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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부 Aug 26. 2020

배신해도 될 사람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1-9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 오성부

언젠가 TV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어느 배우에 대한 이야기가 조명된 적이 있다. 서울 생활을 한 지 20여 년. 무명배우 생활만 15년을 한 이 배우는 최근에 한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진짜 빛을 드러내게 되었고 연말 시상식에서 신인배우 상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이 배우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간 자신의 무명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언뜻언뜻 비추었는데, 서울 생활 20년 만에 처음 홀로 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마련했다고 했다. 그간에는 늘 돈이 없어 조그마한 단칸방에 여럿이서 우글우글 살았고, 막내였던 그는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늘 담당했는데 돈이 없어 밥과 김치로 배를 채웠다고 했다. 


반찬이 오로지 김치여서 김치로 할 수 있는 음식은 다 해 먹었다고 한다. 김치찌개부터 김치볶음밥, 김치볶음, 김치전 등. 그런데 그렇게 배는 불렸으나 늘 얼굴에는 허옇게 버짐이 피었다는 것이다. 영양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자신의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배우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한다. “네게는 다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면서 말이다. 이 배우의 일대기를 찬찬히 보고 있던 나는 문득 나의 서울 생활들이 마치 필름처럼 머릿속을 헤집으며 지나기 시작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버티고 견뎌온 나의 그날들. 특히 나의 ‘치임’에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물론 어떤 사람이건 관계에서 오는 치임이 보통일 테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동적으로 사람 거르는 훈련이 되었다.


1. 이거밥은 네가 사야겠는데?     

한 번은 사업 파트너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오 대표, 여기 진짜 오 대표가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는데 어디야? 바쁘지 않으면 이리로 와.”     

파트너가 오라는 곳에 도착을 해보니 비싼 소고기 집이었다. 그들이 앉은 테이블에 가자 벌써 2~3인분의 밥을 다 먹고 식사가 끝난 상태였다. 


내가 자리에 앉자 파트너가 식사를 했느냐, 여부를 물은 뒤 내가 안 했다고 하니 추가로 식사 주문을 했다. 그 자리에서 밥을 먹으며 몇몇 대화를 주고받고 나니 슬슬 파트너가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날 소개받은 사람에게 나에 대한 덕담 아닌 덕담을 시작하는 것이다. 


오 대표가 정말 대표로 잘 성장하고 있다, 젊은 친구가 열정이 대단하다, 앞으로 성장이 기대가 된다. 이쯤 되면 내 입가에 피식, 하고 씁쓸하고 비릿한 조소가 흐른다. 이 뒤에 나올 말이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나의 예상은 적중하고야 만다.


한참을 꺼먼 속이 훤히 보이는 덕담들을 내놓던 그는 이만하면 됐다, 싶었는지 슬쩍 내 눈치를 한번 보더니 사람 좋은 척 호탕한 웃음을 내며 말한다.

 

“오 대표! 오늘 이거 오 대표가 밥값 한 번 내야겠는데?”


덕담 실컷 들었으니 그 밥값 정도는 내라는 말이다. 듣고 싶다고 자처한 것도 아닌데. 본인 홀로 실컷 떠들더니 밥값을 내놓으란다. 참 이럴 땐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따금씩 실소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차마 상대가 거절할 수 없는 상태에서 어퍼컷 펀치를 날려 오는 건 막을 도리가 없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더니. 딱 그 짝인 셈이다.


앞에 서되 분위기를 선동하는 사람은 속에 다른 뜻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겉으로는 상대를 위하는 척하면서 결국 실속은 제 뱃속으로 채울 꿍꿍이를 숨기고 있다.

      

2. 진짜 친한 거 맞아?     

“아 그 친구 말이야, 내가 잘 아는데~”

“00이? 이번 드라마 잘 끝냈다고 연락 왔기에 어제 술 한 잔 했지.”

“김 대표 그 친구 이번에도 사업이 대박 났더라고. 이번에 나랑 같이 뭣 좀 하자던가.”


나 누구 아는데, 그 사람과 친분이 좀 있다, 등등 이름만 대면 어떤 인맥이건 안다고 말을 하는 한 대표가 있었다. 무슨 이야기만 하면 꼭 그 끝에 나오는 말은 “아~ 그 친구는 말이야.” 하면서 온갖 아는 척, 친한 척을 다 해댄다. 


그 대단한 인맥들을 아는 게 훈장이라도 꼭 되는 것처럼.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면 그 상대는 이 대표에 대해 ‘그저 몇 번 인사만 한 사이’라고 말을 한다. 일면식 정도가 있는 거지 대단한 친분이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이런 사람일 경우, 십중팔구는 내가 조금만 잘 나가면 여기저기에 나도 팔고 다닐 수 있는 인물이다. 나랑 어떤 깊은 친분이 없어도 그저 입 나팔을 불어대면서.. 


