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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롬 May 23. 2020

불안과 고독에도 장점이 있나요

<툭하면 기분 나빠지는 나에게>

한국어 판 제목인 '툭하면 기분 나빠지는 나에게'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 제목이다.

한편 너무 직접적이고 정직하긴 하지만 원서의 제목인 'The Positive Power of Negative Emotions'는 이 책이 어떤 책인지 단번에 보여준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총 8가지로 슬픔, 불안, 분노, 죄책감, 질투, 지루함, 고독, 고통이고, 각각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들을 5~6개씩 제시한다.

이 책의 독창성은 그 긍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인데, 내게는 그 비유가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다소 방해가 되었다. 당황스럽게도;


개인적으로 '지루함'과 '고독'에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막상 책을 읽으면서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죄책감'이었다.


본격적인 소개에 앞서 첨언하자면 저자가 여러 번 강조하듯, 이 책은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이 아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으로서의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기준에 따라 정신 질환과 부정적인 감정을 나눴지만, 본인이 그 경계에서 선을 넘었는지 걱정이 된다면 우선 병원에 가서 적절한 도움을 받을 것을 권하고 있다.  




'슬픔'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부분은 슬픔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긍정성에 대한 것이 아닌, 오늘날 슬픔의 위상에 대한 내용이었다. 앤서니 호위츠Anthony Horwitz와 제롬 웨이크필드Jerome Wakefield가 그들의 저서 <슬픔의 상실The Loss of Sadness>에서 이야기하듯, 슬픔이 우울증이라는 의학적 개념에 포함되어 가면서 슬픔의 조용한 품위가 점차 무너지고 잊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슬픔이 우울증보다는 분명 덜 문제적이지만, 여전히 바람직하지 않고 잘못된 것으로 간주된다.

학생 때 들었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오글거린다'는 표현이 생긴 이후로 오글거리는 말을 못 하게 되었다고. 그러려고 만든 표현은 아닐 테지만 아쉽고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불안'의 긍정적인 측면 중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던 것은 저자가 '감시자'와 '개척자'라고 명명하던 점들이다.

'감시자'란 나의 안전을 염려하여 주변의 위험 요소를 살핌으로써 더 신중하고 지혜롭게 행동하도록 만들어주는 불안의 긍정적인 측면을 지칭한다. 저자는 불안의 감시자적인 특성이 흥이 깨질 정도로 온갖 즐거움을 억누르거나 진취적인 모험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크리스 해드필드라는 우주 비행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흔히 우주선에 타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주 비행사를 위험을 무릅쓰는 모험가(risk taker)로 생각하지만 해드필드는 스스로를 위험 회피적(risk-adverse)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즉, 해드필드는 우주 비행에 따르는 위험에서 불안을 느꼈기 때문에 그 위험 요소들을 면밀히 살피고 다양한 훈련에 정진하였다. 그 결과 우주여행을 즐 수 있는 단계에까지 오른 것이다.

한편 '개척자'란 우리가 한계를 넘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는 신호를 의미한다. 익숙한 영역을 벗어나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는 영역에 진입할 때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이다.


'죄책감'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인데 '슬픔'과 마찬가지로 죄책감에서 찾을 수 있는 긍정성의 내용 때문은 아니었다. 저자는 죄책감에는 여러 단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중 더 나은 죄책감과 그렇지 않은 죄책감이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고의 틀로 죄책감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 내게 이 장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요즘 같은 SNS의 홍수 속에서 더 빛을 발하고 있는 '질투'라는 감정의 긍정적인 측면 중 눈여겨본 것은 저자가 '스스로 노력하는 자'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는 질투가 강력한 동기가 되어 갈망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비유이다. 뿐만 아니라 질투는 우리가 인생에서 무엇을 부족하게 느끼고, 무엇을 소중하게 느끼는지를 명백히 보여주어 보다 풍부한 자기지식self-knowledge 및 자기인식self-awareness 가능하게 한다.


'지루함'의 긍정성 중 마음에 남은 것은 '다이아몬드 광산'과 '명확함의 거울'이다.

'다이아몬드 광산'은 지루한 현상에 주의를 집중하면 그 내면에 숨겨있는 다이아몬드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로 저자는 무언가를 '지루하다'라고 속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언제나 무언가가 지루하다고 속단했지만 내가 속단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내게 이 문장은 울림을 주었다.

한편 '명확함의 거울'이란 지루함을 느낄 때 우리 자신과 대면하여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루할 때 자기표출self-revelation의 여정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저자는 지루함을 느낄 때 곧바로 스마트폰을 찾기보다 잠시 그냥 존재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고독'에서 나는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중심 내용보다 오히려 서론 격인 '깨진 꽃병'의 비유에 매료되었다. 심리학자 스티븐 조지프Stephen Joseph는 깨진 꽃병이라는 참신한 비유로 트라우마나 불운한 사건 후에 경험하는 긍정적인 변화, 즉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면 마치 꽃병이 깨지듯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부서지기 마련이다. 이 꽃병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란 매우 어려운 작업이며 혹여 복구에 간신히 성공하였더라도 여전히 깨지기 쉬운 상태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깨진 꽃병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려 애쓰기보다 기발한 조각품이나 의미 있는 모자이크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만든 예술품에는 여전히 과거의 상처가 남아있지만 새롭고 튼튼한 의미와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이러한 발상은 실로 경이롭고 희망적이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바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너는 왜 깨진 꽃병으로 예술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냐'라고 은근히 압박하거나 '너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며 부담스럽게 기대하는 것이다. 깨진 꽃병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온전히 꽃병의 주인이 결정할 문제이다.




이 책으로 얻게 된 것은 어떤 것에서도 밝은 면이 있다는 믿음이다. 슬픔에도 죄책감에도 고통에도 장점이 있는데 그 무엇에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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