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려도 괜찮아, 기다림 끝에 만난 인생의 선물

늦게 빛나는 큰 그릇

by 써니장

어릴 적부터 나는 종종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아마도 남들보다 빠르게 눈에 팍팍 띄는 성취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어릴 적 말도 늦게 트였고, 머리숱도 뒤늦게 많아졌다. 원하는 직장 역시 또래보다 다소 늦게 잡았고, 그제야 비로소 밥벌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불같은 성격이다. "조금 느려도 괜찮아. 끝까지 가는 게 중요하니까." 그렇게 스스로 다짐하며 걸어온 길이었다.

사랑 역시 그랬다. 아마도 하늘이 내 인연을 좀 늦게 점찍어 주신 걸까? 아니면 너무 일찍 만나면 이혼설이나 불화설이 따라온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일까? 하늘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흔히들 말하는 ‘영포티(Young Forty)’가 되었을 무렵, 나는 마침내 그 사람을 만났다.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이 애써 마련해준 선자리와 소개팅도 수도 없이 많았지만, 결국 내 눈에 맞고, 내 마음에 닿는 사람을 만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었다. 어쩌면 이 모든 기다림은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결혼식은 카톨릭 성당에서 경건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 마저도 평범하진 않았다. 코로나19가 클라이막스처럼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기에, 양가 가족을 포함해 단 50명만이 성당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 기이한 상황 속에서도 결혼이 내 인생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그저 뺨을 꼬집어 볼 정도였다. 사실, 나는 '불혹'이 된 순간부터 결혼은 내 인생에서 한창 물 건너간 일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며 ‘취미 부자’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내 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운명처럼 그 사람이 다가왔고, 나는 “정말 결혼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청첩장도 몇몇 분에게만 드렸을 뿐인데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다. "이거 몰래카메라 아니야? 카메라 어디 숨겨놓았어?" "셀프 웨딩 컨셉 청첩장아닌가요"라는 팩트체크 짙은 농담이 오갔고, 나는 맨꼭대기층 강당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던 중 교장실로 호출받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우리반 예쁜 제자들은 기말고사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결혼식에 오겠다고 난리였지만, 극심한 코로나19 상황으로 참석할 수 없었다.

결혼식 날, 모두가 한마음으로 축복해 주었다. 신부는 늘 예쁘다지만, 내 주변 사람들의 축하에는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너무 일찍 하늘나라로 간 우리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어릴 적, 엄마는 직장일로 바쁘셨지만, 주말이면 맛탕과 김밥을 만들어 주시곤 했다. 내 머리숱이 풍성해진 뒤로는 예쁘게 곱게 머리를 빗겨주시던 따뜻한 손길도 떠올랐다. 성당 입구에서 신랑과 손을 잡고 입장할 때, 문득 ‘이 순간, 엄마는 흡족한 미소로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고 계시겠지’ 하는 생각이 따스한 기운과 함께 스며들었다. 특히, 오래도록 나를 지켜봐 온 이모들은 참았던 눈물을 이 좋은날 삼키느냐 혼났다고 했다. 그 모든 축복과 따뜻함 속에서, 나는 진짜 결혼을 했구나 실감했다.


결혼식 날, 모든 것이 경건하고 따뜻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그 순간, 마치 세상이 내게 주는 선물 같았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바로 다음에는 예상치 못한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혼여행은 평범할 리 없었다. 제주도로 향한 이유는 단순했다. 범세계적으로 출국이 불가능했던 상황도 있었지만, 나는 원래 제주도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 행복도 잠깐, 신혼여행의 다음 날, 학교에서 코로나에 걸린 학생과 동선이 겹쳤다는 청천벽력 소식을 제주도에서 전화로 받았다. 그곳에서 10일간 연수원에 격리되어 홀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순간, 결혼식의 기쁨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다시 혼자만의 시간이 펼쳐지자, 고요하고 답답한 현실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새 신랑과의 생이별, 창밖으로 애정어린 눈을 맞추며 영상통화로 겨우 이어지는 대화—그 시간들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절체절묘의 독특한 경험이었다. 신혼지에서의 생이별이라니, 믿기지않았다. 나는 단축수업으로 해당 반에만 잠시 임장해 있었고, 그 학생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얘기한 적도 없었는데, 단 몇 분의 동선이 이렇게 무겁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신혼여행 중이였건 그 때 그 상황이 참 원망스러웠다. 숨이 막힐 듯한 고립감과 답답함 속에서도 나는 내 삶의 속도를 되찾기 위한 주어진 시간속 여정을 시작했다. 책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내적 성찰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했다. 영화로 감정을 풀고, 일기 속에 그날의 생각을 적어 풀어내며, 스트레칭을 통해 몸을 일깨우며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나가면 공기 탁 트인 산에도 가고 두발로 걸으며 자유를 누리고 말테야! 다독이며 버킷리스트를 적어내려가며 참았다.


숨이 막힐 듯한 답답함이 한계에 다다랐을 즈음 격리가 끝났다. 이후, 나는 학교에 '긴급특별공지'를 알리고 우리는 다시 신혼여행을 단양으로 떠났다. 그 끔찍한 격리 기간이 끝나고 나니, 바로 그 다음 순간 내가 가진 자유의 의미를 깊게 느끼게 되었다. 인생처음 패러슈팅을 하며 발밑이 공중에 뜨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단양의 풍광은 수채화같이 번져 있었고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지만, 겨울 바람이 몸을 감싸 안자 모든 잡념이 사라졌다. 모든 무게가 바람 속으로 흩어져 가며 땅 위에서 속박감이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도 괜찮다는 것, 내 삶의 속도는 결국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것. 아래로 내려 올수록 내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졌다. 그순간 억울함도 미련도 남지 않았다. 지금, 나는 자유로웠다. 눈 덮인 하천은 유리처럼 빛났고 산줄기, 논밭 모두 아기자기한 풍광이 두 발이 공중에 뜬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눈 가득 들어오기 시작했다. 겨울속 차갑지만 포근한 바람을 가르며 이야기 나누며 웃던 그 시간들이 우리의 사랑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 돌아보면,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내 인생을 정확히 표현해 준다는 것을 알겠다. 남들보다 좀 늦게 시작했지만, 내 속도대로 쌓아올 성취와 사랑은 더 깊고 단단해졌다. 학생들에게도 가끔은 이야기한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인생을 길게 보면, 가장 아름다운 꽃은 때론 가장 늦게 피어나거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 믿음을 품고, 나만의 속도로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의 인생은 혼자 부르던 솔로의 멜로디에서, 서로의 숨결이 더해진 듀엣으로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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