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천장 긁힐까 망설임 대신,

부드러운 부탁으로 쟁취하라”

by seoul

“입천장 긁힐까 망설임 대신, 부드러운 부탁으로 쟁취하라”


가벼움과 오래됨의 미학.

아이와 함께 강릉으로 향했다.

종종 찾게 되는 우리만의 도피처.

멀리 가지 않아도 마음이 풀리는 곳.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


“오늘 어땠어?”

“재밌는데, 귀찮아.”

투정 부리는 말투에도 웃음이 묻었다.

이토록 ‘귀찮은데 재밌는 하루’라니,

우리 여행의 정의로 삼아도 좋을 문장이었다.


늘 궁금했지만 들어가 본 적 없던 참소리 박물관.

박물관 규모가 무색할 정도로 드문 인적,

사람 없는 매표소를 지나 안내창구 앞으로 갔다.

'손님은 두 분 외에 두 분이신데 관람하시겠어요?'

도슨트 없는 자유 관람이라고 했다. 비수기로 운영도 조금 제한적이라고 했다.

그래도 관람하겠냐는 질문에

'네, 한번 보겠습니다.'

왔는데 한 번은 볼만 하지 않을까

가볍게 생각했다.


‘소리와 빛’을 주제로

오랜 세월 동안 축음기와 영상 기를 모아둔 공간이었다.

모든 시작은 단 한 사람의 수집 정신이었다고 한다.

그 사실이 주는 울림에

입구에서부터 숙연해졌다.


관람객이라곤

아이와 나, 그리고 남성 두 분뿐.

조용한 공간에 오래된 축음기는 소리 없이

묵직했다.

아이의 눈이 커졌다.

“엄마, 이거 외할아버지보다 더 나이 많아?”

“응, 훨씬 더 오래됐지.”


나무에 흐르는 윤기,

세월의 결이 만든 빛깔,

정교한 손길의 흔적들.

‘오래되었는데 여전히 살아있는 것들’ 앞에서

나는 숨을 죽였다.

오래됨의 냄새가 이렇게나 따뜻할 줄이야.


한참을 돌고 나서야

축음기 소리를 체험할 수 있었다.

직원 분의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아 소리를 기다렸다. 태엽을 감듯이 손잡이를 여러 차례 돌리고 나니 웅장한 소리가 귀 속 깊이 울렸다.

'와, 장난 아니네요. 엄청 크네요.'

몸체에 비해 강당을 가득 채운 우렁찬 소리가 무섭기까지 했다.

무려 소리는 건물 밖까지 퍼진다고 했다.

오래된 그대로 보존된 수동기계의 위엄이 느껴졌다.

대단했다.


전시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본관 3층, 별관 2층, 신관 3층.

축음기, 영상기, 회전목마, 냉장고, 세탁기,

심지어 19세기 광고 포스터까지.

그 모든 오래된 사물들이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입장료는 다소 비쌌지만,

나오면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값어치는 했다.”


우연히 만난 한 남성 관람객과

소리 체험 공간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처음엔 좀 비싼데... 했는데, 비쌀만하네요.

대단한 정신 같습니다.'

'그러게요. 이걸 수집하신 끈기도 대단하신데,

정교한 축음기를 당시에 만들어낸 사람들도 대단하네요. 참'

'그러게 말입니다. '


잠깐의 공감, 잠깐의 웃음,

낯선 사람과의 짧은 만남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마지막 층에서 관장님을 만났다.

연세가 꽤 있으신데, 정정하고 단정하셨다.

“그간 고생 많으셨죠. 정말 잘 보고 갑니다.”

내가 고개 숙여 인사하자

그분은 가볍게 손짓으로 인사를 받아주셨다.


순간, 용기가 났다.

“혹시… 아이랑 기념사진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옆에서 지켜보던 직원이 속삭였다.

“관장님은 사진은 거의 안 찍으세요…”

하지만, 거절당하더라도 괜찮았다.

‘입천장 긁힐까 망설이지 말자.’


부드럽게 웃으며 한 번 더 말했다.

“아이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서요.”


잠시 머뭇거리던 관장님이 미소 지으셨다.

“그래요. 한 장만 찍어요.”


찰칵.

그 한 컷의 사진 속에서

시간이 멈춘 듯 따뜻했다.

그분의 눈빛은 부드럽고,

손끝은 여전히 단단했다.


우리는 영광과 감동을 함께 느끼는 하루가 되었다.

운명 같은 걸 느꼈달까...

예술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해낸다는 건

맹목이 아니라 꾸준한 예의다.

그분의 오랜 시간과 손길이

그 모든 공간을 살아 있게 만들고 있었다.


오늘 배운 건 단순했다.


"입천장을 긁힐까 망설이는 대신,

부드럽게 부탁하고, 용기 있게 쟁취하라.”


“오래됨은 낡음이 아니라 품격이다.

부드러움은 약함이 아니라,

제 방식으로 이어가는 강인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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