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열차
때는 9월 초. 여전히 무더웠지만 어째 오늘은 으스스한 게 긴 소매의 옷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깜빡 잊어버린 내 잘못이다. 서울역으로 향하는 길에 속으로 ’이런 날은 에어컨을 세게 틀 것 같단 말이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주 쿨하게 에어컨이 나오고 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직전 여행에서 나는 객차 내의 더위로 무척 고생했기 때문이다. 참다 참다 지나가는 직원을 붙잡고 용기를 내어 “저어.. 에어컨 좀 더 세게 틀어주시겠어요?” 말하니 그 직원은 친절하게 “더우세요?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기계를 만지작 만지작 조작했다. 나는 그것을 분. 명. 하. 게. 봤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종착역까지 단 한순간도 시원함을 느낄 수 없었다. 이건 분명히 회사 내의 한 방침으로 “에어컨을 세게 틀어달라는 놈이 있으면 모션만 취하도록 하게”라고 직원들에게 교육했을지 모른다.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아무튼 머피의 법칙인지 뭔지 때문에, 기필코 목적지까지 객차 내부는 아주 시원할 것이다. 장담해 본다. 세상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갈 때 감내해야 할 나의 몫일 뿐이다.
춥고 덥고는 개인적인 느낌이야 호들갑 떨지말라고 말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8월 초엔 에어컨을 덜 틀고, 9월 초에 에어컨을 더 트는 것은 철도회사가 멍청한 탓이 아닐런지.
하여간 이래저래 멍청한 열차에 탔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이다.
객차 내 자판기에 손난로를 추가하는 건 어떠실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