유언비어 제조는 바로 이런 입 나팔들을 통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3. 주둥이 파이터     

입만 열면 “그거 내가 할게.”, “이 일은 오늘 안에 꼭 할게!” 하며 굳은 약속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치고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을 지고 약속을 지키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대부분 자신이 한 약속 시간이 다 되면 이런 말을 내놓기 때문이다.

   

“아...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 말이야.”


“아 맞다! 그거 깜빡했네! 미안하게 됐어. 내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그거 내가 이번 주 안으로 꼭 해결할게!!”     

그러나 이렇게 한 번 약속을 미룬 인물들은 그다음도,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 


약속한 시간이 되면 어쩌면 이 시간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그에 맞춘 ‘갑자기 일’이 떡하니 생기는 것인지. 

이것은 결국 습관의 문제이다. 약속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음에도 차일피일 미루는 버릇. (물론 일을 하다 보면 정말 피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평소에 약속을 잘 지킨다. 그렇기에 이런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정말 ‘어쩌다 한 번’ 생기는 일이다).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니 반대로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기본이 안 된 사람이다. 


결국 자신의 시간은 소중하지만 남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을뿐더러 그 인생에는 핑계만이 가득한 것이다.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이 대성하는 일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4.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남을 이용하는 사람 

나는 일을 하다가 정말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어떤 파트너가 갑자기 전화가 와서는 “너 내가 우습게 보여? 어린놈이 그러면 안 되지!”라는 거의 쌍욕에 가까운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도대체 어떤 놈이 길래 전화를 받자마자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생각했다. 뜬금없이 전화를 받고 난 다음에는 나의 마음은 너무 요동치기 시작하며, 억울함과 화가 올라왔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분에게 잘못한 적도 없고, 무언가 실수를 한 적도 없는데, 왜 그럴까 싶었다. 


처음에는 너무 화를 내니깐 나는 잘못한 적도 없는데 죄송하다고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하루가 지나면서 너무 황당해서 밤을 꼴딱 새우고 있어서, 안 되겠다 싶어 다음날에 정중하게 전화를 드리고 찾아뵙기로 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들었는데 정말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나의 일 때문에 그분을 뒤에서 욕을 하고 다니고 돈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사람들에게 거짓말과 사기를 치고 다닌다는 말이었다. 나는 평소에도 돈이 없어도 내가 먼저 밥을 사는 사람인데 내가 돈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거짓말쟁이와 사기를 치고 다닌다고 하니 너무 황당했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나는 적극적으로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고, 도대체 이런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다른 회사 파트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내가 여기서 정말 황당했던 건, 그 사람은 나랑 평소에도 친하게 지내고 같이 일도 하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왜 아무런 죄도 없는 나를 들먹인 걸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올라왔지만 꾸욱 참으며 그분에게 전화를 드렸다. 역시나 나에게 너무 친절하게 통화를 하셨는데 지금 상황을 이야기드렸더니 자기는 그런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 이런 이야기가 왜 도는 것일까? 


이제는 전세가 역전된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처음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화를 내신 분에게 오히려 내가 따지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분도 황당해서 다시 전화를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완전 스무고개가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결국 범인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셨던 분이 자기의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나를 계속 들먹였던 것이었다. 


너무 황당했다. 일이란 건 같이 힘을 합쳐도 성공하기 어려운 것인데 혼자 살려고 무슨 일만 생기면 나를 계속 들먹인 것이었다. 어떻게 풀기는 했지만 처음의 관계성을 다시 회복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함께 진행했던 일은 끝나게 되었고, 모두에게 상처만 남은 시간이 되었다. 


사실 일적인 부분이 아니고라도 이런 일은 우리에게 비일비재 나타난다. 자기의 마음을 이야기하면 되는데 꼭 누구를 데리고 들어와서 자기의 말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다툼이 일어난 상황에서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들어주기만 하지 조언을 해주지 않는다. 


분명 다시 다툼이 시작되면 나를 끌어들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많이 느끼게 된다.         

 

5. 입은 무겁지만 행동이 가벼운 사람     

사람들이 첫 만남을 가질 때 대부분 입이 무겁고 점잖은 사람을 겸손하다거나 매너 있다고 평가할 때가 많다. 아무래도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할 때 끝까지 자기 이야기를 경청해주거나 잘 들어주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조심하게 된다. 


앞에서는 끝까지 들어주지만 뒤에 가서는 다른 일을 하는 경우를 자주 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같이 일을 하게 되면 의견을 나누게 된다. 열심히 설명하고 일을 진행하다 보면 꼭 마무리를 할 때쯤에 다른 일이 불쑥 튀어나온다. 


의견이 다르면 처음부터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이야기해주면 되는데, 듣기만 하고 꼭 뒤에 가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일을 하게 한다. 


나는 그래서 새로운 사람과 일을 하기 시작할 때는 대답을 듣고 일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열심히 하다가 마지막에 꼭 이상한 사건이 터지기 때문이다. 


물론 겸손함이 묻어나고 진지하게 일에 임하는 분도 있다. 이런 상황을 분별하려면 그 주의의 환경을 보라. 힘 있고 겸손하신 분들은 같이 숨 쉬는 클래스가 틀린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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