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 초기를 살다간 이종오(李宗吾)가 있다. 그는 후흑학(厚黑學)을 제창착한 인물로 얼굴(면후)와 어두운 마음(흑심)을 가진 자만이 영웅이 되고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논리를 발견했다. 후흑학의 요첨은 이렇다. ‘후흑의 겉에는 반드시 인의와 도덕의 탈을 뒤집어 써야 하고, 후흑을 속으로 하고 인의로 겉으로 한다’
사실 그의 이론은 맹자의 선성설로 걷어진 인성론에 반하기도 하고, 마키아벨리즘의 진의와 비교해 다분히 부정적으로 쓰이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아예 허무맹랑하지만은 않은 듯하다. 중국의 요순시대나 우, 탕, 문왕, 무왕, 주공 등 겉으로는 인위로 위장돼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뻔뻔하고 잔혹했던 사실을 스스로 추적해 밝힌 후 내건 이론이었다.
우리 정치인을 봐도 그렇다. 낯가죽을 두껍게 하고(선거철만 되면 기가 막히게 거리로 나와 명함 돌리고, 출근 시간대 버스정류장에서 손을 흔드는 일), 속마음에 음흉함을 감출 수 있는 자라야만(여야 모두 서로 정책에 반대하면서도, 자신들 연금 기습인상과 관련해서는 속전속결) 비로소 통치할 수 있다.
그가 주창하는 후흑학에 대해 개념 정도를 알게 되는 사실도 사실이지만, 이종오가 내세우는 또 다른 이론에 대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오히려 그의 이런 시각이 현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문명은 적자생존이 아니라 협력과 양보에 의해 진화하고 탄생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다윈의 학설을 요목조목 비판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익히 장정일 씨도 자신의 저서 <장정일의 공부>에서도 이 사실만은 지금 읽어도 신선하다고 밝힌 바 있다.
“다윈의 견해에 따르면 힘세고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고 하지만, 이종오의 관찰로는 힘이 강한 자가 먼저 소멸했다”
이종오는 “호랑이와 표범, 독일 황제, 원세개는 모두 힘이 셌기 때문에 그것을 타도하기 위한 힘이 한군데로 모였다. 생존은 협력에서 비롯된다”며 “협력의 이치를 끌어내는 것이 생존의 길이고, 협력을 위반하는 것이 곧 소멸을 앞당기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남에게 양보하는 것은 나 자신의 생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까지만 하고 남과의 경쟁은 내가 생존할 수 있는 선까지만 한다. 생물은 상호 경쟁을 통해 진화할 수도 있지만 상호 양보를 통화 진화할 수도 있다.”
현실적이다. 이종오는 또 다윈의 양육강식 옹호론에 대해서도 지적하며 “약소민족의 생존을 약탈해 무한한 욕망을 채우는 제국주의 이론으로 이용됐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이 말도 기억 남는다. 조금 추상적이긴 해도 돈 되는 것에만, 강자에게만 붙는 세상 논리를 잘 비유한 내용이 아닐까.
“처음 상인들이 아무리 진품을 팔더라도 갑자기 가짜를 파는 사람이 나타나 큰 돈을 번다. 모든 상인이 이를 다퉈 따라하면 온통 가짜로 가득할 것이다. 이때 홀로 진품을 파는 사람이 나타나면 이 사람이 오히려 큰 돈을 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