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축구는 경기 시간이 제각각이었습니다. 1848년 이른바 ‘케임브리지 규칙’이 마련됐을 때조차도 ‘경기 시간과 선수의 수는 주장들 합의로 정한다’라고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1866년 영국에서 경기 시간을 90분으로 확정했습니다.
당시 영국 축구계를 나눠 장악하던 런던 축구 협회와 셰필드 축구 협회가 통합 경기를 치르면서 경기 시간을 ‘오후 3시 시작, 4시 30분 종료’로 합의한 게 계기였습니다.
이후 경기 시작 시각은 다를지라도 진행 시간은 90분을 관례로 따랐으며, 1897년 국제 축구 규정집에 ‘경기 시간 90분’을 정식 규정으로 채택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등번호에 특별한 규정이 없었습니다. 선수들이 1부터 99까지 숫자 중에서 아무거나 하나씩 골라 쓰면 되었거든요. 다만 한 팀에서 같은 숫자를 두 사람이 동시에 사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관례로 포지션(선수 각자의 위치)에 따라 특정한 숫자를 사용해 왔습니다. 이를테면 골키퍼는 1번, 수비수는 2~5번, 미드필더(중간 방어 선수)는 6~8번, 공격수는 9~11번을 달았습니다. 자기 진영부터 출발해 상대 진영 쪽으로 높은 수가 배정된 것이죠. 이는 한 팀 선수가 11명인 걸 고려한 등번호였으며, 12번 이후는 교체 대기 중인 후보 선수들 차지였습니다.
▷영국의 국제축구심판 케네스 조지 아스톤이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칠레 대 이탈리아’ 경기 주심을 맡았을 때 일입니다. 당시 두 나라 감정이 몹시 나빠서 시작 전부터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는가 싶더니 경기 내내 심한 몸싸움이 계속됐습니다. 아스톤은 선수 두 명을 퇴장시킬 만큼 엄중하게 심판을 보았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때는 심판이 큰 목소리로 선수에게 퇴장을 명했습니다.
1966년 아스톤은 ‘잉글랜드 대 아르헨티나’ 경기 심판을 보았다가 비슷한 곤욕을 치렀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그는 어떻게 하면 강력한 경고로 경기 과열을 막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해 어느 날 아스톤은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교통 신호등을 보고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옳거니, 바로 저거야!”
아스톤은 깜빡이는 교통 신호등에서 착안하여 ‘주의’를 뜻하는 노랑을 경고용으로, ‘정지’를 뜻하는 빨강을 ‘퇴장’ 신호로 만들었습니다. 말로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거나 나가라고 명하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상징물을 보이면 한층 효과가 높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아스톤은 그 무렵 국제 축구 연맹(FIFA) 심판 위원회 위원이었기에 즉시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졌습니다.
▷1850년대만 해도 골대는 양쪽 세로 기둥뿐이었습니다. 선수가 공을 차서 그 사이로 집어넣으면 득점으로 인정되었지요. 그러다 1875년 국제 축구 연맹과 영국 축구 협회로 이뤄진 규칙 개정 위원회에서 골대에 관해 더욱 구체적으로 협의했습니다.
“골대 위로 높이 차기만 하면 골로 인정되니 문제가 많습니다.”
“선수들의 공을 차고 다루는 기술이 많이 늘었으니 골대를 좁힙시다.”
“그것보다는 세로 기둥 위에 가로 기둥을 걸쳐서 사각형 골문을 만듭시다.”
“그거 좋은 의견입니다.”
이리하여 크로스바(골포스트를 가로지른 대)가 설치됐고, 이로써 골대는 좌우 넓이를 정한 골포스트와 높이를 제한한 크로스바로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골대 안으로 공을 넣어야만 득점으로 인정되게 된 것입니다.
가로 기둥은 처음에 노끈이나 줄을 걸쳐 표시했으나, 1890년대 이후 기둥으로 바뀌었습니다. 가끔 줄이 늘어져서 말썽을 빚었기 때문이지요.
▷1890년 영국 리버풀 출신 존 알렉산더 브로디는 새잡이 그물에 착안하여 그물을 매단 골대를 개발했습니다.
“와, 참신한 생각이네.”
골네트 달린 골대는 1891년 1월 노팅엄 경기장에 처음 설치됐고, 그날 관중들은 네트를 출렁이는 공을 보며 통쾌한 박진감을 느꼈습니다. 득점 여부에 대해 시비도 일어나지 않았고, 공을 주우러 가지 않아도 됐습니다. 그 뒤 골네트 모양은 조금씩 변해 왔으며 요즘에는 육각형 그물코 모양의 흰색 네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제 축구 연맹의 규정에 따르면, 골대는 반드시 골라인 중앙에 설치해야 합니다. 두 기둥의 거리는 7.32m, 땅에서 크로스바 아래쪽까지의 높이는 2.44m입니다. 골포스트와 크로스바의 지름과 두께는 같아야 하며 12㎝를 넘으면 안 됩니다.
