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만에 처음으로 집에서 트리를 만들었다. 적당히 찬기가 느껴지는 11월 마지막 주에 언니와 나는 퇴근길에 다이소에 들려 저렴한 트리 재료들을 구매했다. 처음이니 비싸고 큰 트리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작은 트리를 구매했다. 의욕만 앞선 둘은 시작하자마자 거실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장식에 반짝이가 있는지도 모르고 바닥에 그대로 엎어버렸는가 하면, 트리 다리를 조립하면서 힘을 너무 주어 부러뜨려버렸다. 트리는 작은데 장식을 너무 많이 사서 뚱뚱한 트리가 되었다. 저렴하게 사기를 잘했다. 사회생활 십여 년 경력으로 어찌어찌 수습을 하고 예쁜 트리를 완성했다.
처음이라 어설펐지만 사람들이 겨울이면 왜 트리를 만드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아이였을 때 만들었다면 오래오래 추억이 되었을 것 같다. 서른이 넘어 만든 트리도 이렇게 즐거우니 말이다.
끝이 있어야 시작이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무엇이든 하다가 마는 것, 아니면 내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들은 끝을 내지 못해서 언제나 아쉬움이나 미련이 남는 것 같다. 그것은 관계일 수도 있고, 재능일 수도 있고, 일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언제나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늘 있다는 사실을 자꾸만 잊는다. 어쩌면 시작할 수 있는 확신을 나 자신이 갖지 못하는 것 일수도 있다. 그것은 주변을 보기 때문에, 환경을 보기 때문에, 때로는 다른 이들의 말 때문에, 나 자신도 모르는 반대에 의해서 시작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결정적인 것은 나 스스로가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 공통적인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누가 뭐래도 자신의 생각을 믿으며, 확실한 신념과 소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물론 지혜와 경험, 배움 등의 밑바탕이 어느 정도 있기는 하겠지만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만 있다면 공부를 해서라도, 잠을 자지 않더라도 뭐든 계속해서 움직이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꾸준히 하면서 능력치를 키워냈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일들을 성취할 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트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만 원짜리 트리를 만들 여유도 없었던 나의 과거가 이제는 끝이 났기 때문이다. 트리를 만들면서 나의 힘겨웠던 삶이 어느 정도는 정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우리가 한가롭게 트리를 만들고 있네.' 드디어 바라던 평범한 삶이 시작되고 있는 것 같았다. 과거를 끊어낼 수는 없지만 삶을 시즌으로 분류하자면 나의 시즌1이 끝난 기분이다. 그래서 더 여운이 남고, 오래가는 것 같다. 마치 배우들이 배역에 빠져 살다가 벗어나는 듯한 기분이 이런 것 아닌 가 싶다.
12월 31일 밤, 유난히 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매년 오는 31일 밤이지만 아쉽고, 아쉬웠다. 사실 첫 해외여행을 꿈꾸며 여권을 만든 지 한 달 만에 코로나 때문에 발목을 붙잡혔다. 어딜 가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일이라는 것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리 만들어둔 것이다. 기다리는 만큼 내 기대도 커져가는 것 같다. 나는 항상 단기선교를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스물두 살쯤이었나, 나는 우연히 20만 원으로 단기선교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었다. 선교 비용도 꽤 만만치 않아서 사실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런데 여권도 만들 수 있고, 비용 지원도 해주어서 일주일 동안을 20만 원에 갈 수 있다니 너무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나는 그때 알바를 구하는 중이었고, 돈이 없던 시기였다. 아빠에게 딱 한 번만 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가난했던 나는 포기해야만 했다.
그 일은 아직도 내 마음에 상처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기회라는 것은 항상 오는 것이 아니고, 그때가 아니면 갈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일로 마음이 상해서 어린 마음에 며칠을 앓았던 것 같다. 나는 실제로 그 이후로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았다. 돈 때문에 마음에 큰 좌절을 겪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특별한 기회가 왔을 때는 스스로가 아는 것 같다. 이건 다시없을 거다, 다시 올 것 같다. 등의 미묘한 예측 말이다. 아빠는 가끔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살면서 큰 기회가 세 번 온다고, 하지만 아빠는 늘 그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나의 첫 번째 기회는 그 선교가 아닌 가 싶다.
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미련이 남으니 말이다. 언젠가 내가 60세가 넘으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해서 그때는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여행도 하고, 봉사도 하고, 예쁜 아이들의 사진을 많이 찍어주고 싶다.
나는 첫 해외여행은 꼭 파리로 가고 싶다. 예술과 문학이 그대로 있다는 그 감성 젖은 파리의 냄새를 꼭 한번 맡아보고 싶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의 걸작품이나 그의 야심, 교황과의 관계, 하지만 시그 티나 성당의 냄새가 어떤지는 모를 걸, 한번 도 그 성당의 아름다운 천장화를 본 적이 없을 테니까.' 직접 보고 경험해보지 않고 느낀 것은 진짜일까, 아닐 까.
나는 늘 책을 보며 예술을 느끼고 문학을 읽는다. 하지만 저 대사처럼 직접 보고 느껴보지 않으면 100% 안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나는 반쪽짜리 감성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충분히 만끽해보고 싶다. 고흐가 걸었던 거리, 카페, 하늘의 색과 별들을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언제쯤이 될지 아직은 까마득하다. 다만 그곳에 가보기 전까지 살아있기를.
어쨌든 아직도 해보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들이 많으니 지금부터 내 삶을 시즌2로 정하기로 했다.