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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서울 i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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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이 Jun 09. 2021

내가 면허는 없지만

크레스챠니아에서 오페라엔까지 패들보드로가는 법은 알아


  "시간 있으면 면허는 꼭 따. 면허가 있을 때랑 없을 때랑 생각하는 게 달라진다. 갈 수 있는 곳이 훨씬 많아져."

  작은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서른 하나. 아직도 나는 면허가 없다. 면허가 있고 차를 끄는 친구들을 보면 나보다 어려도 어른 같다. 작은 엄마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아서 면허를 안 딴 것은 아니고, 그냥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부 때는 스쿨버스와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덴마크 코펜하겐은 자전거 만으로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작았다.


  작은 엄마의 말씀이 피부에 와닿은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면허를 딴 것은 아니다. 자전거만 있어도 뚜벅이와는 이동 반경이 달라지는 코펜하겐이었다. 코펜하겐은 작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그다지 편리하지 않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같은 거리여도 자전거를 타는 게 더 빠르거나 덜 귀찮은 경로(대중교통 이용 시 짧은 거리도 환승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일 때가 많았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자전거와 어디든 함께 했던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면 눈감고도 가는 익숙한 길도 버스나 메트로를 이용하려면 꼭 지도 어플을 켜 무슨 버스를 타야 하는지, 어디서 갈아타야 하는지 봐야 했다. 코펜하겐에 4년 넘게 살면서 수상 버스도 라이세 코트(rejsekort 코펜하겐의 교통카드)를 찍고 탈 수 있다는 건 최근에야 알았다.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에 살고 있었으나 사람 많은 곳은 질색을 하고 수영도 잘 못하니, 여름의 아마스트란(Amager Strand 코펜하겐에 위치한 해변)과 이슬란드브뤼게(Island Brygge 코펜하겐의 항구)에서의 물놀이는 아예 나와는 먼 이야기, 내 관심사 밖의 일이었다. 수상스포츠도 그러했다.

<여름의 Island Brygge,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덴마크인 친구 G에게 SUP(Standup paddleboarding: 보드에 서서 패들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가는 수상스포츠, 이하 패들보드로 통칭)오랜 시간 열정적으로 해온 취미였다. 재밌고 멋있어 보였지만, 막연히 비용도 많이 들 것 같고, 수영도 잘 못하니 내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작년 4월, G가 자기가 활동하는 수상스포츠 클럽에서 새로운 멤버를 뽑는다고 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마침, 2019년 한국에 갔을 때 수영을 단기 집중 강습으로 배운 후, 수영 처돌이 상태로 물이 그리웠던 나는, 여전히 겁은 조금 났지만 덜컥 한다고 해버렸다. 단기 강습 전에도 어린이 수영단 출신으로 몸이 기억하는 자유형을 흉내는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깊은 물은 여전히 무서웠다. 

단기 집중 강습 후, 생긴 약간의 자신감으로 스웨덴에서 깊이 2m, 거리 50m 레인 수영장에서 몇 번을 자유형과 평영으로 왔다 갔다 하고 나니 '할 만 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이 안 닿는 것은 똑같은데, 최대 깊이 3.5m의 덴마크 수영장들은 도전할 엄두가 안 났었다. 그랬던 내가 바다 한가운데서 패들보드를 탄다는 것에 yes를 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재밌는 일들은 이렇게 얼렁뚱땅 일어났다. 스위스에는 풍경만 보러 갔던 내가, 스위스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응급실에 실려갔는데 병원비가 천만 원이 나왔다는 인터넷 글을 보고 스위스에서는 더욱이 몸을 사리던 내가, 얼떨결에 패러글라딩을 했을 때도 그랬다. 스위스에서 동행을 하기로 했던 언니가 데려온 새로운 일행, 나랑 동갑이었던 그 남자애들은 "스위스까지 와서 패러글라이딩을 안 한다고?" 하고 놀라워했다. 내가 엄청난 걸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에 그들을 따라가 덜컥 예약을 했다. 동행이었던 언니는 스위스에 오기 전 프랑스에서 사기를 당해서 큰 지출을 꺼려했고, 그 남자애들은 나보다 하루 일찍 스위스를 떠났는데 결국은 날씨 운이 안 좋아 패러글라이딩을 하지 못했다. 아무 계획 없던 나만이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아직도 그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 중의 하나이다.


