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괴담
심야괴담에서
본 이야기가 자꾸 떠오른다.
한 아이가 있었다.
집안의 액을 막으려는 할아버지 집에 들어와 몸종으로 살았다.
아이는 집안 허드렛일을 했다.
고된 일들을 도맡아 한 아이인데도,
따듯한 말한마디 건네 받지 못했다.
아이는 풍경이 울릴 때마다 매질을 당했다.
혹시라도 죽어서 복수하지 못하게,
풍경소리를 무서운 족쇄로 걸어둔 것이다.
아이는 풍경이 울릴때 마다 두려워 했고, 공포에 떨었다.
결국 아이는 재물로 받쳐졌고,
그 집의 평안과 번영은 아이의 고통 위에서 유지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풍경이 깨졌다.
그날로부터 할아버지의 눈은 멀고, 입은 굳게 닫히고, 오른팔은 마비되었다.
아이가 입은 고통 그대로 되돌려 받은 것이다.
아이의 복수는 그렇게 시작됐다.
아이를 노려보던 눈은 멀고, 아이를 욕하던 입은 굳게 닫혀 버리고,
아이를 멍들게 때렸던 오른팔은 마비가되어 버렸다.
해를 입힌 그대로 돌려 받는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 이야기를 회사에 대입해본다.
왜냐하면 나도 매일 풍경소리에 맞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기침소리, 사장의 발자국, 메신저의 알림음.
울릴 때마다 나는 움츠러들고, 보이지 않는 매질을 당한다.
보만 스님은 감정은 실체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풍경소리에도 매질을 느낀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처럼, 나역시, 규율과 예의라는 이름의 풍경에 묶여,
반격 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맞고 있다.
풍경이 깨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사회도 마찬가지로 액받이처럼 버텨야 한다.
그 풍경을 내 스스로가 깨야 하는 것일까?
풍경이 깨지는 날,
나의 잔혹사도 끝나겠지.
아이가 액받이로 쓰이듯이,
회사와 사회는 특정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풍경소리가 울릴 때마다 매질당하던 액받이 아이처럼,
일터의 특정 신호 사소한 말투, 메신저 알림,
그녀의 눈빛이 우릴 계속 때린다.
풍경소리가 아이의 복수를 막으려는 장치였듯,
우리 일상의 '규칙,규율,예의'는 반격을 차단하는 장치다.
권력하에 통제하고, 비난하고, 평가하면서
부당함은 이야기 하지 못한다.
우리는 참아야 하고, 웃어야 하고, 문제 삼으면 더
큰 낙인이 된다.
여름 휴가가 전,
선임이 그녀에게 부탁하는 무언가 부탁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되었다.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꽤나 무거운 분위기였다.
다른 팀원들의 부재로 사무실에
그녀와 선임 둘뿐이었다.
늦은 출근으로 들어선 사무실엔
아무도 없는 듯 조용했는데
두사람이 함께 였다.
들어가도 되는지 확인 후에
얼른 가방만 내려 두고 화장실로
자리를 피했다.
"생각 좀 잘 해주세요...."라는 말만
어렴풋이 들렸다.
그녀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궁굼증은 증폭했지만 물을 수 없었다.
그리고 돌아온 건,
업무 인계, 선임은 무엇을 부탁했을까?
선임의 일이 내게로 넘어왔다.
단순한 인계가 아니었다. 구조의 균열이었다.
결국 풍경이 깨지듯, 구조의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 있다.
아이가 복수를 시작했듯,
억눌린 감정은 다른 방식으로 반드시 되돌아온다.
회사의 몰락,
상사의 몰락,
혹은 개인이 퇴사하면서 불러오는 파문.
언젠가 무너지고 흩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풍경은 깨질 수 밖에 없다.
다만 그때까지, 우리는 매질을 참고 견디며 살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그 조각이 누구의 살을 베고 들어갈지 모른다.
틀, 그 틀을 누가 깨야 하는 것일까?
by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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