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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부 Aug 22. 2020

서울 토박이 명철이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1-4

이상한 서울나라의 이방인 - 오성부

서울에서 생활이 어느새 몇 년이 지나고 있었지만 내 환경은 단 일 원어치의 반전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내 몸 하나 뉘일 방 한 칸 없이 친구 집에 얹혀사는 처지였고 그 단칸방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는 내 머리 위를 늘 뒤덮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생의 어떤 뚜렷한 목적보다는 서울에서 돈 많이 벌어 금의환향하는 것만이 전부일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번은 별 것도 아닌 일로 친구와 대판 싸우게 됐다. 친구는 당장에 제 눈앞에서 없어지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고 나는 그 말 앞에 일순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돼 버리고 말았다.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 나오고 보니 밖은 이미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짐이라고는 쇼핑가방 하나만이 손에 덜렁 들려 있었다. 


정말 처량했다. 이 서울 하늘 아래, 아는 이도 하나 없고 나를 도와줄 만한 어떤 사람도, 갈 곳도 없었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고 다니다 보니 더 서러웠다. 집에 있는 부모님도 보고 싶고 고향집도 생각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엄마의 따뜻한 밥상이 몹시 그리웠다. 서울에서는 밥을 먹어도 배가 고프다는 그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났다. 


그런 채로 비를 쫄딱 맞고 돌아다닌 지도 시간이 꽤 흘렀는지 하늘이 새카매지고 당장 오늘 밤을 보낼 곳이 필요했다. 노숙이라도 해야 할까, 생각하다 이런 날 밖에서 자칫하면 객사라도 하지, 싶어 급하게 머릿속을 굴려가며 서울에서 사귄 몇 안 되는 인물들을 찬찬히 나열해봤다. 그리고 지금 내 이 서러운 처지를 받아줄 만한 인물이 딱 한 명 떠올랐다. 명철이었다.   

   

명철이는 서울에서 만난 동생이었는데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다. 언제나 유쾌하고 밝은 명철이는 딱히 잘해주는 것도 없이 늘 힘든 일이 있을 때 찾기만 하는 나를 정말 형처럼 대우하며 잘 따라주었고 이따금씩 도심 생활의 염증으로부터 휴식이 되어주는, 내게는 쉼터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도 전화 한 통이면 명철이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를 도와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쉽사리 전화번호가 눌러지지 않았던 것은, 언제나 도움을 받기만 하는 내 처지가 한없이 염치없는 인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지금은 그런저런 처지와 형편을 따질 정도의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 오늘을 살지 못하면 내게 내일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망설임 끝에 명철이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한 번씩 울릴 때마다 마른침이 꼴깍꼴깍 넘어가고, ‘차라리 받지 말아라...’ 같은 이상한 주문도 외웠다. 두서없는 내 마음을 안간힘을 쓰며 부여잡고 있는 그때, 명철이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명철아. 혹시 나 며칠만 재워줄 수 있냐...?”


명철이는 무슨 일이냐, 큰일이 있는 거냐, 이런 시시콜콜한 걸 묻지도 않고 단숨에 말했다.     

“당연하죠! 형. 제 방에서 같이 자요!”

     

그로부터 30분 후. 명철이는 저희 엄마 차를 타고 내가 있는 곳까지 데리러 왔다. 그러고는 두 말도 없이 제 방을 턱 하고 내주는 것이었다. 그런 명철에게 또 너무나 염치가 없고 미안하고 고마웠다.

     

“명철아, 고맙다. 염치없지만 딱 일주일만 신세 질게.”

“그런 걱정 마시고 형 있고 싶은 만큼 있어도 돼요.”     


명철이의 따뜻한 마음에 그날 나는 홀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간의 서러움이 폭발한 듯 끅끅 울음을 삼키다 잠이 들었던 듯하다. 


명철이는 그 시절 어려운 내 상황을 다 알면서도 무시하거나 나를 낮게 깔아보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더 존중해주고 넉넉한 마음으로 나를 대해주었는데 친구가 없는 내게 든든한 편이 돼 주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타지 생활을 하는 나를 이끌며 쉬어가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나는 그날 이후 명철이에게 정말 좋은 형이 돼 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우정을 잘 다지고 있는 형과 동생으로 지내고 있다).


누구에게나 만남의 축복이 있다. 나의 환경이나 배경, 또 내가 가진 조건이 아니라 내 속에 감추어진 보석 같은 가치를 알아봐 주는 인물들이 있다. 늘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사는 나의 진 모습을 알아봐 주고 응원해주는 인물들이 있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고민들을 공유하기도 하고 또 기쁜 일이 있을 땐 진심으로 축하와 축복을 기원하기도 하면서. 내게는 이런 인물들이 있었기에 이 도심에서 살아가는 일이 팍팍하고 힘들어도, 또 넘어진 그 순간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때론 지쳐서 도심 생활에서의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나의 그 모든 시간들에 쉼터가 되어준 인물들. 나는 그 이름을 이렇게 부른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나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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