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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부 Aug 26. 2020

밥 잘 사 주는 맘씨 고운 광석이 형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1-5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 오성부

한창 비누 사업으로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렵 만나게 된 인연이 있는데 광석이 형이다. 광석이 형은 사실 그저 잊어버리고 살면 살 수도 있는 관계였는데 참 신기하게 맺어진 사이다. 


사업 미팅 차 중국에 갔을 때였다. 그런데 그 미팅이 잘 성사되지 않아서 그 당시 광석이 형과는 명함만 주고받으며 끝났다. 그렇게 스치듯 안녕을 하고 6개월이 지났을 때, 광석이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본 쪽에 사업을 추진 중인데 내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마주 앉아 사업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광형이 형 쪽에서 제안을 해왔다. 원래 다니던 회사가 망해서 지금 본인 사업을 하게 됐는데 중국 쪽에서 일을 같이 해보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후로 비누 사업을 확장시켜 중국에서 홈쇼핑을 크게 하게 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속 깊은 이야기도 제법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얼굴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형은 술을 못 먹어서 만나기만 하면 같이 밥을 먹었는데 그 밥 정이 쌓였는지 어느 날부터는 같이 밥을 먹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가 되었다. 같이 밥을 먹을 때마다 형이 늘 내게 밥을 샀는데 꼭 밥을 못 사 안달이 난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광석이 형과 비누로 호황을 누리며 사업이 커지기 시작할 때쯤. 내가 회사에서 쫓겨나는 사건이 생겼다. 정말 내 모든 걸 걸어서 열심히 일궜는데. 회사 주주들이 작정을 하고 나를 회사에서 몰아낸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 머리가 너무 커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나니 세상 이렇게 허무하고 허탈하고 그저 허허 실소만 터져 나왔다. 나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자라 관계를 끊고 누굴 만나는 것 자체를 거부하며 두문불출, 오로지 집안에 처박혀 칩거를 하고 있었다. 


광석이 형은 한순간에 연락이 두절이 된 내가 걱정이 되었던지 주변에 수소문을 해서 나의 소식을 듣게 됐고 내게 끊임없이 연락을 해왔다. 그땐 광석이 형도 싫고 세상도 싫고 나도 싫었다. 모든 것이 그저 싫기만 해서 방바닥에 누워 멍하니 그저 천장만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독 요란하게 들리는 핸드폰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광석이 형이었다. 받을까, 말까. 한참을 고민 끝에 나는 전화를 받았다.

     

“뭐하고 있냐.”

“그냥요... 집에 있죠 뭐.”

“나와. 밥 먹게.”     


울분과 화로 가득한 내게 밥을 먹자며 나오라는 그 형이 그때만큼 미운 적이 없었다. 지금 내 상태를 알고나 있는 것인지. 알고 있다면 어떻게 밥 먹자는 소리가 이렇게 태연할 수가 있는 것인지.      


“제가 지금 밥 먹기가 좀 그래요.”     

올라오는 분노를 꾹 누르며 형에게 거절 의사를 비췄다.    


“야! 일 좀 잘못됐다고 죽냐? 사내자식이 뭐 그리 약해 빠졌어? 잔말 말고 빨리 튀어나와!”


형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 상태를 알면서 이렇게까지 하는 형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나가기 위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정말 나가기 싫었지만 지금 나가지 않으면 분명 형은 형의 말을 들어줄 때까지 나를 괴롭힐 것이 분명했기에, 어쨌든 지금의 내 사정과 형편을 이야기하며 형을 이해시키기로 했다. 


밥집에 앉았더니 형이 먹지도 못하는 소주를 시켜 한 잔 쭉 들이켰다. 내게도 한 잔 따라주며 형은 말했다. 자신도 30대 초반에 하던 사업이 꼬꾸라져서 빚도 지고 엄청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지 알고도 남는다고 했다. 마음속에 지금 울분과 화만이 가득할 거라고 내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광석이 형에게도 이런 속사정이 있었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에 나는 온갖 나쁜 생각들로만 가득했던 내 마음이 조금 사그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마음을 써준 광석이 형에게는 고맙고 또 고마웠지만 지금의 내 상태는 그 무엇으로도 회복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형에게 솔직하게 말을 했다. 현재 내 마음이 너무나 어렵고 힘들어서 그냥 쉬고만 싶다고. 형의 고마운 마음은 오늘로 충분하다고. 형은 내가 한 말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고 우리는 오랜만에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한참 시간을 보낸 후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다른 날과 다름없이 나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광석이 형에게서 또 연락이 왔다. 밥을 먹자고 말이다. 어제 분명히 내 의사가 전해진 것으로 알았는데. 형이 잘못 이해한 걸까? 싶어 나는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리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어제에 이어 이제 밥 사 주는 건 그만 해도 된다고. 나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금은 만사가 짜증이 나고 귀찮고 뒤틀리는 상황이라고. 나의 마음을 전했다. 형은 전날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이며 이해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날도 그렇게 헤어졌다. 그리고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형은 매일 같이 나를 귀찮게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달쯤이 흘렀을 때였다. 나의 온갖 짜증과 울분에도 굴하지 않고 여전히 변함없이 내게 밥을 사주는 광석이 형을 보며 웃음이 났다. 


내가 참 바보 같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정말 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 타지에서 어느 누가 나를 위해 이렇게 시간을 들이고 돈을 들이고 정성을 들일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그런 감사는커녕 나 스스로의 연민에 갇혀 내게 내밀어주는 손을 쳐내기만 했던 것이다. 그제야 형의 따뜻한 마음이 보였다. (우리는 그로부터 의형제가 되었다).


형은 진심으로 내가 회복되길 바랐다. 진정으로 동생인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봐주고 정성을 쏟았다. 

그리고 나는 형의 그 정성 어린 마음들을 먹으며 그 모질고 어려운 시간을 견뎌 마침내 회복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게, 그 많은 마음들을 나눠준 광석이 형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내 옆에는 얼굴은 산 도적인데 마음은 비단결보다 더 고운, 맘씨가 예쁜 광석이 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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