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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부 Aug 22. 2020

그때, 그 시절, 그 사람 그리고 이별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1-2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  오성부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이런 노랫말로 시작하는 가요가 있다. 비가 올 때만 생각나는 ‘님’ 일수도 있고 또 어떤 말 못 할 상대일 수도 있고 비가 오는 날이면 기억에 남아있는 그 짙은 상흔 때문에 꼭 떠오르는 그 사람처럼. 


서울에서의 생활 16년. 내게도 어느 시점이 되면 꼭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기억에서 잊히지 않고 잊을 수 없는, 그립고 애틋한 사람. 


바쁜 일상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잠시 지나간 인연도 잊고 추억도 묻고 그런 채로 떠밀리듯이 숨 막히는 삶의 연결고리를 돌고 돌며 지속하던 어느 때쯤. 기억의 저편에서 어렴풋이 어떤 얼굴들이 동동 떠오른다.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기억. 


스물여섯. 그때의 나는 이리저리 참 방황을 많이도 하던 시절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죽도록 해도 생각했던 것처럼 돈이 많이 벌리지도 않았고, 그렇게 번 돈은 통장에 스치고 지나가듯 통장에 월급이 찍히기 무섭게 쭉쭉쭉쭉 빠져나가며 “스치듯 안녕”을 고했다. 


일은 왜 하는 건지, 돈은 왜 벌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분노일지도, 회의일지도, 자괴감이나 박탈감일지도 모를 온갖 뒤섞인 감정들에 휘감겨 있었다. 


그 무렵 내가 알게 된 한 사람. 나보다는 3살이 많고 천안에서 올라왔으며 같은 반 지하 처지의 남자. 우리는 함께 ‘잠시 스쳐가는’ 아르바이트 속에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매일 같이 일하고 같이 퇴근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며. 어떤 날은 지갑에서 없는 동전까지 탈탈 털어 500cc 맥주 두 잔을 시켜놓고 밤을 새우고 동이 터올 때까지 끝 모를 이야기들을 이어가기도 했다.


한 번은 고향집에 내려갈 일이 생겨서 간다고 하니 형이 봉투를 하나 주었는데 봉투를 열어보니 꼬깃꼬깃한 지폐 세 장이 들어있었다. 형도 나와 똑같은 반 지하 셋방살이에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먹고사는 처지인데. 나는 그 돈을 차마 받을 수 없어 다시 형에게 돌려주니 “인마, 고향집 가는데 차비는 있어야지. 내가 너보다는 돈이 많다.”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살얼음판 같은 도심생활에서의 긴장된 가슴에 뜨끈한 것이 훅 올라와 덥혀주는 느낌이었다. 우린 그 후로 4개월 동안 매일 만나고 떠들고 웃으며 어느새 동고동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먹먹한 서울살이가 조금은 살만해지고 환해지는 시간들. 사는 게 힘들고 지치고 어려울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며 이겨내던 나날들. 


그러던 어느 날. 어제까지만 해도 내 옆에서 같이 웃고 했던 형이 연락이 되질 않았다. 아르바이트하는 곳의 사장님한테 물어도 이틀 전부터 아무 연락 없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럴 형이 아닌데.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혹시 형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 마음에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보려고 했으나 이 서울에서 형의 안부를 물을 곳은 없었다. 형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곤 핸드폰 번호가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형의 집도, 형의 친구도, 형의 고향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시간이 흘러 몇 달 뒤. 그날도 우두커니 pc방에 앉아 게임에 접속된 채로 있는데 형이 접속돼 있는 걸 발견했다. 정말 형이 맞는 건지 꿈인 건지 헷갈리기도 하고 너무 반갑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또 그간의 사연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나는 반갑게 형에게 채팅 상으로 말을 걸었다. 진짜 형이 맞느냐고 도대체 어떻게 지냈던 거냐고. 그런데 형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그저 [잘 지내고 있다. 너도 잘 지내고 있지?]가 전부였다. 


그 후로 나는 형을 만날 수도 연락이 오가지도 않은 채 우리의 짧은 인연은 그렇게 인연이 끝났다. 


그러고 나니 인연이라는 게 참 얄궂다는 생각이 들기도, 관계라는 게 참 부질없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그래서 친구는 역시나 고향 친구가 제일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밀려오는 허탈감. 누구를 만나도 다 그저 그런 관계로 남게 될 거란 생각이 들고 저 사람은 지금 저 모습이 진짜일까 아닐까를 두고 생각도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저마다 한 가지씩은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각자의 사연과 비밀이 있다고.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어느 곳에서든 서로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사이로 남아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그간의 시간 동안 형이 옆에 있어서 참 따뜻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서울에 살면서 참 많은 이별을 했다. 그리고 그 이별만큼 또 많은 만남도 있었다. 여기에서 내가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결국 만남도 이별도 모두가 내가 계획한 대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언가 큰 이익을 위한 만남이 아니라 소소하게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관계, 나의 즐거움보다 상대의 아픔에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관계, 어찌 되었건 헤어짐은 아쉽고 아프지만 예고 없이 다시 만날 때에도 서로의 눈을 보며 웃을 수 있는 관계. 그거면 족하다. 사람의 인연이란 돌고 돌아 또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마주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이별은 누구에게 상황과 환경에 따라 원수가 될 수도 적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반대로 이별은 사랑이 될 수도, 삶의 어떤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이별은 어렵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서울에서 ‘잘’ 살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정성을 다한다.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인연일지라도 다음번에는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도록. 또 이별 후에도 서로를 좋은 기억으로 남길 수 있도록. 

그래서 오늘 주어진 하루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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