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책 속에서나 유명 인사는 도망치는 사람을 보며 따끔한 충고의 말을 한다. ‘도망치는 곳엔 천국은 없다’, ‘문제로부터 도망치게 되면 결국 해결책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된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가끔 이런 사람들이 쓱 모습을 드러내어 내게 소리치는 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시련으로부터 도망치지 마,라고 말하고는 내 손을 잡는다. 그러나 나는 눈을 질끈 감은 다음 그들의 손을 뿌리치고 결국 도망치는 선택을 한다.
지난 목요일에 나는 퇴사 의사를 전달했다. 그리고 목구녕 끝까지 차올랐었지만 참아 왔던 말들을 쏟아냈다. 묵묵하게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상사의 얼굴은 꽤 지쳐 보였다. 최근 들어 그에게도 여러 가지 안 좋은 일들이 겹쳐서 일어났는데, 상사는 여전히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힘든 시기를 버텨내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짧게 끝났다. 나는 몇 마디의 이야기를 했고, 그는 내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이번에도 나는 도망쳤다. 그리고 어려운 시기를 겪는, 내 불만을 묵묵히 듣던 상사는 또다시 버텨보겠다고 했다. 문득 나는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모든 풍파를 온몸으로 맞는 그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나를 보고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 두려움을 잔뜩 끌어안은 채 다시 한번 바깥세상에 뛰어드는 나를 보며 부러워할지도 모를 일이다.
오랫동안 뿌리내렸던 자리에서 그 뿌리를 스스로 들어내어 새로운 땅에 심기려는 나의 선택은 어리석은 걸까? 내 손으로 그 뿌리를 뽑아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나는 정답을 알 수 없다. 내 선택이 맞을 수도 있고, 상사의 선택이 맞을 수도 있다. 상사의 선택이 틀릴 수도 있고, 내 선택이 맞을 수도 있다. 무엇이 맞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저 나는 오늘도 도망치고, 상사는 오늘도 버티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