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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서울 i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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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이 Jun 28. 2021

낭만에 대하여


  나는 사소한 것에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인생의 산발적인 어떤 사건들을, 내 인생의 점들을 선으로 잇는 것을, 그런 생각을 하며 보내는 시간들을 좋아한다. 처음으로 외국에서 여행자로서가 아니라 학생으로 살아봤던 교환학생 1년 동안 나는 하늘 보는 것을 좋아했다. 매일 같지만 또 다른 하늘. 왜인지 한국보다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스웨덴의 하늘, 노을이 질 때면 분홍빛과 다홍빛 사이의 오묘한 색을 띠는, 겨울에는 생각보다 꽤 자주 약한 오로라가 보이는 우메오의 하늘이 좋았다. 


  한국에서 나는 여유가 없었다. 마음에도,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어떤 대단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학점 유지하기, 아르바이트, 봉사활동, 영어점수 만들기에 정신이 없었다. 아마 왕복 4시간의 긴 통학 시간도 한몫한 것 같긴 하다. 우메오에서의 생활은 그래서 특별했다. 외국이어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한 독립이었다. 물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어쩌면 전공 수업들로는 한국에서보다 더 바빠졌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내 마음에도 잠깐이나마 여유가 생겼다.

 

  전공과는 무관한 드로잉 수업을 들었다. 드로잉 수업은 아트캠퍼스에서 했다. 본 캠퍼스와는 꽤 떨어져 있는 아트 캠퍼스는 디자인학과와 건축학과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건물이었다. 강을 따라 난 길을 쭉 걸으면 아트캠퍼스가 나왔다. 나는 드로잉 수업이 있는 목요일이 정말 좋았다. 큰 스케치북을 들고 가야 해서 자전거를 타는 대신 걸어가는 날들이 많았는데, 걸어오면서 하늘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느 날은 출렁이는 오로라를 보고 어느 날은 수많은 별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다. 밤거리를 걸으며, 오늘 하늘은 어땠고 그날 하루는 어땠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N은 히피 같았다. 긴 머리를 묶어 맨 번(man bun) 스타일을 하고 있었고 겨울에도 집 앞을 잠깐 나올 때면 반바지 차림이었다. 기숙사 입구에서 마주친 그 앤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Hej 정도의 인사는 눈이 마주치면 하는 스웨덴 사람들이었지만, 보통은 그게 다 였다. 그는 내게 이름을 묻고 자기도 여기에 산다며 반갑다고 했다. 보통의 스웨덴 사람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중에서야 N과 같이 아는 친구 R에게 N이 내게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 전해 들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후 기숙사 1층에서 그를 마주치는 빈도가 잦아졌다. 1층에 사는 그 애의 공동 주방 창을 사이에 두고 오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히피 백수 같던 그 애는 의대생이었다. 공부만 할 것 같은 의대생의 이미지와 히피 같은 그의 외형이 매치가 되지 않았다. 그 의외성이 특별했다. 한때 의사가 되고 싶었던 나는 어떤 동경도 생겼던 것 같다. 그 애와 피카(fika: 스웨덴어로 커피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쉬는 시간) 약속을 잡았다. 소수의 교환학생들이 모두 알고 지내는 작은 학생 도시, 사생활이 없는 우메오에서, 나름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우리는 층수만 다른 같은 기숙사에 살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수월했다. 게다가 학기가 끝나서 아는 얼굴들이 이미 많이 자기 나라로 떠났을 때였다.


  자유롭고 노는 것을 좋아할 것처럼 보이는 그의 겉모습과는 또 다른 책이 빼곡한 그의 방. 빨래를 하고 정리를 하지 않은 마른 옷가지들이 암체어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책꽂이와 아무렇게나 놓인 옷가지들이 히피 같지만 의대생인 그 애랑 닮아있었다. 그 앤 역사를 좋아한다고 했다. 내게 한국의 역사에 대해 물었다. 왜 남북한이 갈라진 것인지. 이 생각지 못한 대화 주제에 말문이 막혔다. 짧은 순간에 내가 좋은 게 아니라 내가 한국인이어서 좋은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색한 자리가 싫어서 소개팅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짧게 대답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손에 쥔 차를 계속 꼴깍꼴깍 들이켰다. 


