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의 구도
《 립스틱의 각도 2편》
<두번째 이야기, 비오는날 파티 그리고 샤넬>
“어머, 어서 들 와요~”
제랄린이 들떠서 외쳤다.
오랜만에 저녁약속으로 들뜬 파툴린이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며 웃으며 말했다.
“비가 진짜 많이 와!! 신발이 다 젖었어~, 스미리는 케이크사가지고 올거에요!
여기 너무 좋은데요!”
“그러게, 나 나올 때만 해도 이렇게 많이 오진 않았었는데…후~”
빗줄기가 굵게 내리치는 창가자리에 자리 잡은 제랄린이 메뉴판을 파툴린에게 건냈다.
“뭐, 시킬까? 뭐 먹고싶어?
“제잘린, 먹고 싶은걸로 시켜요~. 난 다 괜찮아!”
“왜~, 파툴린도 곧 생일이잖아.”
“아니야, 괜찮아”
그 사이에 스미리가, 케이크상자를 들고 자리에 합류했다.
“와, 비가 장난이 아니에요. 케이크 들고 오는데 좀 힘들었어요.”
“우리 메뉴 고르던 참이었어, 얼릉 골라봐~”
제랄린의 재촉에 스미리도 얼릉 자리 잡고 앉아 메뉴판을 훑었다.
“음~ 맛있겠는데요. 메뉴를 보니까. 배가 갑자기 막 고파져요.”
“아, 나 올때, 소산나가 제랄린 늦게 갔다고 어딨냐고 찾드라구요?”
“어? 뭐? 소산나 눈치챈거 아냐?, 폴라는?”
“폴라는 아무 생각 없어 보이던데요?”
“아, 진짜!! 그럴 만도 ㅎㅎㅎㅎ”
“그나저나 우리끼리만 저녁 먹는것좀 미안하네요!” 파툴린이 말했다.
“무슨소리야? 원래 저녁 먹을 생각 없었잖아? 갑자기 계획한건데… …뭐!”
“어쩔수 없죠… 뭐…”제랄린 말에 스미리도 거들었다.
“그런데, 제가 실수를 한거 같아요. ㅎㅎ 소산나님이 충분히 눈치 챘을 수도 있을거 같아요. ㅎ”
“왜, 왜? 뭔데?
“아니 제가 엘리베이터에서 폴라님이 사온 케이크 얘기를 했어요. ㅎ”
“헐! 그걸 말하면 어떻게???”
“에잇, 모를 거에요!” 스미리가 제랄린의 호들갑을 진정시키려 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소산나는 별로 안친하잖아. 불편해 할꺼야!”
파툴린이 이어서 스미리말에 힘을 보탠다.
“됐어~ 록시도 없고, 에타니도 없잖아!”
“에타니는 내가 좀 늦게 합류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오고 있을꺼야!”
“아, 진짜? 에타니님은 오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에타니가 도착했다.
“아직 안시켰어요? 비가 장난아니네요.”
빗물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산을 써도 옷이 젖었어요. 너무 한다. 오늘 하늘에 구멍이 났나봐요.”
모두가 일제히 웃음이 터졌다.
“ㅎㅎㅎㅎ”
에타니가 던진 농담에 기운이 가볍게 전환됐다.
“장마가 일찍 시작된다더니, 벌써 장마인가?”
파톨린의 말에 스미리가 대답했다.
“그럴리가요! 아직 여름될 려면 아직 멀었어요~”
“자! 자! 메뉴 먼저 고르고 케이크 할까요?” 제랄린이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고
서둘러 식사메뉴를 고른다.
파툴린은 메뉴고르는데 흥미가 없는 눈치다.
평소에도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스미리도 선택권은 없었다. 오늘은 제랄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자리인 만큼
선택권은 제랄린에게 있었다.
“에타니 뭐 드시고 싶으세요?”
“음...보니까, C코스 괜찮은거 같은데요? D 코스보다 부담스럽지 않고 저희 네 사람 먹기 좋을거 같아요. “
“아, 그래요?”
“아니면, 제랄린 저랑 나눠먹어요?”
“그럴까? 우린 얼마 안먹으니까? 그러자 그럼! 나랑 나눠 먹자!”파톨린 말에 제랄린이 말을 이었다.
“그럼, B 코스에 샐러드 추가하고, 맥주? 와인? 어떤거 드실래요?
“저는 자몽에이드 먹을게요.” 스미리가 말했다.
“그럼 에타니는?”
“저는 생맥주 한잔 할께요.”
“그럼 파톨린은 와인?”
“네. 좋습니다.”
그럼 여기 주문은
“B코스, 브로콜리 콥 샐러드 추가하고, 자몽에이드 1, 생맥주 1, 하우스 와인 2잔 이렇게 시킬게요!!”제랄린 말에 단체로 화답한다.
“네, 좋습니다.”
다음 날,
소산나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다 빠진 조용한 화장품 매장.
“샤넬 루쥬 코코 #434 한 개 주세요.”
“입생로랑 루쥬 볼립떼 #80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디올 루즈 포에버 립스틱 #999. 이건 제 겁니다.”
월요일 아침,
나는 각기 다른 브랜드의 작은 쇼핑백 두 개를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샤넬은 은은한 리본을 묶었고, 입생로랑은 투명 봉투에 살작 담았다.
카드엔 이렇게 썼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소산나 드림.”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당황했다.
누구도 “왜?”라고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누가 무슨 짓을 했는지 드러나니까.
점심시간, 폴라가 내 옆에 와 앉았다.
“소산나 립스틱 컬러 예뻐요. 오늘 색깔 잘 어울리는데요.”
소산나는 디올 립스틱을 꺼내며 웃었다.
“감사해요. 저도 오늘은 저를 챙기고 싶더라고요.”
그날 이후, 사무실엔 이상하게 고요한 균형이 생겼다.
누군가는 더 크게 웃고, 누군가는 더 조용해졌다.
소산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업무를 했다.
하지만 이제 아무도 소산나를 “눈치 못 챈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눈치 빠른데, 함부로 못 건드릴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리고 소산나는 그거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