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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서울 i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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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이 May 12. 2021

옷깃만 스치는 사람들이 주는 상처와 약

#StopAsianHate


  "Jävla kinesisk corona (야블라 키네시스크 코로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주 짧은 횡단보도의 맞은 편의 남자가 우리에게 한 말이었다. 가운데 손가락과,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가운데 손가락을 형상화하는 주먹질과 함께, 얼굴이 닿을 것만 같은 거리에서. 우리말로 하면 "x 같은 중국 코로나바이러스"정도 될까? 그 짧은 거리를 건너는 찰나의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외국인으로 사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인종차별을 당할 것 같은 순간들은 촉이 온다. 10대 무리들이 히죽이며 걸어올 때, 딱 봐도 약을 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불쾌한 눈빛으로 쳐다볼 때, 술에 취한 사람들을 지날 때가 그때이다. 공통점이라면 본인이 하는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운 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의 사람이라는 것. 배우지 못해서거나, 제정신이 아니어서 체면 생각을 못할 때.


이번에도 우리는 알았다. 길 건너편의 저 사람이 우리에게 무언가 할 것이라는 것을. 그는 "씩씩거리다"라는 말이 이런 걸 보고 만들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멀리서 봐도 화가 나 있었다. 남자친구는 나를 그 남자가 오는 반대방향에 세웠다. 그리고 예상했던 무언가가, 예상치 못했던 행위(가운데 손가락을 형상화하는 주먹질)로 일어났다.


우리는 깔깔대고 웃었다. "What the heck?"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말을 했다. "이거 완전 잘못된 대상을 향한 잘못된 분노 아냐?", "저 사람 오늘 코로나 때문에 직장에서 짤렸나보다."

어쩌면 터져 나온 웃음은 안도의 웃음이었을지 모른다. 본능적으로 '맞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던 게 가운뎃손가락으로 끝나서. 그 이후로 한참을 그 사건을 가지고 농담을 했는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내가 이 일에 그만큼 충격을 받아서, 이 사건을 웃어넘기고 싶어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사건 이후 한동안 거리에서 사람들을 지나칠 때 맞은편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나가면서 '니하오'와 '치나'는 가끔 들었었고, '너네 나라로 돌아가'란 말도 들은 적 있었지만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처음이었기에 그 여파가 오래갔다.






  트럼프 미 전 대통령의 "중국산 바이러스 Chinese virus"라는 트윗은 유럽까지 왔다. 광대 같은 그는 어쨌든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전 세계 언론이 이 이야기를 보도했다. 그리고 그의 발언은 누군가에겐 속 시원함과 함께 분노의 대상을 만들어준 듯하다. 덴마크에서 나의 한국인 친구들은 10대 무리들에게 "Corona, go back home"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크게 기사화되지는 않았지만 덴마크에서도 아시안 여성이 묻지마 폭행을 당한 사건도 있었다. 애틀란타 총격 사건 전에도 세계 곳곳에서 아시안을 향한 증오범죄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 증오의 대상인 동양인이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필리핀인이든, 덴마크인이든, 미국인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스웨덴을 반년 후 다시 찾았다. 여전히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수가 손가락 안에 꼽힌다. 다른 어느 곳보다 위험한 장소일 수 있는 공항에서도 마중객들은 마스크를 안 쓴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나와 같은 생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고 싶지 않아서 마스크를 꼭꼭 착용하고 있는 줄 알았던 사람들은 공항 출구를 나서자마자 마스크를 벗었다. 그들은 공항버스를 타니 다시 마스크를 썼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서운 게 아니라 벌금이 무서웠던 걸까. 공항버스가 시내 중심으로 들어서자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이곳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평행 세계. 날이 길어지고 따뜻해지면서 식당과 카페의 야외 테이블은 온통 만석이었다.


우리를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부르며 엿을 먹인 그 남자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바이러스 때문에 아프고 죽고 이 사달이 난 거고, 마스크만 써도 그 병에 걸릴 확률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동양인에게 엿을 먹인다고, 때리고 죽인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게 아니야.






  다시 찾은 스웨덴은 비가 내리고 어둡고 우중충하던 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높고 파란 하늘, 그 위에 걸친 나무 위의 노란색 꽃들이 꼭 스웨덴의 국기 같았다. 사람들의 얼굴에도 꽃이 폈다. 계절이 지남과 함께 우리에게 다짜고짜 엿을 먹인 그 남자에 대한 기억도 흐릿해졌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나의 노력은 계속됐다.


어제도 날이 맑았다. 밖에 나가는 것보다는 집 안에 있는 게 마음이 편했지만, 우울해지는 마음에 환기(換氣)를 시켜주러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 맞은편에서 이제 막 뛰기 시작한 아이와 그 가족이 손을 잡고 걸어오는 게 보였다. 곱슬거리는 금발에 까르르 웃고 있는 행복해 보이는 그 귀여운 아이에게 저절로 눈이 갔다. 그 가족들이 가까워지고 이제 시선을 옮기려는 순간, 아이가 활짝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든다. 나도 급하게 "Hej, hej (안녕)" 하고 웃어주었다.


내 마음속 응어리는 그 짧은 순간 다 녹아버렸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들보다 더 많아. 움츠러들지 말고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자. 녹은 마음을 다시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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