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002년 월드컵, 소개팅
기억이 선택적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면, 질문은 바뀐다.
왜 이렇게 많은 장면 중에, 하필 그때인가.
나는 01학번이었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해, 대학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사회에 나온 것도, 성인이 된 것도 아니었다. 보호막을 벗긴 인큐베이터에서 바로 꺼내진 상태. 어리고, 미숙했고, 무엇보다 어떻게 행동해야 덜 틀리는지 전혀 모르는 여자아이였다.
캠퍼스는 들떠 있었다.
월드컵, 응원, 거리, 단체 행동, 집단의 열기. 개인은 잘 보이지 않았고, 튀지 않는 게 미덕이었다. 동시에 대학이라는 공간은 “너는 이제 사회의 예비 구성원”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사용 설명서는 주지 않았다. 대신 암묵적인 규칙만 넘겨줬다.
적당히 밝을 것, 너무 나서지 말 것, 눈치 있을 것, 하지만 재미없으면 안 될 것.
그 와중에 소개팅 같은 이벤트는 작은 시험장이었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괜찮은 사람’처럼 행동하려고 했다. 말은 조금 더 했고, 웃음은 과했고, 공백을 견디지 못했다. 지금 떠올리면 특별히 큰 실수도 아니다. 문제는 그때의 나는 모든 반응을 생존 문제처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왜 하필 그 장면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그건 그날이 유난히 망해서가 아니다. 그 장면이 처음으로 “나는 사회적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감각을 몸에 각인시킨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월드컵, 소개팅. 개인의 미숙함이 집단의 기준과 처음 충돌한 지점.
그 이후로 나는 많은 상황을 겪었다. 더 큰 실패도 있었고, 더 노골적인 거절도 있었다. 그런데도 기억은 여전히 그 장면으로 돌아간다. 처음 배운 수치는 오래 남는다. 처음 느낀 부적합은 기준점이 된다.
그래서 하필 그 장면이다.
어리고, 준비되지 않았고, 아무도 정확히 가르쳐주지 않았던 상태에서 사회에 던져졌다는 증거. 그때의 나는 틀린 게 아니라, 너무 이른 상태로 평가받았을 뿐이다.
이걸 깨닫고 나서야 한 가지를 덜 하게 됐다.
과거의 나를 현재의 기준으로 심문하는 일.
그건 공정하지도, 생산적이지도 않다.
다음번에 또 그 장면이 떠오르면, 이렇게 말해주기로 했다.
“그때는 그 정도면 충분히 버텼다.”
이건 용서가 아니라, 판단 중지다. 그걸로 오늘은 충분하다.
은중과 상연에서 나온 대학가 주점 씬.
나도 대학생활을 했지.
다른 친구들과는 조금 달랐던 나는 뭐든 사상이 깊었다.
확립되지 않은 사상 미지의 사상이 깊이있게 왜왜왜로 빠져 들어 있었다.
항상 나- 미지, 상황- 낯선씬
그 대학가 나는 어색하고 모든게 불편했다.
우글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나
여간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직 내면에 갇혀 있는 아이에서
외면으로 판단되는 모든 시선들이 불편했다.
그래서 더 혼자있는 시간이 편해졌다.
처음 만나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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