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성부 Aug 22. 2020

입성, 이상한 나라 서울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1-1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 오성부

서울깍쟁이라는 말이 있다.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시골 사람이 서울 사람의 까다롭고 인색함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지만 내게 서울깍쟁이의 이미지는 뭔가 세련되고 도도한 인상이 든다. 서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미소가 보이기 때문이다. 산뜻하게 웃고 있는 입매 뒤에 어딘지 모르게 힘주고 있는 눈. 


지금이야 눈이나 얼굴은 전혀 웃지 않고 입만 방끗 웃고 있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표리부동 하는 것만 같은 모습이 보여 씁쓸함이 스치기도 하지만, 처음 서울에 상경했을 때 본 ‘서울 사람’들의 미소는 내게 어떤 묘한 신비감을 형성해주는 그것처럼 선명했던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어느 날 꿈에서나 봤을 법한 어떤 기시감이 생기기도 했고 또 처음 내게 다가온 도심은 어떤 이질감을 느끼게 하기도 하면서. 


시골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낯선 세계가 가득하고 낯선 사람이 바글대고 강원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나와는 세련미 넘치는 “~~ 요?”, “~~ 했니?”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곳. 


생전 처음 들어보는 상냥한 목소리에 마음까지 말랑말랑 해지는 곳. 이곳에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꿈을 꾸게 하는 곳. 그리고 친구라고 말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등 돌려 비수를 꽂기도 하는 곳. 내게 서울은, 정말 이상한 곳이었다. 그리고 이상함으로 꽉 찬 서울에서의 생활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이 이상한 나라에 입성하고 처음 사귄 ‘친구’라는 이름의 사람들은 호프집 아르바이트생들이었다. 비슷한 또래, 20대 초중반의 대학생들이었는데 그들과 ‘친해’ 지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나의 사투리 때문이었다.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내게 그들은 무언가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던 것이다. 


자신들의 말씨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언어를 쓰는 나를 마치 지구가 아닌 어디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을 보는 듯하기도 했고 때때로 사투리를 무슨 제2외국어처럼 여기며 가르쳐달라 떼를 쓰기도 했다. 


자신들과 다른 생활권에서 살아온 내게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고 내가 살아온 환경에 대해 물으며 궁금해하기도 했다. 같은 나라, 같은 말,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어도 나는 그들 사이에 있으면 어딘가 다른 세상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나를 다르게 보는 그들의 시선을 견뎌야 했고 참아야 했고 또 인내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이렇듯. 서울이란 도심은 다 이상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언젠가 TV 매체로부터 보았던 도심의 사람들의 모습은 늘 생기가 흘러넘치고 활달했으며 웃음이 넘쳐나는 곳이었는데. 


그러나 막상 이 속에 있다 보니 도심 사람들의 고달픈 애환들이 보였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했고 먹고살기 위해 하릴없는 경쟁을 해야만 하고 또 어떤 때는 어제의 친구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어 서로 짓밟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마치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만이 존재하는 것 같만 같았다. 마음을 잃어버린 도시.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곳은 정말 생존의 전쟁터, 그 자체였다. 나의 방심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로 돌아갔다. 내가 잠시 한눈을 파는 그 찰나의 시간은 다른 이들에게 양질의 먹잇감이 되었다. 그래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고 긴장을 내려놓을 수가 없게 만드는 어떤 거대 힘에 의해 굴러가는 행성 같았다. 

       

서울은 확실히 이상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건 ‘정말’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우울증에 시달려 신경정신과를 주기적으로 찾았고 또 어떤 사람은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고 불면증에 시달린다며 괴로움을 호소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주변에 다가오는 모든 사람과 소통을 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결단코 이 세계를 떠날 결심을 하거나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럴수록 이곳에 더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싶어 했다. 정말 이상했다. 척박한 땅에서 더 깊숙하게 뿌리내리고 싶은 마음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이 도심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만 돌아가고, 모든 것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진행되고, 모든 것이 너무나 혼란스럽고 정신없는 혼돈의 카오스 같은 이곳을 왜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스물넷, 그 서울을 마주한 내 머릿속에는 하루 종일 이런 잡다하고 복작복작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16년 후. 그때의 그들처럼 나 역시 여전히 이 도심에 남아 있다. 16년  전이나 16년 후나 변함없이, 어쩌면 더 팍팍해지고 괴팍해지고 온갖 곳에서 옥좨 오는 이곳에서 말이다. 


나는 그간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그 안에서 다양한 인맥들을 형성하고 또 작지만 내 사무실 한 칸도 마련했다. 정말 이상하리만치 치열한 경쟁 양상 속에서 매번 살아남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은 확실히 이상한 곳이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그 이상한 세계, 서울에서 삶을 살아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서울 사람? 시골사람? 그냥 이방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