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보다 먼저 떠오르는 내 얼굴

타인의 민망함이 내 기억을 깨우는 구조

by seoul

2화. 드라마보다 먼저 떠오르는 내 얼굴


드라마를 보다가 민망한 장면이 나오면, 나는 화면을 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보기도 전에 다른 장면이 먼저 튀어나온다. 배우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직전, 대사가 어색해지기 직전, 내 얼굴이 선명해진다. 그날의 나. 그때의 표정. 그 장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던 모습.

이상하다. 왜 항상 내 얼굴일까.
저 사람은 연기고, 설정이고, 몇 초 뒤면 장면이 바뀔 텐데. 나는 왜 굳이 내 기억을 소환해서 먼저 본 뒤에야 화면으로 돌아오는 걸까.

아마도 타인의 민망함은 안전한 자극이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위험은 없고, 평가받을 일도 없다. 대신, 뇌는 그 장면을 ‘연습 상황’처럼 사용한다. “이럴 땐 이렇게 망한다”는 시뮬레이션. 문제는 그 연습의 재료가 언제나 나라는 점이다. 내가 실패했던 장면, 내가 과했던 말, 내가 분위기를 읽지 못했던 순간.

그래서 드라마는 트리거가 된다.
저 사람이 넘어지기 직전, 나는 이미 넘어져 있다. 저 사람이 말을 더듬기 전, 나는 이미 한참 전에 더듬었다. 화면 속 인물은 아직 사건이 진행 중인데, 나는 이미 사후 분석 단계로 들어가 있다.

그 기억들은 대개 중요하지도 않다.
누군가는 기억조차 하지 않았을 장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순간을 아직도 ‘현재형’으로 저장해 두고 있다. 삭제되지 않은 파일처럼, 필요할 때마다 자동 실행된다.

이쯤 되면 묻게 된다.
나는 왜 나에게 이렇게 잔인할까.
하지만 곧 알게 된다. 이건 잔인함이 아니라, 과잉 학습이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뇌가 과도하게 반복 재생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방식이 친절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또 하나의 규칙을 만든다.
드라마 속 민망한 장면이 나오면, 화면을 멈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한다. “이건 내 일이 아니다.”
기억을 지우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출연시키지는 않는다.

드라마보다 먼저 떠오르는 내 얼굴을, 다음번엔 조금 늦게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그 정도의 지연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하다.



#어김없이 #주인공이되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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