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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부 Aug 22. 2020

서울의 달은 차갑다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1-3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 오성부


연고지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머리털이 나고 생전 처음 밟아본 땅에서 살아가는 일이란 힘들고 어렵고 고난의 연속이었다. 


숨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일과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팽팽한 긴장감을 견디는 일상의 연속. 어찌 되었든 이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나는 한시도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채 ‘살아내’고 있었다. 

서울은 외로웠다. 적막하고 삭막했다. 고요하고 차가웠다.      


낯선 땅에서의 외로운 고군분투. 나는 가난하고 어려운 삶에서 벗어나 도심에서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은 유통 사업이었다. 지인 중에 화장품 회사의 대표가 있었는데 그쪽에서 화장품 두 박스를 받아 방문판매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유통은 돈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상대를 믿고 그 상품을 구매하기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사람과의 우호적인 관계가 절대적이다. 


뜨거운 여름.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그 삼복더위에 나는 정장을 차려 입고 화장품을 팔기 위해 이리저리 참 분주히 뛰어다녔다. 그러다 아는 지인에게 대전에서 사업을 하는 한 회사의 대표를 소개받았다. 


나는 곧바로 샘플을 가방에 가득 실고 대전행 버스에 올랐다. 대전까지 가는 2시간 내내 나는 무언가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은 예감에 설레었고 어쩐지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콧노래까지 절로 흘러나왔다. 


그렇게 대전에 도착 후. 터미널에 내려 소개받은 대전 회사의 대표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신의 회사까지 택시를 타고 오라고 했다. 택시. 나는 택시라는 듣자 마음이 바짝 움츠러들었다. 지금 내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이라고는 1만 9천 원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갔다 오면 오늘 저녁을 굶어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그런 고민도 잠시. 나는 곧 택시를 타고 그 대표의 회사로 찾아갔다. 여기까지 왔으니 무슨 일이 어찌 되든 하나는 되겠지, 같은 기대와 희망을 한 아름 안고. 

그러나 결과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그곳에서 나는 입에 침이 마를 새라 연신 제품에 대한 설명을 했지만 대전의 대표는 그저 두어 번 고개만 끄덕일 뿐, 내 제품에 대해서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40여 분쯤이 지났을 때. 나는 알게 됐다. 상대가 어떤 제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지인의 부탁 때문에 차마 거절을 못해 마지못해 나를 만났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인사를 한 후 돌아서 나왔다.


사업이라는 게 언제나 100% 성공적인 결과를 낳지는 못하지만 무언가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가 그 기대가 물거품처럼 꺼져버렸을 때의 그 허탈함과 상실감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데다가 설상가상 돌아가는 길은 더없이 험난해졌다. 


전 재산 중에 이곳에 올 때 탔던 택시비를 빼고 나니 터미널까지 다시 택시를 타기에는 돈이 부족했다. 나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뜨거운 아스팔트 길을 걷고 또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30여분쯤 지나자 온 몸에 땀범벅이 되고 스프레이로 올린 머리는 땀이 떨어지면 얼굴에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대전까지 헛걸음한 것에 이어 날씨는 덥고 돈도 없었다. 내 현실이 참 기가 막히고 처량해서 실소가 터지고 입 밖으로는 욕지거리 비슷한 것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터벅터벅 터미널을 향해 걷는데 너무나도 서러운 마음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지. 나는 세상에 필요한 존재인 건지. 어디 한 군데 내 이 처량한 신세를 하소연할 데도 없고. 머릿속에서는 이런저런 별별 생각들이 다 들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고 살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참으로 외롭고 차가웠던 시절. 그러나 이 시간들이 내게는 성장을 할 수 있는 성장통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통해 우리는 성장통을 겪고, 그 시간을 잘 버티고 견디고 이겨내는 사람들이 삶을 진짜 ‘잘 살아낼’ 수 있는 단단한 사람으로 되어간다.


세상은 우리에게 최고의 것만을 부추기고 정작 내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장점은 보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차갑다고 해서 나 자신까지 차디찬 얼음처럼 굳어져 갈 필요는 없다. 절망할 필요도 없다. 


낙심하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돌덩이가 되어야 할 순간은, 얼음처럼 냉정해져야 하는 순간은, 언제고 시련이 닥쳐오면 그 모든 날들을 이겨내고 버텨야 할 때라는 것. 


불안한 미래가 엄습해 나를 괴롭힐지라도 꿋꿋하게 고개를 들고 살아내야 하는 순간이라는 것. 

마음 한쪽에 잘 장착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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