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주인
샤넬의 주인은 스스로 말한다.
스스로만 샤넬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최고의 위치라고 생각한다.
자기 위엔 아무도 없다.
누구도 있을 수 없다.
거울 앞에 선 제랄린은 오늘도 속삭인다.
“들키지 말아야지. 들키지 말아야지. 들키지 말아야지.”
세 번 되뇌는 주문.
불안을 감추기 위한 최후의 의식.
아침, 아이 둘을 등원시키고 정신없이 가방을 들고 나왔다.
노트북 가방인지, 어제 들고 나갔다가 던져둔 가방인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강남에서 마포까지 금요일 아침의 차막힘은 지옥과 같다.
손톱으로 입술을 뜯으며 신호 대기.
“립 선물받으면 뭐해… 바를 시간이 없네.”
오늘도 립스틱을 챙기지 못했다.
그렇게 애지중지 가방에 넣어두고
샤넬의 주인처럼 입꼬리를 올릴 여유도 없이
그저 말라버린 입술을 뜯으며 출근했다.
회사 도착 직후, 숨도 고르지 않고 메신저를 켰다.
[전체 공지] 오전 11시 회의 진행합니다.
리플라이가 빠르게 달렸다.
“파툴린 확인했습니다.”
“에타니 확인했습니다.”
“폴라 확인했습니다.”
“록시 확인했습니다.”
“스미리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몇 초간 멈춘 후 도착한 짧은 회신.
“확인했습니다. — 소산나”
그 한 줄이 제랄린의 신경을 거칠게 긁었다.
“또 늦네. 거슬리네. 왜 저 인간은 항상 늦어?”
입술을 더 뜯었다. 비릿한 피 맛이 퍼졌다.
“그럼 제가 먼저 할게요.”
제랄린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단단했다.
그러나 그 속은 이미 불안으로 뒤엉켜 있었다.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 차례가 되기만을 기다린다.
그 반응이 제랄린의 속을 더 뒤집어 놓았다.
시작과 함께 짜증이 전해진다.
“전년도 대비 올해 매출이 하락했습니다.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매출 분석을 오늘 하루 종일 진행할 예정입니다.
다른 궁금한 사항 있습니까?”
정적.
사람들의 얼굴만 모니터에 떠 있었다.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은 동의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이동이란 걸 모르는 걸까.
“저는 지난주에 이어 발송된 자료 안내 전화 진행 예정입니다. 이상입니다.”
빠르게 던지고 빠르게 숨는다.
언제나처럼 존재감 없는 복붙 보고.
“오늘 인바운드 문의 전화가 왔습니다.
마케팅 효과가 조금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어디서?”
제랄린의 목소리가 순간 날을 세웠다.
“…내용이 좀 길고, 애매해서 요약본 만들고 있습니다.
회의 끝나면 정리해서 전달드리겠습니다.”
폴라의 말투, 공기로 틈을 가득 채우는 말투가 제랄린의 신경을 염증처럼 자극했다.
“그래여.”
칼날처럼 짧았다.
말 끝이 찢겼다.
“계약 종료된 기관 리스트업해서 소산나에게 넘기겠습니다.”
소산나의 이름이 불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동시에 그리로 향했다.
“결재 올리면 결재창 열어주세요.”
그리고 다시 제랄린.
“…그리고, 소산나?”
소산나의 화면이 켜졌다.
카메라 속 얼굴은 차분했다.
입술의 색은 없었다.
그러나 서슬은 있었다.
“저는…”
숨이 가라앉았다.
“오늘 영업 전략 관련 보고를 진행하려 했습니다.
전주 대비 유입률 상승 원인을 분석했고,
재계약 성공 건이 있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대표님께 공유 드린 자료 검토되었고,
추가 영업 예산 관련 승인도 완료되었습니다.
결과는 오전 중 메일로 전달드리겠습니다.”
정적.
그리고 카메라 너머로 대표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산나 씨, 수고 많았습니다. 정말 잘하셨어요.”
회의 화면 너머로 사람들의 표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핑크빛 립스틱 대신
냉혹한 승리의 압력이 사무실을 덮었다.
제랄린의 손끝이 떨렸다.
입술도 뜯을 수 없었다.
샤넬의 주인은 스스로 말한다.
자기 위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오늘,
그 위에 누군가 올라섰다.
제랄린의 머릿속에 외침이 울렸다.
“들키지 말아야지.”
“들키지 말아야지.”
“들키지 말아야지.”
하지만 이미—
다 들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