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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리스타 Sep 04. 2024

냉장고, 침대가 부서져도 지낼만합니다.

브라질 겉핥기 보고서 4 - 우리는 한국에서 행복을 배우지 않는다 2부

(1부에 이어)


역설적이지만, 브라질 교환학생 생활 중 가장 힘든 점은 '돈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상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그대로 이해해 주면 좋겠다. 평생 한국에서 살아온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나'라는 존재는 욕망에 충실하다. 좋은 거, 맛있는 거, 멋진 게 보이면 사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는다. 나의 소비는 낭비가 아니라 나를 위한 '가치 소비'라고 혼자 위로한다. 나의 지출은 누군가의 수입이 되고, 부가가치세로 정부의 세수에까지 도움이 되니 결국 우리 경제에 기여한다는 그럴싸한 믿음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마이너스가 아닌 한, 나에게 돈은 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대체로 한국인은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불편함'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 있다. 가구, 가전제품, 전자기기 등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다. 얼마를 쓸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샤오미, 화웨이 등 값싼 중국 제품 대신 삼성과 애플을 선택하는 이유는 첫째로 우리가 적당히 돈이 있기 때문이며 둘째로 어차피 나갈 지출 좋은 걸 사자는 심리이다. 우리는 더 좋은 조금 싸게 사기 위해 고민하지, 돈이 부족해서 중국 제품을 구매할까 고민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철저한 자본주의 인간들이다. 


21세기 지구촌 사람들은 다 비슷할 줄 알았다. 1인당 경제력에 따라 물가도 얼추 비슷한 수준이겠지 생각하며 어느 나라든 다 똑같겠지 생각했다. 그렇지 않음을 브라질에 와서야 깨달았다. 


그럭저럭 살아집니다


남자 14명이 한 집에 모여 살면 온갖 문제가 다 발생한다. 냉장고 문짝이 부서지고 침대가 무너졌으며, 정수기가 고장 났고 물이 끊겼다. 인터넷이 가끔 안 되는 건 일상이다. 내 방 4인실의 한 달 월세는 650 브라질 헤알, 한화로 약 15만 원. 한국외대에서 가장 저렴한 구(舊) 기숙사 4인실의 가격과 같다. 외대 기숙사도 2인실을 쓰면 달에 30만 원이다. 그러니까 650 헤알의 월세는 큰 부담이 아니다. 월세 안에는 집주인에게 보내야 하는 임대료와, 수도-전기-인터넷 등 각종 관리비, 식용유-커피와 같은 기본 식료품과 세제와 락스 등 생활비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종종 사고가 발생하면 우리끼리 회의를 통해 자금을 운용한다. 사건사고가 없으면 그럭저럭 운영할 만한데,  남자 14명이 사는 데 일이 안 터질 리가. 


처음에는 정수기가 고장 났다. 이 더운 나라에 사는 데 정수기에서 찬물이 안 나오니 미칠 노릇이었다. 필터만 교체하면 될 줄 알았는데 기기 자체가 고장 난 거라 결국 한 달 뒤에 새로 구매했다. 보통은 정수기 설치를 위해 전문기사를 부르기 마련이다만, 정수기도 겨우 산 마당에 기사 부를 돈이 어딨는가. 정수기 설치는 우리끼리 하기로 했고, 호스를 연결하다 물이 터졌다. 주방이 물바다가 되긴 했는데 어찌 잘 설치해서 아직까지 잘 쓰고 있다. 


호스 연결에 실패해 물이 뿜어져 나옴에도, 웃음뿐이다.


버티다 못한 냉장고 문짝이 박살 났다. 늘 그렇듯 먼저 우리끼리 해결하기 위해 드라이버로 경첩을 열심히 조여봤지만 성공할리가 없었다. 결국 냉장고를 구매해야 한다는 회의 결론이 나왔는데, 같은 시기에 하필 이층침대가 무너졌다. 한국이었다면 각자 돈을 더 지출해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만 여기는 브라질이다. 월세 이상의 지출은 너무 큰 부담이다. 결국 중고 소형 냉장고를 먼저 구매하기로 했고(그나마도 이미 망가져서 뒷마당에 방치되었던 냉장고를 팔아서 돈을 보탰다), 룸메이트 다비(Davi)는 바닥에 매트릭스를 깔고 약 두 달간 잠을 자야 했다. 이층침대를 650 헤알을 주고 사긴 했는데, 이후 수도세가 밀리는 바람에 하루동안 집에 물이 끊겼다. 변기물이 안 내려가고 샤워기도 작동을 안 해서 근처 헬스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뿐인 아들을 지구 정반대로 교환학생 보낸 부모님에게는 경악할 만한 소식이겠지만, 그러려니 하고 이렇게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살아진다. 한국에서는 살면서 경험하지 못한, 아니 듣도보도 못한 일이 발생하지만 그럭저럭 살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음을 배우게 된다. 주문한 이층침대는 역시 우리가 조립했는데, 전동드릴이 없어서 직접 드라이버로 하나하나 돌려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옆집에서 담장을 넘어온 나뭇가지를 정리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전문가를 부르기에는 비싸서 친구가 마체테와 도끼를 들고 사다리도 없이 나무에 올라가 직접 정리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떻게든 돈을 쓰기 전에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 웃음도 나온다. 어이가 없지만 다 같이 웃을 수 있다면 이것도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행복이란 대체 무엇인가?


'행복'에 대한 물음이 완전히 흔들리고 있는 요즘이다. 우리가 온갖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돈 없이 해결한 건 아직 젊음이 함께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40대가 되어 결혼하고 자식도 있는 집에서 냉장고가 부서지고 집안이 물바다가 됐는데 웃을 수 있을까? (물론 브라질 친구들 역시 가장 돈이 없을 대학생 시기임을 감안해야겠지만.) 사소한 불편함이라도, 지불해야 할 대가가 크지 않다면 기꺼이 돈을 내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한국인으로 살아왔고 평생 몸에 묻은 습관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돈이 곧 행복이라는 생각은 수정하게 된다. 소비를 좋아하는 자본주의형 인간이지만, 고액 연봉과 명품 시계가 행복의 총량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브라질의 1인당 소득이 한국과 비슷해진다면 이들 역시 명품 소비를 추구하고 돈을 더 쓰려고 할 것이다. 모토로라 스마트폰을 쓰면서도 아이폰이 더 좋다고 여기는 브라질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결국 인간이란 다 똑같다는 결론에 어렴풋이 이른다. '삶의 최소조건'이란 사람마다 사회마다 다르겠지만, 그렇다고 삼성보다 모토로라가 좋아서 모토로라를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니 행복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나에게 던지는 질문임과 동시에 각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얼마큼' 벌어야 하고 욕망할 수 있는지에 관한 양적인 문제일 수도, '어떻게' 살고 행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한국은 '얼만큼'에 관한 한 이미 충분하게 누리고 있다. 반면 브라질은 '얼만큼'에 대해서는 부족하지만, '어떻게'에 대한 답은 알고 있는 듯하다. 취업준비를 앞둔 이 나이에 한국에서는 연봉, 기업 순위, 학점 등 숫자의 대화가 오간다. 브라질 친구들은 '항상 즐겨야 해'라고만 말한다. 너무나 극단적인 가치관 사이에서 나의 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더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여전히 물음만 남긴 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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