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노귀자입니다
“엄마는 어떻게 아빠랑 결혼하게 됐어?”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그날의 숙제는 ‘부모님의 결혼 이야기’를 적어오는 것이었다.
아마 결혼을 ‘로맨틱한 서사’로 이해하던 나이에 받은, 너무 어른스러운 과제였다.
엄마는 그 질문을 받고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그냥... 외할아버지가 가라고 하셨어.”
“그냥...?”
“응. 서울에 있는 사람이랑 결혼하라고 하셨어. 얘기 다 해놨다고.”
그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결혼이란 게 그렇게 ‘그냥’ 하는 일이라니.
행복해서 하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그래서 엄마는 좋았어?”
엄마는 대답 대신 짧게 웃었다.
“몰라. 그땐 다들 그러고 살았어.”
그 말 속에는 체념 같은 평온이 있었다.
사랑보단 생존이 먼저였던 시절.
그 시절의 여자들은 ‘선택’ 대신 ‘순응’을 배웠다.
“삼촌이랑 이모는 뭐래?”
“양귀가 울었지. 나 간다고 하니까 막 울더라. 그래서 내가 오백 원 쥐어주고 달랬어. 울지 말라고.”
그때의 양귀 삼촌은 열네살이었을까.
그 어린 손에 오백 원을 쥐어주며 떠나온 스무 살의 엄마.
그녀의 결혼은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한 줄기 희망이었다.
아니, 어쩌면 희망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운명이었을지도.
“그래서 아빠는 마음에 들었어?”
“으~응.”
그건 ‘그렇다’도 ‘아니다’도 아닌, 애매한 대답이었다.
아마 그 짧은 ‘응’ 속에 수십 년의 체념이 녹아 있었겠지.
외활아버지에게 어째서 엄마를 일찍이 아빠에게 보내려고 했는지 묻고 싶었다.
그런데 외할아버지에게는 물어도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어릴적 부터 오래동안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그때는 몰랐다.
그 결혼이 엄마의 인생을 바꾸었고, 나의 인생을 시작시킨 이야기였다는 걸.
결국 나라는 존재는, ‘그냥 가라’는 말에서 비롯된 삶이었다.
나는 엄마의 이름을 다시 쓴다.
노귀자.
내 꿈은, 노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