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세권이라 불리는 작은 만족 속에서
– 스세권이라 불리는 작은 만족 속에서 –
집대신 카페를 택했다.
아침 9시.
아들은 겨우 등원했다. ‘겨우’라는 단어가 이토록 절실할 줄은 몰랐다.
출근길보다 더 복잡한 전쟁이 끝나고 나면, 나에게 남는 건 공허함과 자유, 그 사이 어딘가의 미묘한 공기다.
오늘도 나는 그 공기를 삼킨다.
스타벅스 한쪽 구석, 햇살이 스미는 자리.
테이블 위엔 아메리카노 한 잔, 그리고 샌드위치 두 조각.
커피는 늘 진하다. 샌드위치는 그저 담백하다.
하지만 이 조합은 내 하루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나는 40대, 백수, 그리고 엄마다.
어제까지는 일해야 할 것 같았고, 오늘은 쉬어야 할 것 같다.
일을 쉬면 불안하고, 일하면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이 커피 한 잔의 온도에 나의 갈팡질팡을 섞는다.
커피는 식기 전에 마시고, 생각은 식히지 않는다.
오늘 해야 할 일, 하면 좋을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그 사이를 저울질하다 보면 어느새 샌드위치 한쪽이 사라진다.
토마토의 신맛, 닭가슴살의 담백함, 마요네즈의 약간의 기름기.
이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나를 ‘붙잡아주는 맛’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래도 스세권이면 좋겠다.”
그래, 나는 스세권에 산다.
걸어서 5분이면 스타벅스가 있고, 나를 위한 공간이 있다.
이건 사치가 아니라 생존 방식이다.
회사 대신 카페가 나의 사무실이고, 커피잔 대신 키보드가 내 회의록이다.
오늘도 나는 아이패드와 책 한 권을 꺼낸다.
글을 쓰려다 멈추고, 생각을 하려다 그만둔다.
하지만 이게 바로 나의 ‘일상적 회복’이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그게 바로 백수의 특권이자 엄마의 숨이다.
샌드위치의 마지막 조각을 베어 물며 생각한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어쩌면
‘갈팡질팡’을 인정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커피 한 모금의 온도처럼
나쁘지 않다.
오늘 당신의 커피는, 식기 전에 마셨나요?
아니면 식은 채로도, 여전히 당신의 하루를 데워주고 있나요?
#크렌베리치킨샌그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