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신앙과 희망, 긍정만이 승인되는가
이 장은 도덕을 비판하기 위해 쓰지 않는다.
무엇이 금기되는지, 누가 금기를 관리하는지를 기록한다.
표면에는 희망과 긍정이 배치되고,
그 이면에서는 불편한 감정과 사실이 유통된다.
이중 구조가 작동한다.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을 멀리 둔다.
부정하고, 경멸하고, 거리를 확보한다.
동시에 비슷한 장면을 소비한다.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반복한다.
공개적으로는 금지하고, 비공식적으로는 허용한다.
금기는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바꿔 순환한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불편한 것은 신념을 흔들고,
자기 이미지를 손상시키며,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따라서 많은 경우 차단이 선택된다.
차단은 회피이기도 하고,
자기 보호이기도 하다.
이 선택 자체는 문제로 단정되지 않는다.
차단하는 자유도 존재한다.
문제는 다른 지점에서 발생한다.
차단이 개인의 선택을 넘어
타인의 발화를 통제하는 기준으로 확장될 때다.
불편함을 이유로 말할 수 있는 범위를 줄이고,
보여질 수 있는 장면을 제한하며,
결국 현실의 일부를 비가시화한다.
이때 금기는 윤리가 아니라 관리의 도구로 작동한다.
플럭서스는 이 경계에 개입한다.
금기를 미화하지도, 파괴를 목적으로 삼지도 않는다.
다만 보이지 않던 층위를 드러낸다.
작품이 아니라 사건을 통해,
설명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숨겨진 감정과 구조를 표면으로 이동시킨다.
불편한 감정에도 구조가 있다.
질투, 수치, 분노, 무력감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관계에서 발생하는 반응이다.
그 자체로 옳고 그름의 판정 대상이 되기보다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순환하는지 관찰의 대상이 된다.
감정은 억압될수록 왜곡되고,
은폐될수록 다른 형태로 되돌아온다.
“그 역시 흐르게 둬야 한다”는 말은
모든 행위를 허용한다는 뜻이 아니다.
경계는 유지된다.
타인의 안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감정의 인식과 표현의 통로를 확보한다는 의미다.
행위는 규제될 수 있어도
감정의 존재 자체는 삭제되지 않는다.
비상호적 구조에서도 의미는 생성된다.
말하지 않아도 태도는 전달되고,
반응이 없어도 신호는 남는다.
따라서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발화로 기록된다.
이 장은 그 발화를 추적한다.
왜 긍정만이 승인되는가.
긍정은 예측 가능하고, 관리 가능하며,
관계를 빠르게 안정시킨다.
시스템은 안정성을 선호한다.
그러나 안정성만으로는
현실의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누락된 층위는 계속해서 다른 경로로 드러난다.
플럭서스의 태도는 단순하다.
금기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금기가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불편함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이 생성되는 조건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판단자가 아니라
관찰자로 위치가 이동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불편함 자체가 아니라
불편함을 다루는 방식이다.
차단은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선택이 기준으로 확장되는 순간,
표현은 축소되고 현실은 단순화된다.
이 장의 결론은 선명하지 않다.
판단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기록한다.
금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위치를 바꾼다.
그리고 그 이동을
보는 것.
그것이 이 장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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