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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정 Apr 01. 2020

슬기로운 취미생활, 매일 필사 도전!

[N잡러의잡다이어리]노동의 감촉을 새기는 일상


"일본어랑 중국어 자격증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따셨어요?"


이런 질문들을 많이 듣는다. 물론 열심히 노력도 했지만, 일본어와 중국어, 그리고 한자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린 시절 '한문 서예'를 배웠던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자를 많이 알고 이따 보니 단어의 뜻을 유추하고, 암기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미술이나 음악에 재능이 없었던 엄마는 내가 어려서부터 예술을 가까이에 두고 향유하기를 바라셨다고 한다. 그 덕분에 다른 친구들이 수학이나 암기과목 학원을 부지런히 다닐 때, 나는 서예학원과 미술 학원을 더 열심히 다녔다. 어쩌면 문화예술계에서 일하게 된 것도 어린 시절의 영향이 크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서예학원은 워낙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라, 다닌 지 며칠 되지 않아 "도저히 못 다니겠다!"라고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엄마가 강압적으로 학원에 가라고 말씀하셨다면, 나는 더 가기 싫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먹을 다 쓸 때까지만 다녀봐!"라고 격려해 주셨다. 가방 안에 덩그러니 담겨 있는 붓과 먹물, 그리고 먹을 보고 있자니 설득이 됐다. 사물은 죄가 없고, 이것들의 사명이 다하는 날까지만 견디겠노라 선언했다. 그 다음날부터 학원에 가자마자 먹을 가는데 열중하곤 했는데 그 먹이 닳아 없어지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는 동안 서예의 재미에 눈을 떴다.           


돌아보면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지금은 짧은 시간에도 그만큼의 정성과 공을 들여 한 가지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큰 걱정이 없었고, 서예를 배워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원대한 꿈이나 목표도 없었다. 온 마음을 다해 글을 쓰던 시간이 좋았다. 좋아하는 것을 잘한다는 칭찬까지 들으면서 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었음에 틀림없다. 옛 성현의 말씀을 새기면서 올곧게 살고 싶다는 의지를 다지던 시절이었다.      

     

점차 학업에 집중하게 되면서 서예학원도 그만두게 되었지만, 대학교 재학 시절에 문득 그 마음이 그리워 종로에 위치한 서예학원을 다시 다녔다. 공강 시간이면, 서예를 쓰러 달려갔다. 당시에는 서예의 인기도 시들어져서 학원에서 내가 제일 어린 학생이었다. 100세가 다 되도록 그 서예학원의 높은 계단을 오르며 글을 쓰러 오시던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걸 느꼈다. 배움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는 것과 그 배움을 통해 여유시간을 의미 있게 쓸 수 있다면, 일상을 더욱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제21회 한국서화예술대전 한문 부분 특선 수상

        

학원을 다니던 시절, 엉겁결에 한국서화예술대전에 출품했는데 서예 부문 특선을 받아서 더욱 뿌듯했다. 이 글귀를 완성하기 위해서 얼마나 집중해서 쓰고 또 썼는지 모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쉬운 부분들이 눈에 더 들어오지만, 상이라는 결과물보다 최선을 다했던 과정이 더욱 소중한 잔상으로 남는다.      

대부분의 행사와 교육이 취소되거나 지연돼 갑자기 여유시간이 생겨버린 데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하는 시기인지라 지루함과 초조함을 견딜 수 없어 필사에 좋은 책을 구매했다. 지금을 슬기롭게 보낼 수 있는 취미로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타자 치는 삶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손으로 글을 직접 쓴다는 것이 무언가 어색하고, 또 쉽지 않다. 그렇지만 최첨단으로 가득 찬 시대에 살면서 '아날로그적 감성'에 곁을 내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느낀다. 빠른 속도만을 좇기보다는 내 본위로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여유가 중요하다 느끼기 때문이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는 노동의 감촉을 새기면서  시간을 소중히 흘려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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