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생로랑의 그림자

파툴린의 그림자

by seoul

《립스틱의 각도 14화 – 입생로랑의 그림자》

거울 속 파툴린은 생각에 잠겼다.

깊은 어둠이 파툴린의 눈밑에 내려앉았다.

“뭐라고… 인사고과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고?”


그녀는 손끝이 떨렸다.
사내 인트라넷 화면에 빨갛게 표시된 ‘하위 10%’ 명단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했다.
머리가 띵해졌다.
“말이 돼? 내가 지들한테 어떻게 했는데… 이건 착오야. 분명 착오야.”


서슬퍼런 얼굴로 록시의 자리로 향했다.

“이게 뭐야, 록시. 내가 어떻게 소산나보다 밑이야? 말이 돼?
소산나는 아직 일도 확실히 못하잖아.
이거 분명히 대표님한테 알랑방구라도 낀 거야. 아니면 제랄린한테 무슨 말이라도 했겠지!”


록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게요… 파툴린, 이게 말이 되냐구요.”
한 발 물러선 목소리였다.


“폴라는 또 뭐야? 퇴사했다가 다시 들어온 사람인데,
이전 근무랑 이번 평가가 연결돼? 이게 말이 돼?”
파툴린의 입술이 덜덜 떨렸다.
“진짜, 소산나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 순간, 사내 메신저에 알림이 떴다.
‘파툴린님, 제자리로 와주세요 (제랄린)’


“뭐야, 제랄린이 부르잖아.”
“무슨 일일까요?”
“몰라, 가봐야지.”



“똑똑, 제랄린 부르셨어요?”
“어, 파툴린. 인사고과 결과 봤죠?”


파툴린은 긴장된 숨을 삼켰다.
“봤어요. 근데 그거, 뭔가 오류가 있는 것 같아요.”


제랄린은 서류를 툭 던졌다.
“인사과에 ‘괴롭힘 건의’가 접수됐어요.
‘파툴린이 저지른 만행’이라는 제목으로 들어왔다구요.”


“뭐, 뭐라고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 제가 뭘 했다고요… 설마, 소산나…?”


“그건 몰라요. 익명으로 들어왔어요.
어쨌든 해명진술서 준비하세요.”



집에 돌아온 파툴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의 보챔 소리조차 듣기 싫었다.
남편이 물었다.
“왜 그래,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나 좀 나갔다 올게.”
그녀는 찬바람을 맞으러 나갔다.
길가의 가로등 불빛이 눈물에 번졌다.


머릿속에 제랄린, 소산나, 록시, 에타니의 얼굴이 뒤섞였다.
‘이건 다 소산나 때문이야.’
그녀의 분노는 점점 자신을 향해 되돌아왔다.
‘아니야, 나는 잘못한 게 없어.
그들은 나 없이 아무것도 못했잖아.’


다음날 아침, 균열의 폭로


목요일 아침, 회사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그 침묵을 깨뜨린 건 에타니의 목소리였다.


“파툴린, 저 이제 더 이상 같이 일 못하겠어요.
한두 번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겠고,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연차가 벼슬은 아니잖아요?”


그 말은 사무실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파툴린은 할 말을 잃었다.
“어… 에타니,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손끝이 떨렸다.
자리에 앉아 인사고과 평가서를 열었다.
모든 항목에 제랄린의 이름이 있었다.


“12월 1일 괴롭힘 조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위 안건에 대한 해명 진술서를 10시까지 10층 1001호로 제출 바랍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파툴린의 눈앞이 하얗게 멀어졌다.


‘이건 함정이야. 누군가 나를 밀어내고 있어.’


손가락 사이에 들고 있던 볼펜이 부러졌다.
그녀의 입술은 굳게 다물렸고,
눈밑의 그림자는 더 깊게 내려앉았다.


그녀는 화장대 앞에 앉았다.

입생로랑 립스틱을 꺼내 들었다.
늘 제랄린의 입술 색이었다.
“이건, 나의 색이 아니야.”
그녀는 속삭였다.


거울 속 파툴린은
자신이 가장 닮고 싶었던 사람의 그림자가 되어 있었다.
권력의 냄새, 인위적인 미소,
그 아래 짙게 드리운 피로와 공포.


‘빛나지 않으면 버려지는 세상.
그림자라도 남아야 살아남는다.’


입술을 꽉 눌러 바르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이번엔, 내가 먼저 입생로랑을 벗겨낼 차례야.”


립스틱의 각도 그림자는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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