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의 핸들은 제가 쥐고 싶었어요(3)

헬리콥터 부모 밑에서 자라온 외동딸이 행복한 거라 믿고 싶다.

by 숨니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너를 이만큼 생각해주고 사랑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엄마 아빠밖에 없어." 이 말은 부지불식간에 내 모든 생각과 행동을 억제한다. 이를 테면, 부모님이 절대 좋아하지 않을 옷을 입는 다던가, 음식을 먹는다던가, 외박을 하거나 일탈을 하거나. 단순히 말 잘 듣는 착한 딸이 되고 싶어 억제를 한다? 나의 경우에는 절대로 아니었다. 그저 저 말을 떠올리면 겁부터 난다. 할까 말까 수십 번을 혼자되네이다 결국 그 겁과 두려움에 잠식된다. 아 못하겠다--하면서 말이다.


부모님의 마음에 들고 싶다, 라는 목표는 세워본 적 없다.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때 발생할 지겨운 싸움과 그 끝엔 결국 속상해하는 부모님을 보고 싶지 않은 게 맞다. 그래야 조용하게 하루가 넘어갈 테니까. 이미 부모님의 마음은 온통 나의 것이다. 내가 제발 더 이상 주지 말아 달라고 말해도 될 만큼 이미 차고 넘친다. 그 마음과 애정이 나를 빠져 죽게 할 만큼 너무 커다랗기 때문에 겁이 난다. 그리고 애써 모른 척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해 봐도 나는 결국 마음에도 없는 잘못을 시인하고, 이후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을 때 나의 사과는 오히려 나를 찌르는 빌미 좋은 화살이 된다. "지난번에 그렇게 싸우고, 안 그러겠다고 말해놓고 또 안 지키지. 또 엄마 열받게 하지. 다 널 위해 그렇게 해주는 건데 고마운지도 모르고 못되게 굴지." 이 얘기를 듣는 게 수천 배 스트레스다. 차라리 그냥 안 하고 만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니 애초에 태어나 자라오면서 자연스레 축적이 된 게 아닐까? 부모님은 내가 태어난 이레로 난 한순간도 나를 당신의 관심 영역에서 제외시킨 적이 없다. 나 자체가 삶의 이유이자 목표인 것이다. 같은 회사와 사업을 40년 가까이 이끄시는 것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나의 안위를 걱정하는 전화를 하시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되는 거겠다. 모든 속박과 간섭을 부모의 사랑이라는 단 한 단어로 묶어 버릴 때 그 힘은 실로 어마 무시하다. 부모님의 기준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행동과 생각이 부모님의 사랑을 져버리는 불효자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주 여행을 혼자 가겠다고 했을 때 진심으로 엄마는 충격을 받았다.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엄마가 바쁜 것도 아니고 집에 뻔히 있는데 어떻게 두고 혼자 여행을 갈 수 있는지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엄마랑 싸우고 나서 열받아서 간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없으니, 시간을 가지며 조용하게 생각할 것도 있어 가는 거라고 둘러댔다. 그래도 말이 안 된다 하더라. 엄마는 그렇게 내가 출발하는 전날까지도 기차표 하나를 더 예매했을 거라 믿고 있었다.


결국은 나를 데리러 경주로 오는 것을 허락하고 나니 내 온몸 안에 가득 찼던 에너지와 설렘이 그대로 발바닥을 통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걱정부터 되었다. 그럼 옷은 3일 치 밖에 안 챙겨 왔는데, 엄마가 꼴 보기 싫어하는 스타일로 챙겨 와서 이거 다시 입어야 하는데 어떡하지. 속옷도 내내 숙소에서 빨아야겠네, 이틀 더 입을 거면? 경주 도착하면 독립서점 들려서 책도 여러 권 사려고 했는데 짐 늘리면 힘들 테니 그러면 안 되겠다. 신경주역으로 달리는 KTX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면서도 불쑥 이런 걱정이 떠올랐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걱정도 안 하려고 혼자 떠나온 건데 시작부터 글러먹은 것이다. 그리곤 결국 경주에 도착하고 나서 걸려온 엄마의 전화에 폭발하고 만다. "그럼 수요일에 엄마가 대구로 가는 기차표 좀 네가 알아보고 예약해줄래?" "그런 것까지 지금 여행을 온 내가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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