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아 버스 공영제 서비스를 받을 것
“옛날에 할 거 없으면 하는 게 버스 기사였어.”
“이것저것 하다가 결국 버스 기사가 되는 사람도 많았지.”
“버스 회사는 기사가 항상 모자라서 버스 뒷유리에 항상 구인광고를
붙이고 다녔지.”
“뭐 할 게 없다고 버스 기사를 해? 다른 거 찾아봐.”
과거의 이야기라 생각하시나요? 누군가가 버스 기사가 되고자 한다면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해주시겠습니까?
과거와 단순 비교하면 지금은 크나큰 발전을 한 업종이라 할 만합니다. 옛 어른들이 말씀해주시던 것처럼 과거에는 ‘할 거 없을 때’ 입문하던 업종이긴 했습니다. 자신의 권리보다는 의무에 충실했던 기사들이 많았죠.
인생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할 때 기웃거리던 그 버스 회사들이 지금은 어엿한 ‘성공한 비즈니스맨’이 된 듯, 쉽게 입사할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물론 서울 시내버스 이야기입니다.
마을버스 3개월만 수련(?)해도 인맥을 통해 쉽게 입사하던 관행이 깨진 것은 2020년 7월 서울시에서 자체 공개채용시스템(이하 공채 시스템)을 만들면서부터입니다. 온갖 채용 비리에 얼룩져 임원이 구속되는 사태까지 빚어지는 마당에 서울시에서 특단의 조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시에서 선발하는 1차 서류 전형은 인터넷으로만 신청을 받고, 채용 인원을 고려하여 상대 평가로 1차 채용 인원을 선발합니다. 2차 회사 서류 전형 및 면접 전형이 남아있긴 하지만 1차를 통과하지 않으면 서울 시내버스 문턱에 발을 디딜 수 없게 된 것이죠.
매우 효율적이며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공채 시스템이라 할 만합니다. 이 시스템의 최대 장점은 공정한 채용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다만, 채용 비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허점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1차에 합격해 2차 회사 서류 전형 시 인맥이 가동될 수 있습니다.
1차만 합격하고 와. 2차 붙여줄게.
서울시에서 최종 합격자의 인맥을 일일이 확인할 길이 없으니 대처 불가한 부분이긴 합니다. 서울시를 제외하면 경기도 등 모든 지자체는 아직 공채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고 있어 아쉽습니다. 이 말은 서울시를 제외하면 아직도 많은 버스 회사들이 채용 비리에 노출돼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서울시는 전국 준공영제를 시행 중인 광역시 가운데 처음으로 이러한 공채 시스템을 시행 중인데요. 향후 전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커 보입니다. 공정한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경기도 24개 시군 가운데 준공영제 참가에 동의한 곳은 14개 시군입니다. 이곳의 59개 노선이 준공영제 혜택을 보고는 있지만, 광역버스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 시내버스는 해당 사항이 없죠. 과거 ‘수익금 공동관리형 준공영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당선되며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바로 ‘노선 입찰제 준공영제’입니다.
서울시처럼 25개 구 지역을 통솔할 수 있으면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경기도는 각각의 지자체들 사정에 따라 준공영제 시행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에 서울시처럼 녹록지 않습니다. 예산이 많은 지자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지자체가 있으니까요.
서울시 준공영제도 ‘완전 공영제’가 아닌, 공영과 민영이 함께 만들어가는 제도입니다. 민간 버스 회사는 버스의 운행을 담당하고, 서울시는 재정 지원과 운영에 관한 정책 결정을 하죠. 민영제의 효율성과 공영제의 공공성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준공영제’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준공영제를 통해 버스 기사의 안정적 수입으로 인력 수급과 노선 운영, 배차 시간 등을 체계적으로 개선하여 더욱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긴 하지만 여러모로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제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경기도는 2020년 서울과 달리 노선 입찰제 준공영제를 도입했습니다. 경기도교통공사를 신설하여 16개 광역 노선을 선정했고, 2021년부터는 206개 광역 노선에 노선 입찰제 방식을 도입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전체 247개 노선 중 83%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노선 입찰제를 쉽게 얘기하면, 과거 수익성이 좋지 않은 노선을 보유한 경기도 시내버스 회사가 경기도에 노선을 반납하고, 이를 경기도가 다시 ‘시장’에 내놓아 입찰할 버스 회사의 신청을 받습니다. 물론 신규 노선도 증설했습니다.
경기도는 2기 신도시 3개 노선, 중소택지지구 6개 노선, 소외지역 배려 3개 노선 등 12개 노선에 비수익 반납 및 폐선이 4개 노선으로 총 16개 노선이 입찰 대상 노선으로 선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A 업체가 내놓은 노선을 다시 A 업체가 입찰하여 선정되는 것이죠. 물론 그 노선을 노리는 다른 업체도 입찰 가능합니다. 그런데 입찰 결과를 보면 대체로 기존 운행 업체가 선정됐더군요. 운행 노하우에 높은 점수를 줬으리라 예상합니다.