또한 골포스트와 크로스바는 흰색이어야 하고, 골네트는 골키퍼를 방해하지 않도록 지지대로 완전하게 받쳐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공 전체가 골라인 안으로 들어가야 득점으로 인정됩니다.
▷그런데 ‘해트 트릭(hat trick)’이 뭘까요? 해트 트릭은 축구에서 한 선수가 3골 이상 넣는 일을 가리킵니다. 20세기 초 영국의 크리켓 게임에서 타자 3명을 연속 아웃시킨 투수에게 마법의 모자(hat-trick)를 씌워 주던 관습에서 유래된 말이며, 이 용어가 축구와 하키에도 전해지면서 한 선수가 혼자 3골 이상 기록한 걸 나타낼 때 쓰고 있습니다.
▷1872년 영국 축구 협회가 ‘축구공은 가죽으로 둥글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규정하면서 근대적인 축구공이 나왔습니다. 이때부터 12장이나 18장의 가늘고 긴 가죽 조각을 꿰매 만든 둥근 축구공이 정식 경기용으로 사용됐습니다.
“어라, 공이 알록달록 예쁘네.”
1960년대에 들어서서 축구공은 획기적으로 달라졌습니다. 검게 칠한 오각형 가죽 12장과 하얗게 칠한 육각형 가죽 20장으로 이뤄진 정이십면체 공이 등장했거든요. 이 점박이 축구공은 사람들 관심을 끌었고,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대회 때 국제 축구 연맹은 스포츠용품 회사 아디다스가 만든 텔스타(Telstar)를 공식구로 지정했습니다. 따라서 텔스타는 천연 가죽으로 만든 현대 축구공의 효시로 여겨집니다.
▷사실 오각형과 육각형을 이어붙인 공 모양은 고대 그리스 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처음 고안했습니다. 이른바 13가지 ‘아르키메데스 다면체’ 중 하나로, 정다각형 입방체인 아르키메데스 다면체는 꼭짓점들이 특수한 대칭을 이룹니다. 쉽게 말해 정이십면체의 꼭짓점을 깎아서 이뤄지는 아르키메데스 다면체는 공간을 빈틈없이 가득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다면체입니다. 자연 세계에서 물방울 같은 둥근 물질의 원리이기도 하고요.
다만 그 모양으로 만든 축구공의 오각과 육각이 공교롭게도 오대양 육대주와 일치하므로, 공 하나에 세계가 담겨 있다는 의미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바느질 없이 만든 공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축구 심판은 왜 검은색 옷을 입을까?
전통적으로 축구 심판의 옷 색깔은 흰색 소매와 흰색 옷깃이 있는 검정입니다. 이때의 검정은 법관의 법복처럼 엄정한 판결을 상징하고, 소매와 옷깃의 하양은 고귀한 부름을 받은 성직자 복장을 표현한 것입니다. 요컨대 심판은 경기장의 재판관이므로 권위를 가지고 정의롭게 판정함을 검은색 옷으로 나타낸 것이지요. 그만큼 심판은 경기를 원활하게, 공정하게 진행해야 할 권한과 책임이 큽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심판 윗옷을 눈에 잘 띄는 빨간색이나 노란색으로 바꾸었습니다. 이후 FIFA는 월드컵 대회 때마다 심판복 디자인을 새롭게 하는데, 아래옷과 축구화만은 검정을 고집하여 엄정한 판결의 의미를 지키고 있습니다.
영국이 축구 종주국으로 대접받는 더 큰 이유는 축구 발상지나 축구 규칙 제정보다 오랜 세월 지속해 온 폭발적인 축구 열기에 있습니다. 프로 축구단도 1884년 영국에서 가장 먼저 생겼으며, 이후 다른 국가들도 영국식 축구 리그를 표본으로 삼아 국가 단위 축구 리그를 결성했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일상생활처럼 축구를 즐겼습니다.
“축구를 보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려서 좋아.”
신문에도 축구는 주요 기사로 다뤄졌으며 축구 관련 책이 발행됐고 축구 복권이나 도박도 행해졌습니다. 그래서 축구에 관한 소식을 모르면 대화에서 외톨이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또한 각각의 프로 축구팀은 특정 지역을 연고지로 삼았기에 해당 지역 축구팬들은 경기장에서 가족 같은 연대감을 느꼈습니다. 영국에서 축구는 생활의 일부이자 사교 수단이었고, 국가적 자랑이었던 셈입니다. 이런 까닭에 영국은 오늘날 축구의 종주국이란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