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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관식 Jun 16. 2016

어릴 적 겨울, 서울역, 우리 엄마, 그리고 나

엄마와의 소중한 어릴 적 기억

언제부턴가 어릴 적 기억이 하나씩 문뜩문뜩 떠올랐다.

출근 시간에도, 퇴근 시간에도, 일하다가도, 무엇을 먹다가도

그러다 생각했다. 왜 요즘들어 이런 기억이 퍼즐 맞춰지듯 떠오르는 걸까.

잊혀지지 않고 기억이 떠오른다면, 난 그 기억을 또렷히 떠올리고 싶다.

어쩌면 앞으로의 인생에 큰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하고.


아마 일곱 살 전후가 아닐까.

앞뒤 생각은 나지 않지만, 그 추운 겨울에 밤 늦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온통 잿빛의 어둠 뿐이었으니까.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고

동생은 엄마가 뒤 포대기를 칭칭 동여매고 업고 있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지하철도 곳곳에 뚫리지 않았고

더더군다나 당시 경기도 하남시에 살던 우리집 가는 교통편도 없었다.

버스 역시도 자주 있던 것이 아니라 난 추위에 벌벌 떨며 엄마 손만 꽉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때의 기억 하나.

엄마나 기다렸다는 듯이 택시를 잡았다.

난 좋아라 택시를 탔고, 엄마는 "괜찮니?"하며 내게 물어보셨다.

난 웃으며 창밖을 신기하듯 쳐다봤다.

"엄마, 개인택시가 뭐야?"

요런 질문도 했다.


그 기억이 생생해서

어제 저녁 동생과 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는 사이 슬쩍 얘기를 꺼냈다.

"엄마, 그 때 생각이 갑자기 난다. 서울역에서 엄마가 택시 잡아줬던 거..."


그랬더니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아이고, 말도 마라. 그때는 차도 많이 없고... 아마 외할아버지 칠순잔치였던 것 같다. 너는 그때도 그리 추워도 보채지도 않고. 거기서 택시타고 동대문까지 가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어. 그 때 얼마나 추웠는지 택시 타자마나 온 몸이 녹는 것 같았어. 외할아버지 댁에 결혼하고 십몇 년 만에 처음 갔어..."


그랬구나.

내가 궁금해했던 기억의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이다.

엄마는 결혼하고서도 제대로 친정에 한 번 가보지실 못 하셨다.

내 기억으로만 두 번이었나?

그사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한 번씩 외할머니를 뵈러 일년에 두어번 정도 내려가신다.

삼촌들과 이모들과 함께.


그 시절에는 뭐이리 바쁘고, 힘들고 그랬는지.

자식들 등에 업고, 손을 잡고, 당신 몸보다 자식들 미끄러지지 않을까, 추워하지 않을까 걱정하신 분.


지금도 엄마는 장가까지 가고 딸까지 있는 내 걱정이시다.

동생이 얘기하더라.

"요즘은 온통 형 얘기만 해"
"왜?"
"형이 공무원이었다면 안 그랬겠지. 세상이 하도 어려우니까."
"그럼 네가 나 없을 때 잘 좀 말씀드려라. 걱정 안 하시게. 내 나이가 몇 갠데..."


그렇게 엄마와 함께 밥 한술 뜨면서 난 연기아닌 연기를 했다. 뻔뻔한 표정으로.

"아이고, 너무 걱정마셔. 내가 자신감 없으면 그리 하겠나. 내가 요즘... @#$%&"
"그럼 걱정 안 한다"
"걱정 하셨다는 말이구만. 하하"


옛 기억 하나가 현재와 이어질 때 그것을 추억이라고 한다.

신기한 것이, 나쁜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또렷해진다.

좋은 기억만 갖고 살라는 얘기인 듯싶다.

내 어릴 적 기억 하나를 이렇게 가슴 속에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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