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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부 Sep 09. 2020

할 수 있어!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4-4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 오성부

서울에 올라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호프집, 가라오케, 주점 등 주로 밤에 일하는 직업들뿐이었다.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스펙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 기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러나 먹고는 살아야 하는 현실 앞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은 상대적으로 단기 아르바이트나 서빙이었는데 낮에 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밤에 하는 일들이 돈이 셌기 때문에 그랬다. 


그때 나는 강남에서 아주 유명한 가라오케에서 매니저 일을 했다. 매니저 일을 하며 하루에 수입이 좋으면 손님들이 주는 팁으로 20~30만 원을 벌기도 했다. (한 달 월급으로 계산하면 몇 백만 원씩 번 셈이다). 바람대로 돈이 아쉬운 시절은 떠나가고, 그야말로 돈의 맛도 제대로 좀 봐 가며. 벌이도 웬만해졌고 도심에서의 생활도 그럭저럭 적응했지만 그 무렵의 나는 어쩐지 이런 생활에 점점 지치고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남들은 일어나서 움직이는 해가 훤히 뜬 그 시각에 나는 좀비처럼 집으로 걸어 들어 가 온갖 술 냄새, 담배 냄새, 화장품과 향수 냄새 등 찌든 그 밤들과 같이 뒹굴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안락한 평온을 취하는 시간, 나는 어기적어기적 나와 또 밤의 그 거리를 헤매는 생활을 했다. 


밤낮이 바뀐 생활에 생체 리듬도 깨져갔고 얼굴은 점점 거무죽죽해져 갔으며 어깨 위에는 바위덩이가 짓누르는 것 같은 무거움에 축축 쳐져 갔다. 그리고 그날도 퇴근 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날이 훤히 밝아 빛이 쪼아 대는 빌딩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그날따라 그 햇살이 왜 그리도 유난스레 따갑고 밝던지. 눈이 부셔 잠깐 걸음을 멈추고 하늘로 얼굴을 쳐들었는데 순간 뭔지 모를 서러움에 눈물이 핑, 하고 돌았다. 그러더니 이런 생각이 한 줄 뇌리를 스쳐가는 게 아닌가.     

‘아, 따뜻하다... 이런 햇살 아래 일하고 싶다...’     


그리고 얼마 후. 내 바람대로 터닝포인트의 기회가 찾아왔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 알게 된 출판사 대표님이 있었는데 우연히 이 대표님을 만나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정말 나의 가치를 찾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대표님은 내게 제안을 했다. 자신의 출판사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나의 학력이나 조건, 환경 등 그 어느 것도 따지거나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만 월급이 70만 원이었다. 


이제 막 창업했던 출판사라 경제적인 조건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괜찮다면 함께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런 이유들이 아무래도 좋았다. 낮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기뻤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이곳에서 2년 간 열심히 대표님을 쫓아다니며 공부하고 또 사회란 테두리도 익히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회사 일에 매진하며 틈틈이 영어공부와 리더십에 대한 공부를 했고 일과 시간에는 대표님과 함께 여러 업체를 돌며 유통 일을 꼼꼼하게 배웠다. 


비록 월급은 70만 원으로 밤 문화 일에 젖어서 벌던 돈에 비하면 턱 없이 적었지만 적게 벌어도 좋았다. 사고 싶은 걸 못 사고 먹고 싶은 걸 제대로 못 먹어도 마냥 좋았다. 정말 사람답게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이 모든 여정이 돈 주고도 못 살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간을 겪으면서, 내 안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과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었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는, 삶에 대한 열정만이 가득했던 철부지였고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세상을 따라가고 살아내기 위해 잔뜩 힘을 주고 홀로 싸우는 처지였지만 더 이상 두렵거나 무섭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 시간들을 돌아보면 스물일곱의 열혈 청년이 땀 흘리며 뛰어다니는 아름다운 모습이 마음 한쪽에 진하게 새겨져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때의 내가, 조금은 지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올 때마다 말을 걸어온다.      


아직 더 뛸 수 있다고. 스스로를 놓지 말라고. 할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뛴다. 더 높게, 더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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