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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서울 i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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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이 Jul 11. 2021

좋은 선생님, 좋아하는 선생님.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좋다'와 '좋아하다'의 차이점을 가르칠 때가 그랬다. 비슷하게 들리고, 비슷한 뜻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영어로 생각해보니 'good'과 'like', 형용사와 동사로 꽤 큰 차이가 있었다. 예문을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좋은 선생님일 수는 있어도 안 좋아할 수도 있는 거잖아? 좋다의 기준은 뭘까? 선생님의 본분은 가르치는 것이니까 일단 어떤 과목을 잘 가르치면 좋은 선생님인 것 아닐까? 좋은 선생님과 좋아하는 선생님, 결국 이 예문은 수업시간에 쓰지 못했다. 좋은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아서. 좋은 선생님인데 학생들이 안 좋아할 리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좋은 선생님일까? 나는 전문적인 선생님이 아니다. 한국인이라는 것, 영어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별다른 면접도 없이 나는 한국어 선생님 자리를 얻었다. 그나마 내가 한국어 선생님으로 면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과외와 교육 봉사로 누군가를 가르쳐보았던 경험과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고등학교 다닐 때 언어 점수는 걱정이 없었던 것 덕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늘 첫 시간에 아이들에게 말했다. "나는 전문적인 선생님은 아니야, 그래도 노력하고 있어." 


  한국어 교원 자격증이 있거나, 국어국문학을 전공하신 진짜 한국어 선생님들과 내가 가르치는 방식에는 분명 수준 차이가 많이 날 것이다. 아이들이 "은/는"과 "이/가"의 차이를 물을 때면 '어? 그렇네. 분명 이 자리에는 이/가를 쓰면 어색하고 은/는을 써야 되는 건데, 둘 다 주격 particle 아닌가?' 혼란스러웠다. 긴 생각 끝에 예문을 들어서 설명을 해주면 아이들은 이해를 하고 넘어갔다. 그래도 나는 마음 한켠이 찝찝했다. '좀 더 명확하게 문법적으로 설명해주고 싶은데.'




  내 수업을 세 번째 듣고 있는 학생이 있다. '지현'이라는 한국어 이름도 있는 그 친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반장처럼 수업 분위기를 이끌어주는 친구다. 학생들과 그룹 스냅챗(요즘 아이들은 단톡방도 스냅챗을 쓰더라)방을 만들어서 매주의 수업 내용을 공유해서 수업을 빠진 친구들도 그다음 수업을 잘 따라오게 이끌어줬고, 못 오는 친구들이 있으면 내게 전달도 해주었다. 지현이는 덴마크어 말고도 프랑스어, 영어도 수준급으로 했고, 한국어와 동시에 일본어도 배우고 있었다. 한국어 수업이 덴마크어가 아닌 영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학생들 중에 영어가 조금이라도 서투른 아이들이 있으면 조금 더 자세하고 쉬운 설명이 필요했다. 언어적 능력이 탁월한 그 아이는 수업 중에도 학생들과 나와의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 내 문법적 설명이 조금 모자라다고 느꼈을 때 지현이는 덴마크어로 아이들에게 다시 설명해주고 나는 덕분에 수월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내가 선생님으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낀 것도, 기초반과 중급반 두 개의 반을 맡게 되고 지현이가 없는 기초반과 지현이가 있는 중급반을 가르치는 난이도가 달라졌음을 느꼈을 때였다. 나는 좋은 선생님은 아니구나. 놀라울 만큼 빠르게 언어를 배우고 흡수하는 중급반 아이들을 보며 나의 한계도 느꼈다.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전에는 없었던 부담감도 생겼다.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이들이 예뻤다. 나도 모르게 이름을 더 잘 기억하는 아이들이 생기고, 조금 더 기억에 남는 학생들이 생겼다. 학생 때 편애하는 선생님을 그렇게 싫어해놓고서 내가 그런 사람이 되다니. 나는 정말 좋은 선생님은 아니었다.


  그래도 한 학기를 가르치다 보면 마지막 날까지 나오는 학생들 하나하나 모두가 예쁘고 기억에 남는다. 이런 내 마음을 학생들이 알면 내가 좋은 선생님이 아니어도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선생님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아이들이 내가 처음으로 덴마크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해 줬던 만큼, 매 학기가 끝날 때마다 아쉬웠다. 그런 마음을 담아 음료도 준비하고, 항상 케이크를 구워가는 수업 마지막 날. 매 학기마다 바뀌는 반 아이들도, 매 학기 선물을 준비한다. 아이들 나름대로 몰래 준비한 깜짝 선물과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쓴 편지. '우리의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 이슬'이라고 적혀있었다.


아이들이 적어준 편지와 메세지. 나도 너희같은 학생들을 만나서 가르치는 내내 보람있고 행복했어!




  내가 좋은 선생님은 아니었지만, 너희들이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이었구나. 나는 표현도 잘 못하는 무뚝뚝한 선생님이었지만, 너희들이 그리울 거야.


- 3년 간의 한국어 수업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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