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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회고록 3

에세이

by 미즈와리

나는 5월에 150킬로미터를 달렸다. 달린 거리는 전달보다 줄었지만, 다행히 컨디션이 안정권으로 돌아왔다. 달리고 싶지 않은 날에도 나 자신을 다독여가며 뛴 덕분이다. 5월 중반의 재미있는 기록이 —물론 나 혼자만의 재미지만— 있다. ‘내 앞을 어슬렁거리던 학생과 다시 조우했다. 오늘도 그는 속도를 올려 나를 제쳤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속도는 줄어들었고, 나는 다시 또 그 학생을 뒤편에 남겨두었다’라고 적었다. 물론, 이 모든 건 내 착각이었고, 그 학생은 내 존재 따위 생각지도 않은 채 달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앞지른다는 것, 즐겁지 않은가?


그리고 말일, 잠깐 방문해야 할 곳이 있어서 이십 분정도 자전거를 타고난 다음 달리기를 했다. 언덕배기를 자전거를 타고 올라갔더니, 허벅지는 터질 듯이 당겨왔고 땀도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래서 제대로 달릴 수나 있을까 걱정했지만, 막상 달리기 시작하고 컨디션이 좋아졌다. 13킬로미터를 달렸고, 평균 페이스 4분 44초에 완주했다.


이 기록을 끝으로 나는 다시 한번 하프에 도전했다. 지하철을 타고 뚝섬유원지로 간 다음, 그 길을 쭉 따라 중랑천 상류까지 뛰는 편도 코스였다. 그날, 태어나 처음으로 상의를 탈의한 채 달려보았다. 물론 한강 공원에는 언덕에 핀 들꽃처럼 흐드러지게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중랑천의 일부 구간에서만 벗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상상했던 것 이상의 자유함을 느꼈다. 적절한 감상일지는 모르겠으나 노브라의 자유로움이 이런 것일까,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평균 페이스 4분 58초로 하프를 완주했다. 태양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고, 그에 맞춰 내 땀구멍은 쉴 틈도 없이 땀을 배출시켰다. 하프를 몇 번 완주해 봤던 터라 ‘힘듦’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더운 날씨가 변수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텅 빈 연료탱크를 끌어안고 달렸다‘ 라는 식의 비유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몸소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16킬로미터까지 그럭저럭 잘 달렸어도 앞으로 5킬로미터를 더 뛰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나약한 감정에 빠져버리고 만다.


“문제는 틈을 보이지 않는 거예요. 만약 당신이 잠이 부족하다고 해서 당신 자신을 동정하기 시작하면, 나쁜 힘이 거기서부터 헤집고 들어온다고요. 알겠어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이제 그만 달리고 싶다. 좀 걸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 항상 이 구절을 떠올린다. 나의 상상 속에서 핑크색 슈트를 입은 통통한 여자가 나타나, 내 멱살을 쥐고 흔들며 뺨을 후려갈긴다. 그러면 나는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속도를 올려간다. 틈을 보이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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