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웃음의 기술

내 진심은 중요하지 않다.

by seoul

거짓 웃음의 기술 내 진심은 중요하지 않다.

맞지 않는 상황 모르는 상황 모두 웃어넘긴다.

어찌해얄 지 모르기 때문이다.

거짓 웃음이라도 포장한다.

알아도 아는 체 못하고 몰라도 묻지 못한다.

그들도 모르기 때문에 그것도 모르세요?

담당자잖아요? 책임만 떠안는다.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백업할 건지 복구할 건지 평소에 없던 메시지가 떴다.

둘 다 생소했다.

컴퓨터의 자동화가 편리하면서도 복잡한 내부사정은 모른 체 하고 살았다.

그리고... 모든 게 사라졌다.

4년 동안 수집한 자료들이 모두 사라졌다.


웃음은 오래전부터 내 가장 흔한 화장품이었다.
진심과 무관하게, 어떤 상황에서든 발라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묻지도 않은 유쾌함을, 나는 적절히 도포하며 살아왔다.

사실 웃음은 방패였다.
모르면 웃고, 알아도 웃는다.
묻고 싶어도 묻지 못할 때, 입술에 떠오르는 자동화된 미소.
그들이 나를 무능하다 여기지 않도록, 그들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도록, 나는 항상 웃었다.

웃음은 방어였지만 동시에 방치였다.
나는 나를 지키려는 동시에, 나를 버렸다.
속이 울컥 차오를 때도, 비위가 상할 때도, 책임이 떠넘겨져 숨이 막힐 때도,
결국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웃음은 상황을 봉합하는 테이프, 그리고 나 자신을 묶는 족쇄였다.

낯선 창이 화면을 가로막았다.
“백업하시겠습니까, 복구하시겠습니까.”

그 순간 만큼은 난생처음 맞이하는 순간 같았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택창.

아니 들어는 봤으나, 자발적으로 하던 일들이 아니었다.

아이폰 사용자였음에도 백업은 익숙한 버튼이 아니었다.

게다가 백업업무를 맡고 있었음에도...

손끝은 망설였고, 결국 나는 “복구”를 눌렀다.

그리고, 내 컴퓨터 안에서 지난 4년이 통째로 증발했다.
사진, 글, 기록, 조각처럼 모아 온 나의 흔적들이 한순간에 지워졌다.
기계는 아무렇지 않게 깨끗해졌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사라졌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사회에서 매일 눌러온 버튼 또한 ‘복구’였음을.
거짓 웃음으로, 거짓 친절로, 거짓 생존으로,
나는 매일 나를 지워내고 있었던 것이다.
웃을 때마다 내 진심은 한 겹씩 벗겨져나갔고, 결국 남은 것은 텅 빈 껍질뿐이었다.

사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웃으며 연애했고, 웃으며 헤어졌다.
웃음은 위로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도망이었다.
뜨겁게 맞붙어 싸우는 대신, 나는 웃음으로 상황을 유연하게 흘려보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사랑이란 것도 “웃음으로 포장된 척”으로만 끝났다.
온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허무만 남았고, 그 허무가 내 살갗을 감쌌다.

사랑조차도, 결국은 백업되지 못한 자료였다.
사라지면 끝이었다.
남은 건 기억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고, 오직 사라진 자리의 공허뿐이었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그때 컴퓨터에 뜬 낯선 질문 앞에서, 내가 “백업”을 눌렀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내 자료들은, 내 흔적들은 살아남았을까.

그러나 곧 웃음이 나온다.
알면서도, 웃는다.
사람 사이에서든, 사랑에서든,
나는 언제나 복구를 눌러왔던 사람이다.
나의 진심을 백업하지 못한 채, 그저 상황에 맞춰 웃음으로 초기화해 왔던 사람.

이제 웃음은 버릇이 되었다.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것 말고는 다른 생존법을 배우지 못했다.
웃을 때마다, 사라지는 무언가가 있다.
웃음은 나를 지키는 동시에 나를 지워버린다.
사라진 흔적은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와 다르지 않다.
되살릴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순간 이후로 나는,
사람 앞에서 웃을 때마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복구를 누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러나 이미 알고 있다.
내 삶 자체가 복구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남은 건, 허무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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