 어떤 암묵적인 룰이 있는 것 마냥, 처음엔 그 애가 초대했으니까, 그다음 피카는 내 방에서였다. 그는 내게 뭘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거라면 할 말이 많지. 나는 사진 찍고 여행하는 것, 그림 그리는 것,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마침 내 방 벽엔 내가 찍은 사진들과 그림이 붙어있었다. 내심 '사진 잘 찍는다' 라던가 '멋있다'와 같은 대답을 기대했던 그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근데 그건 다들 좋아하는 거잖아. 나중에 직업으로 하기도 애매하고" 뭐지, 이 꽉 막힌 대답은? 그 애의 히피 같은 외관과는 전혀 매치되지 않는 반응. "어... 그렇긴 하지..." 내가 좋아하는 드로잉 수업에 대해 얘기할 생각에 한껏 들떴던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어색한 몇 번의 침묵과 몇 가지 기억나지 않는 다른 시시한 대화 주제를 끝으로 그와는 어색하게 멀어졌다.


  공용 주방의 창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할 때는, 그와 밤거리를 걸으며 별 이야기를 하는 상상을 했다. "창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해서" 내 친구는 로미오와 줄리엣 같다며 낭만적이라고 했다. 참나, 이렇게 낭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을 두고 같이 별을 보러 갈 생각을 했다니.


  내가 못 가진 의대생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그 애에 대한 어떤 동경은, 그냥 흘려보낼 수 있던 그 애의 말을 내 머릿속에 묶어버렸다. 스물다섯.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어리지만 대학 졸업반으로 나이가 많다고 느껴지던 때였다. 한국에 있는 대학 동기들은 취업하고 대리를 달고, 같이 교환학생을 온 졸업반 오빠들은 내게 졸업 후 계획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그들을 낭만 없는 사람으로 치부했다. 여기서까지 취업 얘기야?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애의 말은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너무 현실에서 발을 떼어 놓고 살았나? 쓸데없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나? 


  학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여행 중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딱 여행의 마지막 날 내가 아끼던 빨간색 펜탁스 카메라가 망가졌다. 나는 그 카메라를 고치지 않았다. 오래되고 단종된 모델이어서 비용을 감당하고 수리를 맡기는 게 경제적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왠지 사진이나 찍고 여행을 추억하고 살기에 나는 너무 나이가 많은 것 같았다. 그림을 그리던 횟수가 줄어들고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았다. 내가 좋아서 그리던 그림들이, 내가 좋아서 일부러 나가고 돌아다니며 찍었던 사진들이, 내가 그걸로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고 어쩌다 발견한 그의 인스타그램. 그럼 너는 졸업하고 뭐할 거냐는 나의 질문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런 당연한 거를 묻냐는 듯이 "의사로 일하지."라고 대답했던 1년 전의 그는, 일하던 병원을 그만두고 세계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와의 피카 중에 내가 말했던, 특히 좋았던 유럽의 도시들과 언젠가는 꼭 가고 싶다고 말했던 남미의 도시들이 포함되어 있는 그의 여행 루트에 혼자 의미부여를 하고, 묘한 안도감과 통쾌함을 느꼈다. 그때의 그 피카가 네 머릿속에도 묶여 있었구나?

  

  나는 다시 사진을 찍고, 이제는 그림은 아니지만 글을 쓴다. 나는 일상에서 낭만을 찾을 때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작동이 쉬운 자동 필름 카메라를 쓰고, 조리개며 빛이며 읽어봐도 금방 잊어버린다. 그냥 찍고서 결과물을 기다리는 시간이 좋다. 필름을 인화했을 때마다 그 새로 선물 받은 듯한 기분이란. 브런치에 글을 쓰고 혼자 만족하고, 업로드하고 하트를 받는 게 재밌다. 수입은 없고 오히려 필름 카메라는 돈이 드는 취미이다. N의 말이 내 머릿속에서 끊어져 나간 지는 한참 된 것 같다. 내 삶에 남의 기준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작은 즐거움이 잦은 게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도 여행 후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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