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민 Oct 01. 2018

특별한 무엇을 하지 않아도 충분한

예술과 가까워지는 곳, 신수동 이너프 라운지

#1.

나는 소리에 매우 민감한 사람이다. 고요한 방안, 침묵을 깨는 시계 초침 소리가 거슬려 벽에서 시계를 떼어내고 건전지를 제거, 엎어 버릴 만큼 유별나다. 어쩌면 어딘가에 마음 둘 때 없는 복잡한 심경이 그 소리를 따라 움직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소리에 예민하다’는 것은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작고 사소한 소리를 잡아 낼 만큼 청력이 좋다' 혹은 '당장에 해야 할 일 보다 다른 것에 신경을 더 쓸 만큼 집중력이 약하다' 나는 후자의 경우에 가깝다.   


#2.

서울과 지방 중소 도시 사이에는 많은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서울 상경 후 가장 신기했던 점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이나 회사가 아닌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일을 하는 문화였다. 카페의 위치나 운영 방식에 따라 사람들이 머무는 형태는 다양했다. 노량진이나 신림 같은 고시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카페는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스터디룸 분위기이고, 여의도 ·광화문처럼 오피스가 몰려 있어 직장인들이 많은 지역의 카페는 주로 미팅·회의장소로도 이용되었다. 신촌·건대 입구 같은 대학교 지역의 카페는 동아리 모임이나 프로젝트 과제를 다음 위해 일(프로젝트)+공부를 하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원래 카페이기 때문에 분위기에 맞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각자 해야 할 일을 하며 자연스럽게 공간을 이용하는 모습이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합정·상수역과 가깝지만 발길이 닿은 적 없는 낯선 동네, 신수동은 조용하고 차분한 곳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익숙지 않은 동네에 존재하는 낯선 공간을 찾아가는 과정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보이지 않는 술래와 숨바꼭질하는 느낌이랄까?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피며 걷다 보면 노란 간판의 ‘엘림 머리방'이 멀리서도 눈에 띈다. 그 앞에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동네 재래시장으로 가는 골목길이, 왼쪽을 바라보면 아파트가 보이는데 참으로 묘하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나니. 걸으면 걸을수록 신기한 장면들이 보인다. 어느 집 마당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지도 아닌 것 같은 애매한 공간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와 주택단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막 빌라가 모여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파트 단지도 아닌 애매모호한 상황에서도 존재하는 동네 가게들이 있다.

미용실, 참기름 집, 이발소, 정육점, 마트, 철물점 등. 100m 남짓한 거리에 차암 - 옹골차게도 모여 있다. 그 와중에 미용실이 3개나 있다. 오래된 동네일수록 미용실이 넘쳐 나던데, 왜 그럴까? 호기심에 사로 잡혀 걷다 보니 어느새 오늘의 목적지 앞이었다. 마치 원래 이곳에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러웠다. 아트마켓을 진행하고 있음을 알리는 초록색 현수막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칠지도 모를 정도. 오히려 맞은편 럭키마트가 더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스며든 듯 편안한 공간, 이너프 라운지. 동네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탁 트인 시야였다.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큼지막한 창문들을 통해 밝은 빛이 들어와서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였을까? 보통 같았으면 자리를 잡고 짐을 풀고 관찰하며 공간을 이용했을 텐데 이런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짐만 내려놓은 채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다름 아닌 책장 앞이었다. 분야와 세대의 구분 없이 한 곳에 쌓여 있는 책들이 원하지 않는 혹은 뭐라도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 대신 ‘네가 원하는 책, 너 마음대로 골라서 보고, 언제든지 꽂아 두면 돼’라고 말을 건네는 듯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평소 관심 있던 분야의 책들이 많이 있었고, 마구 마구 골라냈다. 좀 더 깊이 있게 읽고 싶은 책들은 자리로 가져다가 쌓아 놓고 보았다.

사람들은 가지런하고 말끔하게 정리된 모습을 좋아하지만, 무심한 듯 쌓아 올려진 책들이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주말에는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어요.

