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나리
나는 늘 희나리였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장작처럼 일터에 놓여 있었지만,
속은 젖어 있어 불이 쉽게 붙지 않았다.
겉으로는 능숙하게 웃고, 인사하고,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상사의 발자국 소리, 동료의 눈빛, 메신저의 알림음
앞에서 내 안의 장작은 축축이 젖어만 갔다.
희나리는 불을 붙이면 금세 연기만 내고,
사람들의 눈을 따갑게 만든다.
내가 그랬다.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
스타일이 맞지 않는 사람.
불이 되지 못하는 희나리로 취급당했다.
나는 불합리함을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입을 열 수 없었다.
희나리는 타지 않으니,
결국 쓸모없는 나무로 치부된다.
마치 내가 인간 실격이라도 된 듯.
그러나 나는 안다.
희나리가 완전히 말라가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언젠가는 불꽃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내 안의 습기를 증발 시킬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사회는 언제나 당장 불을 지피라며 성급히 성화를 지핀다.
"왜 타지 않니? 왜 불꽃이 없니? 왜 연기만 내니?"
나는 매번 질책을 받는다.
그러나 문제는 나의 존재가 아니라,
나를 태우는 방식이었다.
어쩌면,
희나리의 운명은 젖어 있다고 해서
불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젖은 상태로 불 속에 던져졌기
때문에 실패한 것 아닐까.
충분히 말릴 공간, 기다려주는 시간,
따뜻한 햇볕이 이었다면
나는 연기만 내는 나무가 아니라,
가장 오래 타는 장작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묻는다.
내가 인간 실격이었던 걸까?
아니면, 희나리를 태우는 자들이 성급했고
무모했던 걸까?
이 글을, 마치며
희나리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나는 매일 전쟁터로 향한다. 아이는 학교에,
나 자신은 회사에 내던져진다.
엄마의 역할과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하며 전의를 불태우지만, 돌아오는
평가는 언제나 차갑다.
"우리 스타일과는 안맞아요."
"하실 수 있겠어요?"
"좀 어렵죠?"
다 해본일, 다 할 수 있는일에
나만은 배제됐다.
그 말들은 나를 더 젖게 만들고, 더 깊숙이 연기만
내뿜는 희나리로 몰아 넣는다.
전우라 믿었던 동료들 조차 사실은 함께 불타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내 자리를 탐탁지 않아 했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배재했다.
이 전투에서 나는 동등한 동료가 아니었다.
언제든 대체가능한 알바, 불꽃을 내지 못하는 장작.
그러나 희나리가 불이 되지 못하는 건 나 때문이 아니라,
기다려주지 않는 사회 때문이다.
아이 학교생활, 가족 문제, 쏟아지는 업무와 눈치.
그 젖은 마음 때문에 불꽃을 내지 못한다고 손가락질을
받지만, 내 안에는 아직 타지 않은 심지가 남아 있다.
언젠가는 활활 불타는 장작이 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내가 오늘도 버티는 이유다.
희나리를 태우는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사회가 한 번쯤은 돌아봐야 하지 않알까.
나는 그렇게 묻고 싶다.
여전히, 불안 속에서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버티고 있다.
불꽃을 내지 못해도, 젖은 장작이라 욕을 먹어도,
내 안에는 아직 타지 않은 심지가 언젠가는 활활 불탈 날이 올 거라 믿으며.
by seoul
#서울 #마지막으로 #글을마칩니다. #애키우며일하는여자들의잔혹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