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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서울 i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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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이 May 03. 2021

너는 큰 물고기였어

영화 <빅 피쉬>를 보고


 엄마는 어릴 적 자기 전에 자주 책을 읽어주셨다. 잠들 기 전 혼자 깨어 있는 시간이 무서워서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엄마가 동화책 한 권을 다 읽어줘도 잠이 안 오면 나는 이층 침대의 난간을 똑똑똑 두드려 아래층에서 자고 있는 동생이 깨어있는지 확인했다. "세 번 두드리면 잠이 하나도 안 오는 거고, 두 번 두드리면 중간, 한 번 두드리면 곧 잘 거 같단 뜻이야. 내가 두드리면 너도 두드려서 알려주는 거야, 알았지?" 동생은 늘 똑똑, 대충 침대 프레임을 치고 내가 다시 똑똑똑 하면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항상 내가 더 나중에 잠들었다. 엄마도 매일 밤 책을 읽어주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 카세트 테이프 세트가 함께 있는 세계 동화 전집을 산 이후로는 동화책은 카세트가 대신 읽어줬다. 테이프가 한 바퀴 돌고 철컥 다른 면으로 돌아가 한 바퀴를 더 돌아도 잠이 안 올 때가 있었다. 카세트가 읽어주는 동화책은 배경음악이 깔려서 왠지 더 음산하고 무서웠다. 나는 동화책이 좋은 게 아니라 자기 전에 엄마가 옆에 있는 게 좋은 건데. 아무것도 몰라. 엄마가 오늘은 테이프 듣고 자, 하면 그날 밤 나는 삐져서 잠이 오질 않았다.


  잠들기 전 귀신이 나올까 무섭다기보다 나의 파고드는 생각이 더 무서워진 어른이 되었다. 엄마도 카세트도 더 이상 자기 전 책을 읽어주지 않는다. 대신 엄마는 그 날 하루 직장에서 있었던 속상했던 일들을 내게 털어놓는다. 스스로도 여유가 없는 나는 그런 이야기가 버겁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듣는 척하면서 멍 때리고 있다가, 아 그래서 그 사람이 뭘 했다 그랬지? 다시 질문해도 엄마는 지치는 기색 없이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를 한다. 정 반대의 상황에 화를 내던 빅 피쉬의 윌이 떠오른다. 허무맹랑한 꾸며낸 이야기만 해대는 아버지(에드워드 블룸)에게 나는 당신의 10% 밖에 모르겠다며 화가 난 아들(윌 블룸). 나는 좀 비현실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듣고 싶다.


  엄마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어느 정도 듣다가 나는 화제를 돌린다. "엄마 내 태몽이 뭐라고 그랬지?", "너는 큰 물고기였어. 엄청 큰 물고기랑 물속에서 막 수영을 했어. 엄마는 수영도 못하는데.", "무슨 물고기였는데?" 이 이야기는 내가 주인공이니 여러 번 들어도 언제나 재밌다. "하얀, 은색 빛의 잉어였어.", "아 나 잉어 싫은데, 큰 물고기면 고래 같은 거 하면 안 돼?", "얘는 무슨, 태몽을 어떻게 바꾸냐?" 비죽 새어 나오는 웃음. 또 엉뚱한 요구를 한다. "여기다가 그 물고기 그려봐." 엄마는 또 당신은 그림을 못 그린다며 어떻게 그리는 거냐며 툴툴거리면서도 또 그린다.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물고기'보다는 '생선'같은 그림. 피식 다시 웃음이 난다. 이제야 아까 엄마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은 게 미안해진다.


아버지의 이야기 마지막 장을 멋지게 채워준 윌 <이미지 출처: Den of Geek>

  아버지의 이야기 보따리 마지막 장을 멋지게 채워준 윌. 배웅하는 물가의 윌과 그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자유로운 큰 물고기가 되어 떠나는 에드워드. 우리 엄마의 태몽이 저랬을까? 엄마도 날 만난 날 큰 물고기를 봤다고 했다. 그 눈이 순해 보이는 물고기와 함께 수영을 했다고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랑 쟤네 아빠랑 반반씩 섞였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아니, 그러면 갈등이 그려지지 않아서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았으려나? 아냐, 애초에 그 반반이라는 게 어렵지. 그런 사람이 어딨어. 중간이 제일 어렵지. 우리 엄마가 에드워드 같았어봐, 윌이 또 이해될걸.'


  윌은 그런 꾸며낸 이야기는 어린아이 일 때나 재미있지, 어른이 되어 다 거짓말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허무하다고 했다. 나는 그게 부러웠다. 나는 엄마에게는 항상 어린아이이고 싶은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더 어른 같은 게 싫었다. 이혼 후 혼자 두 딸을 키울 생각에 일부러 더 당차게 행동했던 엄마는 딸들이 다 크고는 다시 부끄럼이 많아졌다. 어딜 가도 주문하는 것은 나와 동생에게 시켰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은 이렇게 먹는 게 맞냐고 마치 꼭 정해진 먹는 방법이 있는 양 물었다. 엄마는 어른인데도 우리들에게 물었다. 이거 이렇게 하는 거 맞아?


  그래도 엄마가 나보다 어른이었다. 내가 하소연을 하는데 저렇게 듣는 척하다가 화제를 바꿨어봐, 나는 엄마에게 왜 엉뚱한 소리를 하냐며 화를 내겠지. 왜 자꾸 똑같은 태몽 얘기는 해달라고 하냐며 그림 그려달란 엉뚱한 요구도 들어주지 않겠지.

  

  윌은 아버지를 위해서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줬잖아. 그러면서 아버지를 이해했잖아. 나도 엄마를 위해 그 날 힘든 일 정도는 들어주고 같이 욕해줄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매일매일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주던 그 밤들을 생각하며. 내가 가끔 듣는 척만 하고 딴생각을 하는 건 카세트 테이프를 틀어준 날들이랑 퉁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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