공간 매니저님이 바닥에 돗자리를 펴며 말을 건네셨다. 평일에는 모임이나 워크숍이 진행되는 것에 비해 주말에는 아이들이 오다 보니 조금 더 편안한 분위기로 운영한다고 전했다. 돗자리 가득 레고를 펼쳐 놓고 있으니 동네 꼬마 아이들이 왔다. 아이들은 공간을 드나듬에 있어서 거리낌이 없었다. 그만큼 평소에도 자주 이용하거나 편안한 장소로 인식되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덩달아 나도 신이 났다.

엄마와 아이가 손 잡고 공간을 이용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동네에서 아이들이 놀 수 있었던 놀이터마저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아쉬운 요즘, 다양한 연령층을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어쩌면 위로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동네에 거주하고 계시는 기존 거주민들에게 직. 간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주민들은 이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예술을 다른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공간

한쪽 벽면에는 많은 작가들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작가 이름, 작품명과 동시에 작품의 가격이 공개되어 있다. 작품이라는 것이 작가의 의도와 보는 이의 해석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가치의 정도가 다르고, 시간과 정성을 따져 보았을 때 합리적인 가격이라 생각하기도 하는데 가끔은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특히나 예술작품을 좋아하지만 경제적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더더욱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공개된 가격표를 보면서 그 의문의 정도는 더 짙어졌다.

2층에 전시된 그림들
"너희가 부러울 때도 있어", 최수진 작가
이너프라운지 내 미술작품들을 이용하는 방법
1층 그림가게
작품 가격이 측정되는 기준은 무엇일까?

2층에 전시된 작품이 전부가 아니다. 1층에 그림 가게가 있어 다양한 미술작품을 판매하고 관리하고 있다. 덕분에 예술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자연스러운 접근이 가능했다. 이는 건너편에 위치한 전시공간에서 더욱더 빛을 바랐는데, 마침 ‘10주 동안 아트마켓 AUTUMN 2018’이라는 컨셉으로 9명의 작가가 매주 릴레이로 전시를 진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트마켓의 메인 키워드가 신수동의 재래시장인 신수시장의 지명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에서도 인상 깊었다. 이들이 말하는 신수시장은, 이너프 라운지의 전시공간인 원 픽셀 오프라인에서 진행하는 10주간의 그림시장을 말한다.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마저 이너프 라운지 답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람들이 예술을 장 보러 가는 것처럼 쉽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긴 하지만 이들이 위치한 동네가 신수동인 것을 감안하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역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그저 우연의 일치였을까?

맞은 편 비슷하게 생긴 건물에 이너프라운지가 운영하는 공간이 또 있다.
윤혜정, <골드타임전>



소리에 민감하고 분위기에 따라 집중도가 달라져 외부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 쉽지 않은 나였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있었다. 이곳에서 특별한 무엇인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공간을 채우고 있는 부분들을 따라 시선을 옮기고 즐겼을 뿐이었다. 처음 와 보는 낯선 공간에서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건 타인의 시선에 맞춰 좋아 보이려는 억지스러움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타인의 눈초리, 몸짓 같은 작은 행동 하나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받는 공간이 있는가 하면 경계 없이 넘나 들며 나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생각의 확장을 일으킬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용자의 입장에서 편리함과 불편함에 대해서 따져가며 공간을 바라보기보다 "왜, 이렇게 했을까?"라는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하여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이너프 라운지는 어떤 곳이야?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묻는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편안한
그저 발길을 닿은 것만으로도
충분한 곳이야

주소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17길 16 1,2층

이용 가능시간

평일 10:30 - 19:00

주말 13:00 - 20:00

공간 대여료

시간당 44,000원

종일/12시간 330,000원

공간 예약

 https://spacecloud.kr/space/7035


해당 콘텐츠는 도시 곳곳의 로컬 공간들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도시 작가> 프로젝트로 인디 워커스 x스페이스 클라우드와 함께 합니다.


#도시작가 #스페이스클라우드 #이너프라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