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당을 만나다
나 혼자작가, 독자 다 하다가 처음으로 독자들이 생긴 날
"이번 글쓰기 모임 17일 일요일 다섯신데 참석할래?"
같이 교환학생을 가서 친해진 C언니와 L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몇 년째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도하고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소모임 하나쯤 갖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나도 참여하고 싶었지만, 한국에는 일 년에 한 번 정도나 가니 여건이 안돼 부러워만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충동적인 귀국,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연장된 체류로 나는 그 부러웠던 모임 <쓰당>의 일원이 되어 세 달째 참여하고 있다.
내가 참석하는 첫 번째 주의 주제는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이었다. 유명한 작가이지만 그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제목과 작가 이름만 알 뿐 그의 책은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다. 책을 읽고 키워드를 뽑아서 그에 맞는 글을 쓰면 된다고 했다. '제목이 좀 어려워 보이는 데 에세이일까? 에세이면 재밌을 것 같다.' 자가격리 중에 아빠에게 부탁하여 받은 책의 표지는 딱 봐도 지루해 보였다. 촌스러운 글씨체에 낡은 표지, 혼자 도서관에 갔었더라면 절대로 펼쳐보지 않았을 책.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이었다. 짧은 단편이 여러 편 있었는데 제목이 겹치는 작품들이 있어 혼란스러웠다.
숨어있던 자격지심이 올라왔다. "역시, 글 쓰는 사람들은 이런 책을 읽는구나." 책은 어려웠고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 읽기와 글쓰기에 막막해졌다.
5년의 외국생활로 퇴화한 한국어가 느껴지는 건 이런 때였다. 좀처럼 세련된 단어, '이 상황에 쓰면 딱인데!' 싶은 단어가 생각이 안 났다. 분명 너무나 하고 싶었던 모임인데 마감기한이 정해진 숙제를 하는 기분에 '어, 이거 아닌데'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글을 썼다가 지웠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는 했지만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읽는 것만 많이 해봤지, 여러 명 앞에서 읽을 글을 쓴다는 게 왠지 좀 부담스럽고 잘해야만 할 것 같았다. 썼다가 지웠다가. 결국 발표하게 된 글은 글쓰기 모임 당일 아침에 급하게 새로 쓴 글.
글을 올린 순서에 따라 자기 글들을 낭독했고 피드백이 오갔다. 다른 친구들의 글은 담담하고 담백한 문체의 에세이였는데, 나의 글은 서평도 에세이도 아닌 것이, 잘 쓰고 싶은 마음은 또 잔뜩 들어간 글 같아서 마치 드레스코드를 잘 못 알고 파티에 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하는 모임임에도, 아니면 온라인이어서 더,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느낌이 들어 글을 읽는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쓴 글을 낭독했던 적은 정말 초등학교 이후로는 없었던 것 같은데. 혼자 쓰는 글쓰기에만 익숙했던 나는 발가벗은 듯한 기분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단어의 정의로 글을 시작하는 게 재밌다."
"이렇게 구체적인 단어로 빗대니까 이해가 더 잘되는 것 같아."
"그럼 즈데나의 편지가 흑역사라는 거야?"
예상치 못한 긍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왔고 얼떨떨하면서도 내 글에 대한 질문들에 신이 났다. 마치 신간 출판회에 앉아있는 신인 작가가 된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와 상기된 표정으로 첫 인터뷰에 응하는 내가 거기 있었다.
책이 어려워서 나는 이 모임의 수준에 안 맞는 사람인가 지레 걱정했던 게 우습게도 책을 다 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