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누군가를 잃는 것도,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도 전부 나였는지도 모른다. 왜 슬픔을 끌어안고 사냐는 말에 그것마저 없으면 내 마음이 텅텅 비어버릴 것만 같아서. 소리 없는 대답을 한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답답하게 쌓여있지만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는 성격답게 감정도 쉽게 소비하지 못한다.
처음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낯가림이 심해서 회사에서 밥을 먹을 때면 겨우 몇 숟가락 먹고 말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런 직원들을 보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주고는 한다. 이제는 편해져서 능글맞아졌다고 할 정도로 실없는 소리도 잘하고 긍정적이고 장난도 잘 친다.
어릴 적 생활기록부처럼 명랑한 것 같다.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명랑함을 다시 찾아가는 중이다. 가끔은 삶이 내 본모습을 잃도록 만드는지도 모른다. 환경에 의해, 사람에 의해 말이다. 버리라고 하고, 잃어버리라고 하는 때에 어린 나는 쉽게 내 모습을 감추고는 했다.
가족들 못지않게 매일 보는 직원들은 어쩌면 내 밝은 모습만 봐서 글을 쓰는 내 모습을 보면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밖에서는 활동적으로 일하지만 집에 오면 말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방에서 영화나 책을 읽고 글만 쓰는 나이다. 결국 이런 모습도, 저런 모습도 모두 나인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중이다. 전에는 진짜 내 모습이 뭘까, 내가 이중인격은 아닐까. 다중인격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인간은 여러 가지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이에게는 내 밝음이 더 잘 나타나고, 어떤 이에게는 내 슬픔이 잘 나타나고,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내게 있는 어떤 모습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인간은 수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듯이 수많은 모습들이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영화 '뷰티인사이드'가 떠오른다. 어쩌면 내가 '우진'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 모든 모습이 나인 것이다. 어제는 즐거웠다가 오늘은 슬펐다가. 아침에는 우울했다가 저녁에는 평온하다.
누군가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나타나지 않는 모습들이 누군가에게는 보이는. 그래서 나의 이런 모습이 모순이 아니라 그냥 나라는 것을 이해해가는 중이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또 다른 내 모습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배역을 맡고 산다는 어느 책의 구절에 맞게 우리는 많은 감정도, 많은 표현력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바라본다면 우리에게 잠재력이 있다는 것은 맞는 말 같다. 영화 '굿 윌 헌팅'의 대사처럼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주어진 잠재적 천재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표출되는 일이 적거나, 작은 것일지라도 알아봐 주고 성장하게 해주는 누군가가 없어서 그냥 계속 묻혀있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알아봐 주지 않았다면 결국 내가 찾아 나서야 한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나 생각해보는 중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내가 그런 시기를 지나는 중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더 자주 마음이 허하다.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영감도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억지로 생각을 더 많이 해보지만 억지로 하는 건 억지인 게 티 난다. 견뎌내는 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 알지만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모르는 중이다. 뭘 해도 재미가 없는 듯하다. 책도 잘 안 읽히고 영화도 재미가 없다. 좋아하는 것들은 내 곁에 다 있는데 좋지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다 내 곁에 있는데, 내 곁에 없는 듯하다. 내가 놓지 않으면 그대로 있을 텐데 내가 놓아버리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내가 놓아버려야 하나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없어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니 말이다. 내가 없어도 다들 각자의 행복을 찾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버리지는 못한다. 떠나지를 못한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사나 보다. 지금은 이런 시기인가 보다. 사막 같은 곳에 혼자 있는 기분이다. 광야 같은 곳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기분이다. 일어나서 걸어가야 하는 것은 알지만 가만히 있고 싶다.
엄마는 내가 외로워서 그렇다고 한다.
맞아, 외로워서 그렇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