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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서울 i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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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이 Apr 30. 2021

이상한 애증의 덴마크


  나의 첫 애증의 대상은 수학이었다. 과학이 좋아서 선택한 이과, 내가 수학은 잘 못한다는 사실은 안중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나의 고3 시절은 8할이 수학과의 싸움이었다. 내가 수능을 본 해의 교육과정 기준으로 이과 수학은 가형, 문과 수학은 나형으로 분류되었는데, 아무래도 나형의 범위가 적기 때문에 이과에서 수학을 못하는 학생들도 나형으로 돌리면 바로 2등급은 나왔다. 담임은 나형으로의 선회를 권유했지만 나의 자존심에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선택할 수 있는 대학과 학과도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나는 끝까지 가형을 고집했다. 그리고 수학에 8할을 쏟아도 1-2등급이 나오는 다른 과목들을 믿고 수학에 내 시간과 노력을 바쳤다. 나를 간 보기라도 하듯 모의고사에서는 훌쩍 점수가 오르다가 수능날 나를 배신해버린 수학. 나는 그런 수학을 사랑하고 미워했다. 공대도 수학과도 아닌 전공을 선택하니 의외로(?) 대학교 1학년 때 일반 수학 말고는 수학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나는 그게 참 허탈하고 아쉽고 그랬다. 이런 게 애증의 감정이구나. 고3 때 열심히 풀었던 수학 문제집도 버리기가 어려웠고, 수학이 날 배신한 그 날의 수능 문제는 다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수학을 향한 미련은, 공업 수학을 한 학기 들어보고 깨끗이 정리했다. 야, 난 널 사랑했던 게 아니구나.


  덴마크를 생각하면 갑갑해져 오는 가슴. 그럼에도 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이 마음. 수학을 향한 그때의 내 마음과 비슷한 것 같다. 20대의 절반을 덴마크에서 보냈다. 5년이라고 하면 짧지만, 20대의 절반이라고 하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지 않은가? 나에겐 그렇다. 이 나라에서 밖에 안 쓰는 이상한 덴마크어를 꾸역꾸역 배웠다. 단지 이 사회에 잘 섞이고 싶어서. 그 5년이 꽤 힘들었고, 딱히 이 나라에서 환영받는다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음에도 나는 이 나라에 이상한 애정을 느낀다. 수학이 좋아서 이과를 선택한 게 아니라 과학이 좋아서 그랬던 것처럼, 딱히 덴마크가 좋아서 덴마크를 선택한 게 아니라 스웨덴이 좋았으니 그 옆 나라도 비슷하겠거니 하고 선택한 거였는데. 참 인생은 알 수 없다.


  처음 덴마크에 도착했을 때는 스웨덴어보다 이상하게 들리는 덴마크어에 정이 안 갔고, 스웨덴과는 달리 쉽게 술을 살 수 있는 덴마크의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술병들과 금요일 밤 지저분한 S-tog(코펜하겐 도심과 근교를 지나는 지상 열차) 안의 풍경들이 참 별로 였는데. 이제 나는 이상하게도 덴마크 편을 들게 된다. 스웨덴인 남자 친구가 우스꽝스럽게 덴마크어를 흉내 내면 (스칸디나비아에서 덴마크어는 언제나 놀림의 대상이 된다. 흔히들 목에 뜨거운 감자(*감자가 노르웨이어 potet와 스웨덴어potatis로는 영문과 비슷한데 덴마크어만 kartoffel이어서 이것도 놀림감)를 넣고 말하는 것 같다고 말하고, 일부 동의하는 바이다.) 나는 정색을 하고 덴마크어에는 그런 소리가 없다고 되받아 친다. 시스템볼라겟(Systembolaget)이라는 주류 전용 상점에서만 술을 팔고 그것도 저녁 7시면 문을 닫는 스웨덴이어도 거기서 쫓겨나는 약과 술에 취한 사람들을 자주 보았으니, 덴마크나 스웨덴이나 뭐.


  덴마크에 대한 나의 감정은 애증이란 단어 말고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 우중충한 날씨가, 그 비를 다 맞아가면서 타는 자전거가 싫은데, 좋다. 크리스마스만 기다리는 긴긴 겨울이 싫은데, 좋다. 덴마크 사람들의 단순하고 직설적임에 상처를 받았다가도, 그 뒤끝 없는 단순 명확함이 좋다.  


  덴마크어 언어교환 모임에 가서 스웨덴어를 대충 덴마크 발음을 흉내 내어 뱉어놓고 알아듣길 바라며 눈치 보던 나는, 스웨덴어를 읽으려고 하면  나도 모르게 덴마크어 발음으로 읽고, 덴마크어를 하면 스웨덴 악센트가 느껴진다고 하는 이상한 혼종이 되었다. 햇볕에 타는 것을 싫어하고 더운 여름은 더더욱 싫어하던 나는, 햇빛에 집착하고 여름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근데 사실 북유럽의 겨울을 보낸 사람들은 대부분 다 그럴 것이다.) 계단 오르기도 싫어했던 나인데, 이제 편도 40분 정도의 자전거 통근 시간은 기본이다.

  

  덴마크를 떠난다고 하면 나는 어떤 미련이 남을까? 그리고 공업 수학처럼 이 감정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일깨워줄 무언가가 또 있을까? 시큼한 라이브레드(rødbrød:덴마크인들의 밥과 같은 주식)가, 눅눅한 요거트에 오트밀이, 심심한 에블레스키우(æbleskiver: 타코야끼의 유래가 된 음식으로 덴마크의 크리스마스에 먹는 간식)가 그리운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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