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정 Jan 10. 2020

인터뷰는 '고된 노동'이지만 기꺼이 하게 되는 이유

[N잡러의 잡다이어리]인터뷰는 '고된 노동'이지만 기꺼이 하게 되는 이유

얼마 전 반가운 소식 한 통이 날아들었다. <김연정의 엣지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 김숙영 연출의 기사를 인상 깊게 본 한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촬영을 제안해 왔다는 것. 그 이야기를 듣고 내 일처럼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기자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작성한 기사가 어떤 방식으로든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할 때가 아닐까. 

그 순간들이 뭉쳐져 계속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꼼꼼한 예습을 통해 탄생하는 질문지 

기사 하나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의 범위를 때론 가늠하기 어렵다. 그것을 언제 누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파급력이 달라진다. 한 사람의 이미지 형성에도 결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만큼 인터뷰 기사를 쓸 때의 부담감은 엄청나다.

에디터로 일하다가 공연기획자로 직업을 바꾸면서 한동안 기사와 무관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불황의 공연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부업으로 다시 시작한 것이 글쓰기였다.운 좋게도 클래식 잡지와 각종 사보에 기사를 쓰게 되었는데 인터뷰 기사 요청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클래식 잡지에 글을 쓰는 부담감이 상당했다. 전공자도, 전문가도 아니었던 내게는 요원한 분야였던 까닭이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만나기 위해서는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었다.

운 좋게도 클래식 잡지와 각종 사보에 기사를 쓰게 되었는데 인터뷰 기사 요청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클래식 잡지에 글을 쓰는 부담감이 상당했다. 전공자도, 전문가도 아니었던 내게는 요원한 분야였던 까닭이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만나기 위해서는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었다.

우선 잡지의 색깔을 읽어야 했기에 과월호(過月號)를 가득 품에 안고 돌아와 반복해 읽었다. 자칫 우물안개구리가 되는 게 아닐까 싶어 타 출판사에서 발행되는 잡지를 두루 구해 읽었다. 그것으로는 부족해 부지런히 음반을 구입해 듣고, 공연장을 찾아다니며 클래식 음악을 생활의 영역으로 가져왔다.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인터뷰 기사를 쓸 때에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공부가 필요함을 인지하게 되었다. 인터뷰이 개인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은 물론이고, 업계의 경향에 대해서도 이해도를 높여야 했다. 한 사람이 왜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무엇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온전히 이해하고 글을 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겹겹이 쌓아 올리는 노력의 시간은 좋은 질문지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베테랑일수록 질문만 보고도 기자가 얼마나 충실히 자신에 대해 조사하고 왔는지 단번에 알아챈다. 질문의 깊이에 따라 답변의 충실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질문지를 만들 때는 먼저 지난 인터뷰 기사들을 정독한다. 그러면서 항상 등장하는 단골질문은 최대한 빼고, 색다른 면모를 부각시킬 수 있는 질문들을 더하려 노력한다. 다른 기사와는 차별화되는 지점을 가지면서 더욱 깊이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다. 또한 인터뷰이의 근황을 확인하면서 지난 기사에는 등장한 적이 없는 새로운 정보에 대해서도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

닐 하비슨의 기사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지난 기사와 강연 영상을 샅샅이 찾아보며 질문지를 만들었다. 답변서를 받은 뒤에는 사이보그재단에서 직접 보내준 에세이까지 모조리 번역해 읽고 기사에 반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 해야 할까. 때로 질문을 뛰어넘는 원숙한 답변을 내어놓는 인터뷰이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이 있다. 때문에 인터뷰를 할 때는 늘 인생의 스승을 만나서 무언가를 배워간다는 생각으로 임하게 된다.


고된 노동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

그 다음으로는 원활한 진행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질문지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현장에서 인터뷰를 잘 이끌어내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처음에는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해 시간이 흐를수록 핵심을 향해가는 것이 무난하다.

근황을 묻거나 공통의 관심사를 언급하며 인터뷰이와 친근감을 형성하면, 얼어붙은 긴장감도 서서히 해동된다. 만약 책을 쓴 저자라면 저서를 미리 읽고 간다거나, 직접 구매해 들고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면서 독자들과 업계의 반응에 대해서도 확인 후 언급하면, 기자에 대한 인터뷰이의 신뢰감도 덩달아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전 예습을 철저히 한데다, 현장에서 열성적이기까지 한 기자에게는 더욱 열정적인 답변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법. 알찬 서브에 제대로 된 리시브가 따르는 격이다. 또 질문지는 어디까지나 대본에 불과하고, 본방은 무궁무진한 변수로 이루어져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예습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질문의 순서와 강약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며, 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즉석에서 심층질문을 덧붙여야 할 때도 있다.

적당한 인터뷰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데, 사전에 시간 약속을 했더라도 인터뷰 시작 전 인터뷰이의 스케줄에 변동이 없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주어진 시간이 짧을 때는 평이한 질문은 건너뛰고, 기사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인터뷰 시간을 거의 확보할 수 없는 경우에는 서면으로 답변서를 받거나, 추가 인터뷰 약속을 잡아 부족한 내용을 보충하는 끈기가 있어야 한다.

인터뷰를 할 때는 인터뷰이의 동의를 구한 뒤, 녹음을 해두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특히 전문용어가 많이 등장하거나, 잘 알지 못하는 업계의 인터뷰이와 인터뷰할 때는 녹음이 필수다. 인터뷰할 때 놓쳤던 부분들에 대한 점검과 재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간혹 녹음이 되지 않거나, 파일이 날아가 큰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인터뷰 중간 중간 녹음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인상 깊은 이야기나 기사의 키워드가 될 단어들은 그때그때 빠르게 필기해둔다. 이 부분은 기사가 나중에 방향의 갈피를 잃을 때,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나는 녹음한 파일은 분량이 얼마가 되든 간에 모조리 타이핑하는 편이다. 그전에는 기사에 담을 내용만 짤막하게 정리했으나, 클래식 잡지에 글을 쓰면서부터 세세한 단어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기 위해 사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더 알기 위해서, 그리고 인터뷰의 맥락과 흐름을 보다 선명하게 보기 위한 내 나름의 노력이었다.

물론 인터뷰이가 오프더레코드라고 언급하며 기사에 쓰지 말아줄 것을 부탁한 부분은 녹음파일에도 기재하지 않는다. 총 19명을 인터뷰 하며 쓴 연재기사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의 경우, 녹음 파일을 타이핑한 분량을 확인해보니 A4용지로 총 15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녹음 내용을 받아 적으면서 인터뷰이의 언어와 생각을 곱씹고, 이후 최종 완성된 파일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기사의 틀을 짠다. 전체적인 윤곽이 뚜렷해질 때, 기사에 인용할 이야기들을 끌어와 기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좋은 인터뷰 기사를 쓰는데 왕도란 없는 것 같다. 꼼꼼한 예습과 현장에서의 원활한 진행, 완벽한 복습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을 뿐이다. 한 사람의 빛나는 삶 뒤에 수많은 시도와 실패가 있었듯이, 그 이야기를 다루는 기자도 수없이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원고를 완성해간다. 그런 인고의 과정 속에서 좋은 인터뷰 기사가 탄생하는 법이라 믿기에 오늘도 고된 노동의 순간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로 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