가 나 있는 상태'라 할 만 하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여행 온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도 있다.


'한국인들은 왜 항상 화가 나 있는 표정들일까?'


가슴에 '울화'를 품고 사는 사람들. 그들이 운전을 하다 어이상실의 운전자를 만나면 폭발하고 차에서 '무기'를 꺼낸다. TV에 종종 등장하는 빌런들이다.


운전 실수를 한 사람은 그에게 '미안합니다'라고 손짓했다면 처참한 광경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보복운전자도 그 말에 수긍하며 가던 길 쭉 갔을 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 양보와 배려를 했다면 '고맙습니다'는 자동 발사되어야 한다.


이건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때부터 교육을 해야 한다.


겸손과 감사, 배려. 인성 형성에 가장 중요한 덕목들이다.



https://naver.me/FHYJiG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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