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하는 일이 좋다. 나와 잘 맞는 것 같다. 멋진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사실 디자인을 배우면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많은 작품들을 봤다.
직업학교에서 만난 친구가 해외 유학 중인 디자인과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당시 유행이던 싸이월드에서 작품 사진과 유학생활 사진을 보여줬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너도 할 수 있다는 위안의 말을 해주지만 많이 보고 배운 사람을 따라가기란 쉽지 않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나는 패션 프로그램을 많이 봤기 때문에 창의적인 디자인과 함께 순발력도 필요한 영역이라는 것을 알았다. 24살에 해외 유학 중인 그 친구의 작품들을 보니 나 같은 사람은 잘 나가는 디자이너가 될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동대문 디자이너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디자이너를 하고 있는 지인들은 나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때 나는 나 스스로도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빠르게 포기했다. 그리고 이 업종에 관련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나는 우연히 주변에서 아동복 디자이너를 해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때는 관심이 없었다. 그때 같이 수료한 언니들도 취업을 못하고 있었는데 언니들에게 아동복 디자이너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권면을 해드렸는데 얼마 뒤에 언니들은 취업에 성공했다.
아무튼 나는 디자이너는 안될 것 같고, 엠디로 진로를 바꿨다. 엠디를 하게 되면 옷도 제작할 수 있으니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스물일곱 나이에 엠디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백화점에서 스물여섯 아르바이트 생은 나뿐이었다.
디자이너도 그렇고 엠디도 신입으로는 스무 살, 스물두 살을 주로 뽑았다. 나는 그에 비하면 나이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더 초조했다. 취업이 아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작전을 바꿔서 고객센터로 입사해서 경력이라도 만들자는 생각으로 지원을 했다.
고객센터는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지원자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3년을 버틴 후에 기적적으로 엠디가 됐다. 사실 그때는 돈을 벌어야 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몇 년을 보냈다. CS에서 생각보다 다양한 일들을 했다. 나는 연차가 오래되어 운영업무도 종종 하게 되었다.
엠디에서 나는 주로 신상관리, 광고 마케팅, 운영, 행사 기획 등을 하는데 신기하게도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것들에 관련된 일이다. 물론 실무적으로는 다르지만 기본 베이스로 배운 것들이 있어서 업무 이해에 쉬웠다. 타깃 조사, 신상 발굴, 광고까지, 그리고 CS에서 배운 고객의 니즈 관리까지 모든 업무가 잘 맞았다.
그리고 옷도 제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 힘들었던 것은 계획적인 내 성격과는 다르게 계획들이 수시로 바뀐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성향과 반대되게 수시로 바뀌는 일들이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계획을 바꾸고 빠르게 대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성장하려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나의 계획적인 성향을 깨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직원들은 안정적인 업무를 원하지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를 빨리 감지하고 움직여야 한다. 아직도 내 루틴은 정리되어있지만 성장을 위한 루틴은 언제나 깨부술 준비가 되어있다. 처음에는 초보나 다름없었기에 일이 끝나면 책을 사서 공부했다.
사진 찍는 법부터 공부할 것들이 넘쳐났다. 나는 일하고 배우고 공부했다. 지금도 계속 여러 분야를 공부한다. 아직도 실수는 있지만 이제는 나름의 노하우도 생기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일을 한다.
나는 오래 일을 하면서 다른 꿈이 생겼다. 이제는 조금 자신이 생겼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경험이 또 다른 일의 베이스가 될 거라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내 시간들이 아깝지가 않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 지금도 새로운 일들을 구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