결국, 버스 회사는 위탁 운영이라는 명목하에 같은 버스에 같은 노선을 간판만 ‘공공버스’로 바꿔 달고 운행하는 것입니다. 적자 노선의 해결법이라 할 만합니다.
이런 가운데 2021년 1월 국토교통부가 지난 2019년 경기도와 합의한 ‘국고 부담률(지원금) 50% 합의’를 반대하면서 경기도 준공영제는 난항에 빠졌습니다. 중앙 정부에서 절반을 보조해주지 않으면 경기도 준공영제도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돈이 마냥 샘솟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2019년 9월 경기도 시내버스 요금을 200원 인상했던 이유가 주 52시간제에 따른 기사 임금 보전과 경영 악화 해소를 위한 것이었죠. 광역버스의 국가 주도와 준공영제 시행도 합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경기도 시내버스는 더욱 악화 일로를 걷게 됩니다. 버스 기사는 운행 감축으로 급여가 30% 이상 감소했고, 버스 회사는 큰 매출 하락으로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요금 인상분으로 부족분을 보충하곤 있지만, 버스 기사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아직 없는 듯합니다. 감차가 덜한 서울시 시내버스 채용에 경력 기사들이 몰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금 인상은 왜 한 거야?
승객이나 버스 기사나 한목소리를 내는 이유입니다.
경기도 준공영제의 미래는 요원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공공재 성격의 시내버스에 ‘공영’의 이름이 붙을 듯합니다만, 경기도 민간 버스 회사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전 세계 선진국의 버스를 포함한 대중교통은 대부분 공영제입니다. 미국과 유럽의 대부분 지역이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대중교통은 시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공 서비스로 인식돼 공영제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죠. 심지어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무료 버스를 운행 중입니다.
우리나라도 현재 공영제를 시행 중인 지자체는 꽤 됩니다.
2020년 11월 경기도 화성시는 수도권 최초로 ‘버스 공영제’를 시행했습니다. 버스 운행 및 관리 등을 시에서 직접 주도하여 운영하는 것으로 지자체에서 버스 회사를 하나 차렸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버스 기사를 공무원 직급으로 선발하는 셈이죠. 화성시는 기존 버스 회사가 반납한 23개 노선과 신설 노선 5개로 시작했지만, 향후 신설 노선과 시에 반납하는 노선 등 총 28개 노선 48대의 공영버스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제주도는 2018년 버스 공영제를 위해 50명을 선발하여 공무원으로 임용한 사례가 있습니다. 당시 버스 기사들 사이에 큰 이슈였는데요. 경력 2년 이상이면 지원 가능했고, 주 35시간 근무에 연봉도 높아 ‘신세계’처럼 여겨졌었죠. 지금까지 몇 명이 생존(?)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 지원 열풍이 있었습니다. 무시험으로 공무원이 된다는 기대감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청주시는 2021년 특별시와 광역시를 제외하고 전국 기초지자체 최초로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할 예정입니다. 이미 공영버스 48대를 운행 중이라 큰 어려움 없이 준공영제를 도입하는 듯합니다.
버스는 공공재입니다. 지하철과 마찬가지로 여러 매체에서 ‘시민의 발’이라고 언급하곤 하죠. 민간이 적자 노선을 유지하며 허덕일 일이 아닙니다. 오지에 거주하는 국민도 버스를 이용할 권리가 있고, 대한민국에 발붙이고 세금을 낸다면 공공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버스 회사에서 수익이 도저히 나지 않아 노선을 폐지하는데 정부나 지자체에서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닙니다.
버스 공영제는 언젠가 도입될 것입니다. 하지만, 서울시도 2004년 버스 준공영제 도입 이후 20년 가까이 공영제 시행을 못 하는 것을 보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엄두가 안 나는 것이겠죠. 혹은 지금 준공영제로도 효율적 운영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겠죠.
필자 개인적 생각은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모든 시내버스를 공영제로 전환하는 것이 먼저라고 봅니다. 이해관계가 얽힌 대도시보다 공영제 운용이 비교적 수월하리라 예상됩니다. 이후 인구 거주 비율을 고려하여 현재 특별시 및 광역시의 준공영제를 공영제로 단계적 전환하는 방안이 필요해 보입니다.
어떤 비즈니스든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대중교통망은 더욱 촘촘히 구성되고 있기에 구석구석 놓치는 지역 없이 공정하게 대중교통의 혜택을 받아야 합니다.
인구의 감소는 결국 버스 운행과 직결됩니다. 승객이 줄면 노선과 버스 기사가 감소하고 자연스럽게 버스 회사의 매출이 하락하여 지자체에 구원을 요청할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합니다. 인구 감소가 시작된 2021년이 바로 공영제 시행 준비의 첫해가 됐으면 합니다. 중복 노선과 저매출 노선의 개선과 버스 회사의 통폐합 등은 불가피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