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아마 여러 번 있었던 것 같다. 이제야 이별이 조금은 가볍다. 이별은 누가 알려줄 수도, 누가 도와줄 수도 없는 그런 것인 것 같다. 사랑처럼 이별도 스스로 겪어내야만 한다. 잦은 전학으로 마음 나눌 친구도 없던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쭉 한동네에 살고 있다.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나는 우리 동네가 좋다. 산 냄새도 맑은 공기도, 조금은 차가운 온도도 좋다. 예전보다 많이 발전되어 이제는 아파트가 더 많지만 아직도 오래된 낡은 정취가 남아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그때도 나는 여전히 '내가 왜 좋다는 거지? 그럴 리 없어.' 라는 생각이 많았다.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내가 좋다고 했던 그 친구와의 헤어짐에도 이런저런 기억이 있다. 음성 사서함으로 메시지를 남겨주고 수업이 끝나면 한정거장 거리의 집을 걸어서 바래다주고는 했다. 그때는 학교와 집 주변이 온통 논밭이어서, 그 친구와 걸었던 가을의 길은 무척이나 예뻤다.
논과 논 사이 차 한 대만 다닐 수 있는 길에 길게 늘어진 금빛 길을 걸을 때는 마냥 좋았다. 그때 친구들이 일회용 카메라로 찍어준 사진이 아직도 있다.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꽤 멋있게 생겼던 전학생 친구가 인사도 한번 해보지 않은 내가 좋다고 했다. 나는 어쩌다 그 아이와 특별한 관계가 되기는 했지만,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오래돼서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친구와 내가 이어지자 또래 여자 친구들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어느 날 화장실에 있다가 우연히 여자 친구들이 내 이야기를 하는 소리를 들었다. '걔가 왜 걔를 좋아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 돼.' 사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상처도 받지 않았다. 나도 그게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들이 내게는 자주 일어난 것 같다. 사귄 지 22일째 됐던 날은 시내 팬시점에서 커플 은반지를 사 왔다.
그때 언니 친구가 내게 '그 친구가 한참 동안 반지를 고르더라.' 마음을 받는 것이 느린 나는 그때부터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나의 더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떠났다. 관계에 서툰 나는 그 친구와 한 달 만에 이별했다. 대화를 길게 나눠본 적도, 밥을 같이 먹어본 적도 없었다. 사랑에는 느렸지만, 나는 그때 처음 이별의 아픔을 느꼈던 것 같다.
학교에서는 아무렇지 않다가 주말이면 친구 집에 가서 울며 그 아이에게 전화를 하고는 했다. 그 친구는 돌아오지 않았고, 우리는 그렇게 졸업했다. 나중에 친구들의 말이 내가 답답했다고 한다. 그럴 만도 했겠다 싶다. 나는 그 친구와 걸었던 길이 참 예뻤는데, 그 친구도 그 기억만 남았으면 좋겠다. 미련 많은 열여섯 답답이는 잊고말이다.
그 시절 친구들의 풋풋했던 사랑을 기억해보니 그때만큼 사랑에 진심이었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나 말고도 친구들의 이별을 기억해보면 그렇다. 그 어린 나이에도 사랑앓이가 심했으니 말이다. 아빠는 스무 살의 사랑이 가장 불같아서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누군가 내게 첫사랑이 언제였냐고 물으면 나는 없다고 말했었다. 첫사랑의 의미도 첫사랑의 기억도 예쁘게 남은 게 없다고 생각했다. 맨날 짝사랑만 하던 내 모습만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에서야 내 첫사랑이 누구였는지 정하기로 했다. 나를 처음으로 좋아해준 아이.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의 열여섯 시절을 기록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오늘 첫사랑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