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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시교육청 Nov 11. 2020

제2의 현충일, 순국선열의 날과 을사늑약

#독립운동가 #안중근 #신채호 #이남규 #김규식 #김순애

2의 현충일

순국선열의 날과 을사늑약



다가오는 11월 17일은

바로 순국선열의 날인데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순국선열의 날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꼭 알아야 하는 날이랍니다.



제2의 현충일이라고 불리는

순국선열의 날!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알아보도록 해요. :)


을사늑약에 대한 이야기



순국선열의 날은

선조들이 목 놓아 통곡했던 날로,

대한제국의 국권이 침탈당했던

을사늑약의 날이기도 한데요.



자세히 알아볼까요?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 회의가

경운궁에서 열렸습니다.



회의장 밖에는 무장한 일본군이

둘러싸여 있었으며,

회의에는 이토 히로부미와

한국 대신들이 참여했는데요.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나라 대신들에게

조약 찬반 여부를 물었고,

이토 히로부미의 말에 반대한 사람들은

밖으로 끌려나갔다고 합니다.   



대신들 가운데 다섯 명이

찬성 의사를 밝히자,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황제의 재가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약의 성립을 선포한답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황성신문>의 주필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글을 써서

조약 과정을 알리고,

매국노 을사오적을 규탄했는데요. 


 

시일야방성대곡은

'오늘 목 놓아 통곡하리'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조약 무효화를 요구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안중근 의사는

을사늑약을 억지로 맺게 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총으로 쏴 죽였답니다. 


순국선열의 날은 왜 정해졌는가 




순국선열의 날은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선열의 얼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법정 기념일인데요. 



그렇다면, 왜 11월 17일이

순국선열의 날로

지정되었을까요? 



일본과 을사늑약을 체결한 '망국일'인

1939년 11월 21일,

'나라를 빼앗긴 치욕의 날을 잊지 말고,

독립의지를 다지며,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을 영원히 기억하자'라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총회에서 의견이 제시되어

1905년 11월 17일부터

기념하고 있답니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4

    

출처 : 위키백과


신채호



신채호는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독립운동가인데요.



이러한 신채호는

10세에 사서삼경을 읽는 등

신동이라 불리며

1898년 성균관에 입학하였답니다. 



더 나아가

'을지문덕', '이순신전' 등을 집필한

애국 계몽 사상가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남규



이남규 선생은

신채호 선생의 정신적 지주로 불려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남규 선생은

대한제국 시기에 나라를 위해

헌신했답니다.  



이러한 이남규 선생은

항일 운동의 선두자

앞장서기도 했죠! 



의병 운동 선봉장으로 활동하던 와중,

일본군에게 채포되었는데

"나는 대부(大夫)이다죽을지언정

욕을 당하여 너희에게 포박될 수 있겠는가"

라고 꾸짖으면서

일본군에게 절대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웠습니다.  


출처 : 위키백과

   

김규식



김규식 선생은 1897년,

미국 유학을 떠나

로아노크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는데요.



귀국한 다음에는

대한지강회 회원으로 강연을 하며

구국운동을 전개했답니다.



*구국운동 :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는 운동. 



시간이 흘러 1913년 11월에는

상해로 망명해

한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습니다.



외국에 능통했던 김규식 선생은

민족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여

대한민국 독립에 대한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는데요.



또한, 한국독립당과 민족혁명당을

중심으로 하여

독립운동 세력과 협력을 통해

조국 광복을 이루어내어

1989년 최고 영예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받기도 했답니다.  



김순애

출처 : 위키백과


일제강점기 대한 애국부인회 회장,

상해한인여자청년동맹 간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데요.


     

더 나아가 자금난에 처한

임시정부에 재정 지원 활동을 펼쳤으며,

간호원양성소를 설립해

다수의 간호인력을 양성하고배출하는 데

힘을 썼습니다. 



또한, 여성교육에 공헌한 인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D



한편, 1919년 독립운동가 김규식과

부부의 연을 맺기도 했답니다. 




지금까지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을 맞이하여

그 의미와 대한민국에 힘써주신

독립운동가들을 만나보았는데요. 



이외에도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매우 많답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헌신하신 분들을 꼭 기억하며,

보내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참고 자료]

전쟁기념관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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