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되는 사회

부정에서 시작되는 것들

by seoul

부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덮으면 덮을수록, 다른 이름으로 태어난다.


첫 번째 이름은 자기검열이다.

말하기 전에 스스로 입을 막는다.

쓰기 전에 스스로 지운다.

싫다는 말도, 힘들다는 표현도, 결국 마음속에서 검열당한다.

결국 스스로 만든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다.


두 번째 이름은 집단 내 따돌림이다.

“싫다”를 말한 소수는 곧 배제된다.

대부분은 침묵한다.

부정을 드러낸 자 하나를 희생양 삼아,

다른 이들은 긍정의 가면을 더 단단히 붙인다.


세 번째 이름은 번아웃이다.

“나는 괜찮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상태.

더는 싫다 말할 힘조차 잃어버린 무감각.


네 번째 이름은 이직이다.

“여기서는 안 된다.”는 말을 대신해,

사직서라는 종이 한 장으로 떠나는 사람들.

하지만 어디서든 “다시 괜찮은 척”을 준비해야 한다.

이직은 탈출이 아니라,

부정을 삼킨 채 옮겨 다니는 방랑에 가깝다.


이것이 부정을 부정한 사회의 최종 형태다.

자기검열, 따돌림, 번아웃, 이직.

자기검열, 따돌림, 번아웃, 이직.
모두가 그 결과를 살아내고 있다.

우리는 부정할 수 없어서 병들고,
부정할 수 없어서 서로를 갉아먹고,
부정할 수 없어서 스스로를 지운다.


결국 이 잔혹사는,
‘싫다’라는 한 마디조차 허락하지 않는 사회가 만든 괴물이다.


떠나야만 끝나는 게임이 되었다.


사회에서 ‘인간 실격’이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으려면,
우리는 웃어야 한다.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네, 좋습니다.”
“네, 맞습니다.”

이 짧은 대답들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언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들 사이에 내 대답이 설 자리는 없으니까.

싫다, 힘들다, 그만하고 싶다.
이 단순한 부정은 곧바로 “태도 문제”가 된다.
예의 없는 사람, 인성이 부족한 사람, 협업 불가한 사람.

왜 자연스러운 부정은 불량품 취급을 받는 걸까.
왜 힘들다 말하는 순간, 나는 곧 문제의 근원이 되는가.
왜 침묵하지 않는 자는 곧바로 고립되는 것인 가.

그래서 부정은 왜곡된다.
직접 말할 수 없으니, 다른 방식으로 흘러나온다.

번아웃으로.
몸은 출근하지만, 마음은 사라진 자리.
체력보다 정신이 먼저 고갈되는 자리.

이직으로.
“적응 실패”라는 낙인을 감수하면서도,
차라리 도망쳐야 하는 자리.

집단 내 따돌림으로.
부정을 말한 사람은 이미 눈에 가시가 되어,
모두의 대화에서, 모두의 술자리에서 배제되는 자리.

자기검열로.
말을 삼키고, 표정을 다듬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내가 부정해야만 살아남는 자리.

부정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부정을 더 음습하게 키운다.
그리고 그 부정은 반드시 다른 얼굴로,
더 파괴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부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모양을 바꿀 뿐이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왜 부정은 숨겨야만 하는가.”


아이의 울음은 살아있다는 신호다.
그 울음은 허락된다.

그런데 어른의 울음은 금지된다.
어른의 “싫다”는 곧 눈총을 받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성숙하지 못하다. 사회성이 결여됐다.”
부정은 그렇게 인격의 결함으로 치부된다.

결국 부정은 감춰진다.
그 위에 가짜 긍정이 덧칠된다.


메마른 웃음만 '꺼이꺼이' 된다.


웃음은 가면이 되고, 끄덕임은 목을 조르는 끈이 된다.

사회는 부정을 부정한다.

하지만 부정은 단순히 파괴만 하지 않는다.
부정은 새로운 긍정을 낳는다.
“왜? 안돼?”에서 시작해,
결국 “되게 하는 변화”를 만든다.
싫음이 있어야 다른 선택을 상상하고,
거부가 있어야 전환이 가능하다.

부정은 창작의 씨앗이기도 하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부정을 억누르는 사회는,
결국 긍정마저 억압하는 셈이다.

나는 안다.
모두가 부정하고 있으면서도,
“부정적이다”라는 낙인에 떨고 있다는 것을.

숨겨진 부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쌓이고, 눌리고, 결국 더 큰 균열로 터져나온다.

분노, 탈진, 무력감, 번아웃.
모두가 이 사회가 만든 ‘부정의 잔해’ 위에 서있다.

그러니 나는 말한다.
“부정할 권리를 달라.”

마음껏 부정하고, 부정을 없애나아가고 싶을 뿐이다.

싫다고 말할 자유.

아니다 라고 말할 자유.

힘들다고 토로할 권리.

멈출 수 있는 선택.


부정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더 큰 부정에 갉아먹히고 만다.


부정은 억압될 때 병이 되고, 인정될 때 힘이 된다.


부정은 억압될 때 병이 되고, 인정될 때 힘이 된다.

그런데 내가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거대한 구조를 바꿀 수 없다.
다만 오늘 하루, 내 입을 막지 않는 선택.
싫다고 말할 용기, 그 작은 균열 하나.

그 균열이 모여 언젠가 금이 되고,
그 금은 결국 벽을 무너뜨린다.

부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도 부정할 것이다.



by seoul



#막을내리는사회 #잔혹한사회일기 #직장인일기 #오늘을살아가는 #워킹맘이야기

keyword
이전 09화풍경은 깨지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