  어쩜 딱 수영을 배우고 돌아온 그다음 해의 봄이었다. 아르바이트를 두 개 해서 취미에 조금 투자할 만큼의 경제적 여유도 생겼다. (그리고 봉사활동으로 운영되는 수상스포츠 클럽의 가입비도 저렴했다!) 얼렁뚱땅 패러글라이딩을 했을 때처럼,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원래는 입회 경쟁이 엄청 치열했던 G의 수상스포츠 클럽은, 코로나로 인해 잠정적으로 신입 회원 모집을 안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신입 회원 모집을 시작하기 직전 내부 정보통 G를 통해 나는 그 수상스포츠 클럽에 빠르게 등록할 수 있었다. G를 안 시간이 긴데도 어쩜 딱 내가 수영을 배운 다음 해에 처음 물어봤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20년 여름에는 패들보드를 할 운명이었던 것 같다.


  여름에 Amagerbro(코펜하겐 중심Amager를 잇는 다리)를 자전거를 타고 건널 때면 카약을 타는 사람들, 패들보드를 타는 사람들을 자주 보았다. 내가 그 바라만 보던 것을 하게 되다니. 첫 수업 날, 안전수칙 패들과 보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에는 패들을 들고 다른 팔에는 보드를 허리에 끼고 물가로 나갔다. 벌써 멋있어진 기분이었다. 수상버스가 다니지 않는 좁은 운하, 발이 닿을 정도의 깊이에서 안전하게 기초교육이 이뤄졌다. 앞으로 나아가는 법과 턴 하는 법, 안전하게 보드에서 넘어지는 법, 누군가가 물에 빠졌을 때 구하는 법도 배웠다. 안전하게 보드에서 넘어지는 법을 익히며 몇 번 물에 빠지니까 물에 대한 공포도 조금 사라졌다.

<코펜하겐의 Operaen, 이미지 출처: Wikipedia>


  두 번째 수업에 바로 큰 운하로 나갔다. Operaen이 있는 큰 바닷가(항구라는 표현이 더 맞을까?). 덜컥 겁이 났다. 물속이 아예 보이지 않는, 깊이가 아예 가늠이 안 되는, 정말 바다였다. 패들보드 강사분들이 겁이 나고 중심을 못 잡겠으면 앉아서 타도 괜찮다고 했다. 취미조차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정확히 말하면 꼴찌는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서있는데 나만 앉아있는 게 초조했지만 열린 바다에서 갑자기 몰려든 물 공포증과 계속해서 치는 파도 앞에서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패들보드를 즐기기 시작한 것은, 릴리즈 테스트(release test: 기본 교육을 일정 횟수 이상 이수해야 칠 수 있는 500m 거리의 수영 테스트. 구명조끼를 입고 수영을 하고 시간제한은 없다. 이 테스트를 통과해야 강사 없이 릴리즈 테스트를 통과한 다른 클럽 회원들과 패들보드를 타러 나갈 수 있다.)를 통과하기 전후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제일 느려도 나와 같이 가주는 누군가가 한 명만 있으면 초조함은 줄어들었다. 날이 더워지고 물가 잔디밭에 모여 일광욕을 하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패들보드를 배우기 전에는 내가 저 잔디에 앉아있는 쪽이었는데. 패들보드 위에서, 물 위에서, 잔디 위의 사람들을 보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패들보드 강습 외에 G와 다른 친한 친구와 함께 패들보드를 타러 가니 G는 육지(?)에 있을 때는 전혀 알 수 없던 것들을 알려주었다. 운하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다리들 밑의 '여기는 맥주를 숨겨놓는 곳', '여기는 재미있는 낙서가 있는 곳', 그리고 '잠시 패들보드를 대고 맥주 한 잔 하기 좋은 바'. 코펜하겐에 4년을 살았는데, 그 전에는 몰랐던 너무나 새로운 세상이었다. 패들보드를 타니 비밀 장소들이 생겼다. 물 위에서도 갈 수 있는 곳들이 생겼다.


  한국에 온 지금, 작년 코펜하겐에서 패들보드를 타던 기억은 한 여름밤의 꿈같다. 나는 여전히 면허가 없고 차를 모는 사람들은 나보다 나이가 어려도 다 어른 같다. 그래도 나는 작은 엄마의 말씀을 알 것 같다. 내가 면허는 없지만 Christiania크레스챠니아에서 Operaen오페라엔까지 패들보드로 가는 법은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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