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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부 Sep 27. 2020

나 위로법

서울 나라의 이방인 5-7

서울 나라의 이방인 - 오성부

이십 대 중반은 내게 있어 질풍노도와도 같은 시기였다.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에 답답했고 서울에 와서도 내 인생은 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화가 났고 무엇보다 타지에서의 외로움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였다. 


그저 막막함만이 나를 좀 먹고 갉아먹고 있을 때, 스트레스 게이지는 나날이 치솟고 그러다 빵!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러다가는 곧 죽을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그런저런 기분으로 그날도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출퇴근을 할 때 지하철 2호선 철교를 이용했는데 순간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어떤 화 같기도 한 답답함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나는 멈춰 서서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소리를 있는 힘껏 지르기 시작했다. 


발악에 가까운 소리를 마구마구 질러대며, 마치 한 마리 짐승이 포효하는 모습이라고 해도 어울릴만한 액션을 해대며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분쯤 지나자 온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속이 뻥 뚫린 것처럼 상쾌해졌다. 


멍했던 머리가 시원해졌고,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던 가슴도 시원해졌다. “아... 살 것 같다.”라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그 모든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돼 정말 ‘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동안 이걸 어떻게 참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나 자신에게 헛웃음이 났다. 


나는 이때부터 속이 답답하거나 스트레스가 심해질 때면 지하철 2호선 철교에서 소리를 질렀다. 실패와 낙담과 허탈감으로 가득 찬 나날들을 보내던 내게 그 시절 지하철 2호선 철교는 숨통과도 같은 곳이었고 아무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꽉 막힌 속을 있는 그대로 내보여도 묵묵히 받아들여주는 곳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아무도 없는 이 서울에서 내가 살아남는 방법이었고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찾은 위로 방법이었다.


이 고독한 서울살이에서 내가 나마저 위로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고 내가 나를 외면하고는 살아갈 수가 없어서 나는 스스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말하자면 나를 죽이는 ‘킬링 타임’이 ‘힐링 타임’으로 바뀐 것이다. 


이 시간들이 생긴 후, 내 삶은 점점 나아졌고 살만해졌고 웬만한 스트레스도 이기고 견뎌낼 수 있는 힘도 생기게 됐다. 내가 나를 위로하면서부터는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정도로 시선이 바뀌었고 울적한 얼굴 표정에도 웃음이 배어 나왔고 상대를 향해 쏘아붙이던 말투도 부드럽게 변했다. 내 인생 전반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는 지금도 울고 싶을 때나 지쳐 쓰러지고 싶을 때나 당장 내가 짊어지고 있는 그 어떤 무거운 짐들을 다 내려놓고 싶어 질 때면 스스로를 독려하고 위로한다. 오늘도 살아내느라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애썼다고. 이렇게 계속 나 자신을 다독이고 토닥토닥해준다. 


이렇게 하고 나면 그 누구의 말이나 위로보다도 안정이 되고 힘이 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내가 애쓰고 힘쓰고 살아가는 걸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좀 어때. 그래도 괜찮다. 내가 아니까.’     


어깨가 조금 처지는 오늘,

주눅 들어 가슴이 옴팡지게 쪼그라드는 지금,

무엇 때문에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지 헷갈리고 혼란스러운 요즘.


조금은 쑥스럽고 간질 거리기도 하겠지만 나 자신에게 한 번쯤은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000아. 사느라 애쓴다. 고생한다. 사랑한다. 힘내서 또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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